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까레리나 - [할인행사]
버나드 로즈 감독, 소피 마르소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내가 본 것은 그 중 가장 최근 작품으로, 소피 마르소와 숀 빈 이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레타 가르보와 비비안 리가 안나를 연기했던 이전의 영화들은 거의 전설적인 수준이란다. 두 영화를 보지 못해서 세 영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아마 소피 마르소의 안나가 가장 약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배우의 아우라 이전에 흑백 영화와 칼라 영화는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흰 눈이 가득 쌓인 러시아의 평원, 황금색의 무도회장, 화려한 궁전 등 아무래도 최근 기술을 사용한 영화로 인해 당시 러시아의 모습이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흐르는 극장의 모습은 계속 잔상에 남았다. 이렇게 엄청났던 나라가 요즘엔 왜 천덕꾸러기 같은 나라가 되었는지 안타깝다. 전에 읽어보려고 했다가 두께에 놀라 포기했던 적이 있다. 영화로 한 번 봤으니까 이젠 그 두꺼운 책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영화를 보고 나니 꼭 책을 읽고 싶어졌다. 내용이 방대하여 어쩔 수 없이 생략되었을 부분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답답하기도 했고 조바심이 날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일 레빈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졌다.

청년 장교와 아들까지 둔 귀족 부인의 불륜으로 이 영화 전체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이런 금기의 사랑은 영화부터 시작해서 드라마에서도 넘치도록 봤다. 아마 톨스토이의 소설 이전에는 상상조차도 힘든 파격적인 이야기지만, 하도 다른 곳에서 많이 갖다 써서인지 식상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옛날의 이야기뿐일까? 요즘은 어떨까?

예나 지금이나 불륜은 있었고 아마도 일반 서민들에게는 목숨을 버릴 정도로 큰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귀부인인 안나가 기차에 뛰어들었던 그 당시만큼, 요즘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류층이라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방영된 ‘유리의 성’이라는 드라마에서 재벌가의 큰며느리는 끝내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그 사생아까지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다. 아마 일반 중산층이라면 절대 그렇게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봐야 하나?

예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이 소설은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쓰였다고 비판하는 내용을 얼핏 본 적이 있다. 물론 작가가 남자니까 당연히 여성적인 시각에서 썼을 리는 없다. 여성들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는 마지막 결말. 결국 안나는 패배자다. 인형의 집의 로라처럼 쿨하게 남편과 자식을 떠날 수는 없었을까? 조금 뒤틀린 생각이지만, 안나가 유부녀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브론스키가 절절하게 안나를 갈구했을까? 만약 안나가 똑같이 아름답지만 성격이 무척 까탈스러운 처녀였더라면 브론스키가 역시 그녀를 원했을까? 영화 속 대사에도 나오는 말, 유부녀에게 반하는 것은 나름대로 우아한 멋이 있다는 말은 영화에서 만들어낸건지 톨스토이의 원작에도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가지고 싶어하는 역설적 심리를 짚은 것 같다. 수많은 연애지침서에도 나오지 않는가. 남자는 도도한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말. 튕기는 여자에게 더 끌린다는 말.

내가 소피 마르소를 보고 자란 세대는 아니지만 한 때 남학생들의 책받침의 3대 모델 중 하나였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이 영화를 찍을 때쯤은 초등학교에 다닐 만한 아이가 있는 유부녀를 연기하기에는 딱 어울리는 나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타고난 미모인지, 관리를 잘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녀라도 믿을 것 같다. 그래서 브론스키가 한눈에 보고 반했다는 설정이 영화를 보면서 전혀 억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번에 시선을 확 끌지는 않았지만 소녀처럼 순수하면서도 깊은 눈매는 볼수록 빠지게 한다. 숀빈은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여기서의 모습도 멋지지만 맹목적인 열정에 휩싸이는 청년 역으로는 조금 나이가 들지 않았나 싶다. 세심하면서도 감성적인 면이 돋보여야 할 텐데 누가 봐도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라 유부녀와 바람난 상대라기보다는 오히려 배신당하는 남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왜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불행했는지는 책을 읽어봐야 자세히 알 것 같다. 영화상에서는 남편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안나의 말이 이기적으로 들린다. 어떤 장면을 보아도 남편은 안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이성적인 모습이 부각되어서 그렇지 안나와 브론스키의 열정보다 그의 사랑이 더 깊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안나가 불쌍하면서도 미웠다. 나이차가 나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세대차에 대한 불만을 다른 핑계로 대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군데군데 나오는 나레이션은 아마도 톨스토이의 문장들일 것이다. 그가 왜 위대한 작가인지 알겠다.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문장. 소위 폐부를 찌른다는 표현이 너무나 어울린다. 핵심만 짧게 찌르고 바로 물러나는데도 그 아픔이 계속 은은하게 퍼지는 느낌이다.

배경이 러시아여서인지 관련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 근처의 인물이 나레이션을 한다는 점에서 닥터 지바고가, 남자 주인공이 군인으로 힘든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러브 오브 시베리아가 떠올랐다. 사람이 파묻힐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는 곳, 러시아에 대한 나의 인상은 전부 영화의 대표적 이미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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