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순간 : 소설 -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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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위로를 받았다.

 

솔직히 나의 꿈이 욕심으로 느껴지고, 이제 슬슬 타협하고 싶다고, 편해지고 싶다고,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이 책 때문에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지만, 나를 일으켜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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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말은 결국 '근사近似하다'는 말. 내가 아는 뭔가와 닮았다는 말. 그래서 거기 아무리 많은 불빛들이 반짝인다고 해도 그중에 무엇이 아름다운 불빛인지 우리는 금방 알아낼 수 있어요. 지금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람을 사랑해왔다고 고백하는 셈이에요. 아름다운, 그러니까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살아가면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찬사는 "내 옆에는 네가 있어"라는 말이 아닐까요. 방바닥에 태양계의 그림을 그리든, 공원을 걸어가면서 나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소리 내어 말하든, 그게 아니라면 지금 창밖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리키든, 어떤 식으로든 "마찬가지로 지금 내 옆에는 네가 있어"라고 말할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마세요.

우리 인생보다 더 오래가는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의, 또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은 영원히 우리 안에 남는다는 점이죠. 그런 까닭에 때로는 그게 훨씬 더 고통스럽기도 해요.

스물일곱 살 무렵이었어요. 소설만 쓰겠어, 라고 맹세하기에는 앞날이 감당이 안 되더군요. 인생, 별거 있겠어? 한 이틀 정도 고민하다가 회사에 취직했어요. 취직이 제일 쉬웠어요, 라고 말하려니까 지금 생각하면 행복한 고민이었네요. 그게 제일 쉬워보여서 회사에 들어갔다가 죽을 고생을 다 했답니다. 그 다음에 다들 아는 진리를 깨달았어요.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는 걸. 오히려 쉽다고 생각해서 더 고생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런 기대일랑은 깨끗하게 접었습니다. 편해 보이는 길과 힘들어 보이는 길이 있으면 무조건 힘들어 보이는 길을 택했습니다. 뭐, 고민할 게 없어서 좋더군요. 그 뒤로 지금까지는 별 불만이 없어요. 역시 아큐와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그게 죽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우린 우리 나름의 방식대로 죽을 권리가 있답니다. 남들처럼 살기도 싫지만, 남들처럼 죽기도 싫어요.

뭔가가 우리를 막아설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그걸 뚫고 지나가는 일입니다. 계속 달리세요. 끝까지. 멈추지 말고. 계속 움직이세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알게 되겠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대신에 돌아보면 그런 시간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됐다는 걸.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어쨌거나 우리는 충분히 살게 될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더 이상 없을 테니까요. 지나온 모든 시간은 저절로 소중한 시간이 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없이 순진해지시길. 지난 일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라는 것. 우리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되리라는 것. 12월 31일 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선 겨울나무가 새해 아침 온전한 겨울나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 갔다는 점이다.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소설가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 그건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건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날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곧 우리가 듣는 말이며 우리가 읽는 책이며 우리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겠다고 결정하지 말기를. 그런 건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부주의한 비판들과 스스로 가능성을 봉쇄한 근거 없는 두려움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뭔가 선택해야만 한다며, 미래를 선택하기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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