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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말 그대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과 '바람의 딸' 시리즈를 읽었기에 의외다, 라고 생각했다. 또 편견...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평범한 에세이 집이라고 생각하니 굳이 읽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자주 가는 북카페에서 (이상하게 북카페에서는 소설보다 수필 종류가 잘 읽히더라) 몇 번 흘깃흘깃 보다가 오늘에서야 집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사랑', 말 그대로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부분도 있었다. 저자의 대학시절 첫사랑 이야기,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이란 나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싶다. 불평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던 요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토요일 오후, 아무리 책상에 앉아도 이상하게 마음이 들뜨고 다잡히지 않던 이 시간, 나에게 이 책은 딱 맞는 책이었다.
외국계 홍보회사의 잘나가던 시절, 오지 여행가, 국제 구호 단체 팀장을 거친 그녀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다. 책 말미에 적었듯이 자신의 분야에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무릎팍 도사에 나오기 전부터 그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소위 젊은이들의 멘토이자, 특히 여대생들에게는 닮고 싶은 명사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그녀이기에. 그리고 나서 그녀를 지지하는 분위기 반대쪽에서 그녀와 그녀가 속해 있는 단체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고 묘사했으나 육로로 다녔을 뿐 실제 걷지는 않았다, 교통편이 연결된 곳만을 다녔으므로 엄밀히 이야기해서 '오지'를 다닌 것도 아니다, 위험한 지역에서 금지된 행동을 했고 그것을 마치 대단한 모험인 것처럼 묘사해 뒤의 여행자들에게 잘못된 상식을 심어주었다, 실제 월드비전이라는 단체는 선교가 중심이지 구호가 중심이 아니다, 등등.
좀 더 책임감 있고 겸손했으면 좋겠다, 는 바람, 응당 당연하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 여행기를 썼을 때만 하더라도 일단 우리나라에 그녀와 같은 사람은 무척 드물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사실 나도 '걸어서' 시리즈를 고등학교 때 접했을 때는 '이게 진짜야?'라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처음부터 겸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7막 7장을 쓴 홍정욱 씨도 이제 와서 그때의 자신을 돌아보면 너무 자신감이 넘쳤었다고 민망하다고 느껴진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넘치는 자신감, 어찌 보면 교만으로까지 보이는, 그러나 그런 때도 존재하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고 아마 그 시절의 한비야도 그런 시절이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면 좀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더구나 그녀는 홍보회사에서 일했었고, 그 누구보다 '홍보', '자기PR'에 능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또한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구호 활동을 하고, 책을 쓰면서 자신의 그 능력으로 추진체를 달았을 것이다. 과장되었다, 진지하지 못한 것 같다, 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시각도 이해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여행이나 구호 활동에 정통한 것은 아니며, 아직도 못 사는 외국을 돕자고 하면 '그럴 돈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부터 도와라'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현실에서는, 분명 그녀의 역할이 지대하다고 본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좋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것에는 그녀와 같은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이다.
그녀에 대한 두번째 비판, 그녀가 속한 단체 이야기.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판단하기가 힘들다. 솔직히 그녀 자신에 대한 비판에는 얼마든지 쉴드(?)를 쳐주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여기에 있어서만큼은 아닌 것 같다. 월드비전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고 있으며, 이들 중 대다수는 거의 한비야를 보고 기부했을 것이므로 그녀또한 이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실제 성금의 대다수가 구호가 아닌 선교에 쓰이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녀를 믿고 싶다. 실제로 그렇다면, 또 그녀가 알면서 그것을 묵인했다면, 참 마음 아플 것 같다.
분명 그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도 들리고 과대포장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 또래의 젊은이들에게 그녀는 큰 귀감을 주었고 지금도 영감을 주고 있다.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가 쿠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선 우리의 것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가장 영향을 미친 발명은 쿠텐베르크의 금속 활자가 선정되었다. 왜냐고? 엄청난 속도로 성경을 찍어 당시 유럽의 농민들에게 보급함으로써 그들이 교회의 부패에 눈을 뜨게 하고, 유럽 전체에 그 분위기가 급속하게 퍼짐으로써 종교 개혁을 일으켰고, 나아가 유럽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비야 이전에, 동시대에, 이후에 그녀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여행가, 구호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한비야처럼 대중적으로 어필하지 못했고 그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으며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지도 못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비야를 높게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는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