빈둥빈둥 환타스틱 유럽여행기
환타(김환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여행, 여행, 여행...

 

각종 여행서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여행 블로그는 왜 저렇게 많은 건지,

 

또 가고 싶은 곳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유럽 여행이 더 이상 사치나 로망이 아닌 일상으로 자리잡은지 어느 정도 되었기에,

대학생들의 한달 가량 유럽베낭여행, 그리고 그때 야간열차를 타며 수많은 나라를 거쳤던 대학생들이 취업한 후 직장인이 되어 1년 휴가를 최대한 붙여서, 혹은 황금연휴에 열흘 정도로 학생 때 갔던 유럽의 국가 들 중 한 두 개 국가를 집중적으로 보고 오는 이른바 탐사적 여행은 내 주변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경우이다.

 

글쓴이도 학생 때 유럽 여행을 처음 다녀오고 나서 7년 후, 사회인이 되어 다시 유럽을 가게 된다. 계기가 좀 특이하다. 결혼을 앞두고 그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결별 후, 마음을 추스리고자 유럽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친구의 일정을 짜 주다가 멋도 모르고 갔던 7년 전에 비해 이제 아서 유럽에 간다면 더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남자친구에게 이야기하자 너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유로 차이게 되었다고. 이왕 이렇게 된 것, 결국 그 친구와 같이 유럽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작가가 긍정적인 사람인 걸까, 아니면 시간이 흘러 전부 추억으로 웃음지을 수 있게 되어서 그런 걸까, 계기도 계기지만, 책을 읽다보면 절대로 여행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개그요소를 찾아내는 능력때문인지 계속 행복하게 웃으면서 여행기를 볼 수 있게 된다. 사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지금도 연재중인 한 포털의 웹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머 있고 밝은 내용이 참 사랑스러웠다.

 

이 책만의 특장점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첫번째, '빈둥빈둥'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은 여타 다른 여행기와는 다르게 읽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숨가쁜 일정이 짜여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여유롭게, 때로는 마음이 가는 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여유롭다.

두번째, 책의 사진은 직접 저자가 찍었다고. 그래서인지 다른 여행기에 비해서는 유명한 건축물이나 풍경들이 강렬하게 다가온다거나 시선을 잡아끈다거나 하는 사진들은 많지 않다. 대신 꼭 내가 여행 다녀왔을 때 찍었던 사진들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정감이 가고, 눈이 편안하고, 천천히 음미하게 한다.

셋째, 글과 사진으로만 차 있는 여행기가 아니라 만화로 일정이 전부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꼭 웹툰을 보는 것처럼 재미도 있고, 순간순간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또 글 한 두줄을 아무래도 만화로 풀어서 그리다보니 책은 두껍지만 내용은 벅차지 않고, 그만큼 사진의 양은 또 줄어서 그만그만한 여행기들에 비해 개성이 있다.

넷째, 이 여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유용한 팁들. 환전, 맛집, 할인, 물가, 날씨 등은 어떤 여행책에도 많이 나오기도 하고 또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금방 뜨는 정보들이다. 그런데 몇몇 정보는, 아, 정말 유용하면서도 재밌기도 하다. 예를 들면,

 

짐싸는 요령, 에서 애매한 멋내기용 옷과 신발은 안 가져가는 게 좋고, 화장품은 샘플로 챙기라는 것 정도는 한두번 여행한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입술이나 손, 발, 팔에 전부 바를 수 있는 바셀린을 추천하거나, 까만색 쫄티와 레깅스는 평소 내복처럼 입다가 잘때는 잠옷으로 입을 수 있다는 말에는 빵 터졌다. 그러다 혹시 레스토랑이나 클럽에 가려는데 가져온 옷 중 마땅찮은게 없다면 망고나 H&M에서 저렴하면서도 핫한 아이템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해외 패스트패션 업체들이 국내에서 지나치게 비싸다고, 오히려 외국에서 더 저렴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루이비통 본점의 매장은 아주 큰데다, 세일까지 겹치면 한국보다 최고 몇십만원은 더 싸지만, 꼭 사지 않더라도 세일 기간에는 워낙 사람이 많아 윈도 쇼퍼도 편안하게 구경할 수 있다고. 매장 안 아트북 코너도 있고 화장실도 쓸 수 있으니 쇼핑 아니더라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는 부분에서는 내가 20대 초반, 학생 시절에 갔을 때는 전혀 몰랐던 부분이라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가면서 예전에 내가 갔던 장소를 다시 떠올리는 기분도 쏠쏠했는데, 눈에 들어온 부분이 노트르담 성당 정문 앞 '푸엥 제로'. 파리 거리 측정의 기점이 된다는 대목을 읽자마자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이미지 확인을 해 보았더니 역시나! 당시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재수가 10년 좋다고 그렇게 들어서 발을 디디고 사진을 찍었는데, 돌아와 보니 재수가 좋다는 것만 기억이 나고 대체 이 장소가 어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대체 몇 년 만에 알게 되었는지! 아무튼 기분이 좋다. 다시 파리에 가게 된다면, 나도 글쓴이처럼 자전거를 빌려 마트 다녀오며 바구니에 바게트도 꽂아보고도 싶고, 일정 때문에 결국 못 가 보았던 퐁피두도 가고 싶다.

 

프랑스 파리-스페인 바르셀로나-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이 여행기에서 상대적으로 스페인의 비중은 작은데 그 이유는 글쓴이가 즉흥적으로 프랑스에서 2주동안 더 머문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에 도착한 첫 날, 할부도 끝나지 않은 아이폰을 집시에게 도둑맞은 것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활발하게 돌아다니지 못한 까닭도 있다. 내가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우리 일행 중 카메라를 도둑맞은 사람도 있었고,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사람도 있었다. 매사 경계하고 의심하는 성격 때문에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도 받았고, 좀 더 과감한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지 않고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도 하고 새삼 뿌듯하기도 했다.

 

도난 사건만 없었다면 스페인 이야기가 좀 더 풍성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내가 안 가본 국가가 스페인이라서 더 그랬던 듯.

 

항공권 연장이 되지 않아 고민하다 그냥 귀국 비행기표를 날리고 편도를 새로 사면서 이탈리아에 2주를 머무르게 되었는데,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숙소에서 매일 아침 베드로 성당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고. 가는 길에 샌드위치나 조각피자를 사서 성당 광장에서 점심을 먹으며 일광욕을 하고, 그러다 심심해지면 성당미사도 들어가보고 끝나면 베드로 성당 내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근처에서 어슬렁대기도 하고... 저자 생애 이렇게 고급스러운 산책이 또 어디 있겠냐고 했는데, 아, 정말 정말 부러웠다.

 

개인적으로 다시 유럽을 갈 수 있다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스페인도 가고 싶지만, 로마와 베네치아 두 도시만 보고 돌아왔던 이탈리아 전국 일주를 해보고 싶다. 밀라노에 가서 말로만 들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보고 저자의 말대로 말로 할 수 없는 그 느낌도 받아보고 싶고,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소설을 읽고 가슴 두근거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폼페이 유적지도 둘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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