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미쉬 - 느리게,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
린다 에겐스 지음, 메어리 아자리언 삽화, 조연숙 옮김 / 다지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이 이름을 처음 안 것은 ‘홍승기의 시네마 법정’을 통해서였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위트니스’의 배경이 된 아미쉬 마을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 대국에 이런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 현재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그 다음으로 본 것은 미국드라마 ‘본즈’의 한 에피소드였다. 단순히 아미쉬 마을의 모습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낸(내 짐작이다. 나는 영화 위트니스를 글로만 보았기 때문에) 영화와는 달리, 미드의 에피소드에서는 아미쉬 마을을 떠나고 싶은 마음과, 남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작품 사이에 있는 세월의 흐름 때문일까.
읽으면서 내내 평화로운 마음을 느꼈다. 로러 잉걸스 와일더의 ‘초원의 집’이 떠오르기도 했다. 가장 심란하고 촉박하고 기대고 싶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시험기간에 읽지도 않을 것이면서 책을 괜히 빌린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편. 안. 함. 을 느끼고 싶어서.......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 25년간 북미 전역의 아미쉬인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2000년에는 144000명이란다. 정작 아미쉬의 시작인 알사스 지역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는 사라진 이 조직은 초기 기독교 교리에 충실하다는 이유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편견으로 인해 시달리기도 했다. 단추는 검소하지 않아서 옷에 달지 않고, 전화도, 자동차도 세탁기도 없다. 서로서로 도와야 하기 때문에 보험에도 들지 않고 정부의 보조도 받지 않는다.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원칙 때문에 군대에 가지도 않고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도 대응하지 않는다. 답답하리만큼 고집스러운, 그러면서도 순수한 이들을 보면서 대단하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서울대-카이스트 부부가 낙향해 산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정도의 차이일지라도 누구든 살면서 아미쉬 같은 삶을 꿈꾼다. 마치 연어가 가진 본능인 것 같다. 원시시대부터 우리 몸에 내재된 태초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다른 것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아쉬운 적이 없었듯이 가져 본 적 없는 것을 욕심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것을 지켜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