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차분한 아름다움, 책의 이 문구를 보고 난 영화 속 멜라니 로랭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거꾸로겠지, 책에서 묘사한 여인의 모습을 영화 속 멜라니 로랭이 정말로 잘 표현한 거겠지. 반짝이는 눈, 동양인 같은 독특한 피부색, 옆에 있는 사람도 함께 웃게 만드는 웃음, 흔들리는 걸음걸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묘사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보통 소설속에서 작가가 특정의도를 가지고 여인을 묘사할 때, 단순히 아름다운 게 아니라 신비하고 묘한 분위기의 여성을 묘사할 때 과연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관념에만 머무르게 되지 않나? 하고 약간은 어이없고, 또 약간은 여성에 대한 작가의 환상에 대해 여자로서 좀 한심... 하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영화에서의 멜라니 로랑은 같은 여자가 보아도 정말 아름다웠다. 정지해 있는 사진으로는 잘 알 수 없는데 영화 속의 모습은, 정말 눈과, 웃음과, 걸음걸이 모두 보고 있는 사람의 혼을 뺏는다고 해야 하나? 소설 속 묘사 대로 청초한 소녀와 요부가 묘하게 섞여 있는 느낌과 딱 맞다. 소설 속 아마데우가 쓴 글에서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보고 싶지 않았다고, 이 아름답고 유혹적인 이름을 만족시킬 여자는 없다고, 실망할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반대가 되었다고, 이름이 그녀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느낌은 소설과 영화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아마도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이 책의 여인을 표현할 수 있는 여자가 있을까, 영화를 보면 실망할 게 틀림없어, 하겠는데 영화를 보니 정반대가 되었다. 오히려 소설의 서술이 영화 속 멜라니 로랑의 매력을 따라잡기에 부족하다.
이런 소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다. 솔직히 영화도 아주 명작이라고는 말 못하겠고 소설을 먼저 읽은 독자들은 영화가 소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원작 소설까지 찾아보게 한 것은 순전히 여주인공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영화에서건, 소설에서건, 에스테파니아는 중간쯤 되어서야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뒤흔드는 매력이 있다.
소설은 영화와는 많이 달랐다. 영화화 되는 과정에서 소설의 등장인물은 과감히 생략되는 경우도 많았고 깊이가 덜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리스본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남녀 주인공의 모습은 등장할 때마다 넋을 잃게 했다. 소설 속에서 상처한 중년이었던 아마데우는 영화에서는 젊은 청년으로 등장한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갈구하는 주인공으로는 중년 남성이 더 맞겠지만, 영화적 재미로는 젊은 청년 쪽이 훨씬 더 낫기 때문에 과감한 각색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생각된다.
좋은 책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읽혀져 왔고 영화화까지 되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어서인지 소설 속 주인공의 고뇌가 가슴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 읽으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쨌든 영화 덕에 좋은 소설을 읽은 셈이다. 또 십 년 쯤 뒤에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즐거움도 남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