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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유혹 - 할인행사
해롤드 래미스 감독, 브랜든 프레이저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내가 중학생 때쯤 나온 영화다. 신문의 광고에서 본 기억이 난다. 영화 포스터도 내용도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보지 못했다. 물론 그 당시 그런 영화가 한 두 개가 아니었지만. 그러고 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 좋은 점이 이런 것인가 보다.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요령(?)있게 볼 수 있다.
악마와 거래를 하게 된 남자.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해 달랬더니 콜롬비아의 마약왕,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게 해 달랬더니 그 여인은 결혼한 후 바람을 핀다. 남성미가 넘치는 운동선수를 만들어 달랬더니 의외의(!) 장애가 있다. 과연 악마답다.
넌 결혼을 바란 거지 사랑을 바란 것이 아니라는 악마의 말은 여자의 모습을 한 악마가 해서인지 얄밉지가 않고 공감이 가게 한다. 여자는 돈과 권력에 끌리지 않는다는 말, 돈과 권력은 악과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초반부터 이 영화의 종착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일곱 가지 소원은 아마도 성경을 기반으로 한 것일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악마를 상징하는 6이라는 숫자보다 하나가 더 많은 숫자 7은 완전함이 아니라 함정에서 벗어남을 뜻할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는 유혹을 벗어날 수 있기 위한 도움닫기일지 모른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곱 가지 소원을 말해 보라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브랜든 프레이저의 코미디 연기는 최고다. 우유부단한 평범한 남자에서 남미의 야성남, 닭살스러운 대사를 읊어대는 감수성이 예민한 남자를 오가며 잘 표현해낸다. 특히 운동선수 역할은 쉬우면서도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짧은 순간이지만 그 모습은 정말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프로 운동선수의 전형적인 이미지이다. 소리소리 질러대며 이야기하는 모습이라든가 쓰는 단어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든가 헤벌쭉 웃는 모습 등. 물론 다소 느끼하고 어벙해 보이는 외모 덕을 많이 봤겠지만.ㅋ 미이라 시리즈의 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코미디 연기에서 진중함이 가미되어 한 단계 더 세련되어졌다고 느껴진다. 그 이후에는 꽤 무게감 있는 연기도 많이 했는지 최근의 사진들을 보면 얼굴에서 신뢰감이 느껴진다.
만약 브랜든 프라이저 역할을 여자 배우가 맡고 악마를 남자 배우가 맡았다면 어떨까? 인터넷에 올라온 영화평을 보니 엘리자베스 헐리 같은 악마라면 나도 한번쯤 엮이고 싶다는 글이 기억에 남아서이다. 최근의 나쁜 남자 신드롬 이전에 심하지는 않았어도 한동안 나쁜 여자 신드롬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 영화의 엘리자베스 헐리가 그런 여성일 것이다. 악녀의 이미지, 너무 예쁘고 귀엽고 섹시하면서도 약간은 비어보이는(?) 매력이 있는 여자, 전혀 순종적이지는 않고 자꾸 남자를 골탕 먹이지만 왠지 모르게 남자한테 엄청 나쁜 짓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여자 말이다. 사실 영화 보는 내내 과연 이 여자가 악마인지조차도 의심이 간다. 악마와 거래하는 내용은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고 파우스트 등의 걸작을 비롯해서 수많은 소설, 전설에서도 반복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안 무서운 악마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짝사랑하는 여자의 침실에 들어가 일기를 읽어주는 대목에서는 이 악마가 진짜 악마인지 조력자인지 헷갈린다.
마지막 소원으로 인해 악마의 계약에서 풀려난 것, 더군다나 악마의 마지막 대사는 상당히 상투적이다. 하지만 선악은 이 땅 어디에든 있고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는 대사는 이 영화와 참 잘 어울린다. 너무 무섭지 않게 악마를 그려냄으로써, 또 악마와의 거래를 너무 무겁게 그려내지 않음으로써, 말 그대로 선악에 대한 선택이 얼마나 우리와 밀접하게 붙어있는지, 하루하루의 사소한 선택이 우리를 얼마나 착하게 만들고 나쁘게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