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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 감독판 박스세트 (8disc) - MBC 주말특별기획드라마
안판석 감독, 송선미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의 장준혁, 일본의 자이젠’을 통해 돌아본 바람직한 의사상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대생들이 모이면 꼭 한번은 나오는 화제가 있었다. 의대생이라면 다들 관심 있게 보았을 드라마 ‘하얀 거탑’ 이다. 아마도 ‘장준혁’이 유서를 남기며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시청자도 많았을 것이다. 원래 이 드라마는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78년 방송 당시 의료사고, 교수가 되고자 하는 야망, 대학병원의 뒷모습 등 그때까지 일반적이지 않았던 내용을 세밀한 취재에 의해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의학계의 실상을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25년 만에 일본에서 연속극으로 리메이크한 작품 역시 원작이 지닌 압도적인 에너지, 그리고 철저한 취재와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는 냉철하고 비정한 대학병원의 조교수 자이젠 고로와 그의 라이벌이자 인간미가 넘치는 의사 사토미 슈지의 대비되는 삶을 그려내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MBC에서 방송된 ‘하얀 거탑’을 관심 있게 시청했는데 이번 방학 과제를 기회로 일본 판 ‘하얀 거탑’(2004년 리메이크 작품)을 보고 의학계의 이면과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인공의 성격, 지위 등은 거의 비슷했지만 한국의 장준혁은 간담췌외과를, 일본의 자이젠은 식도외과를 전문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드라마 ‘하얀 거탑’의 한국 시청자들이 가장 감명 깊게 본 장면은 아무래도 장준혁이 유서를 남기고 죽는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또 자문 교수님이 우리학교 선배님이어서 1, 2부의 수술 장면과 5부에서 간, 신장, 췌장 이식을 동시에 하는 장면, 그리고 10부에서의 세계외과학회 회장 부인의 담낭말기수술 장면은 바로 우리학교 부천병원에서 촬영된 것이라고 들어서 이번에 볼 때에는 더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중간에 법정 장면이나 정치적인 면을 묘사한 부분은 아마도 일반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었을지는 모르지만 대다수 의대생이나 의사들에게는 보기 좀 불편한 장면이었을 것이고 나 역시 그랬다.
주인공의 캐릭터와 대부분의 에피소드까지 일본 판 원작과 매우 흡사하지만 원작과는 다른 몇몇 부분이 있었다. 그 중 한 가지는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식도외과를 전문으로 했지만 한국판에서는 간담췌외과 전문이라는 것이다. 작가가 그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을 수 있지만, 드라마 방영 전까지 생소하게 느껴졌던 이 분야가 최대한 잘 그려졌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수술해야 하는 간담췌외과의 질환들은 예후가 안 좋은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수술하지 않고 포기하려 한다고 들었다. 또 간담췌외과 자체가 대부분의 수술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간 자체가 신체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간부전인 환자는 간이식을 못 받으면 죽게 되는 등 매우 힘든 분야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보상을 받지 못해서 외과 중에서도 특히 간담췌외과는 지망을 잘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물론 드라마가 나온다고 해서 현실의 반전이 클까하는 생각은 들지만 드라마를 감명 깊게 본 수많은 의대생들이 조금이라도 이쪽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른 시기부터 이 분야에 대한 꿈을 키운다면 이 드라마가 갖는 의의가 더욱더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 MBC에서 ‘하얀 거탑’이 방영 중일 때, 원작에 비하여 장준혁이 최도영보다 훨씬 더 부각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번에 일본 판을 보니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처음에 기획을 할 때부터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 드라마가 진행되어 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장준혁을 미워하기보다는 그에게 공감하게 되면서 흐름이 그렇게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거탑’이 방영중일 때는 매 회당 70분 정도로 상당히 자세하고 길게 방송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편집상 빠진 장면이 좀 있다고 한다. DVD에는 아마도 편집된 부분이 추가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좋은 드라마를 DVD를 구입하여 언제든지 재미있게 보면서 오래오래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신문 ‘청년의사’ 참고)에서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최도영보다는 장준혁에 공감이 간다고 응답했다. 일반 시청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최도영보다는 장준혁에게 치료받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드라마 ‘하얀 거탑’의 자문 교수님인 주종우 교수님께서 하신 인터뷰 기사에도 바람직한 의사는 장준혁과 최도영의 비율이 6:4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환자를 소홀히 보았다는 점, 또 너무 야욕을 부렸다는 점만 빼면 임상적인 스킬이나 의사로서의 자질로만 보면 최도영보다는 훨씬 더 우월하다고 생각된다. 최도영은 너무 냉철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했고, 특히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외과의로서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 하고 생각된다. 물론 드라마를 보던 중에는 장준혁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항상 높은 데로만 올라가고 싶어 하는 장준혁의 욕망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마음 한 구석에 다 야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얀 거탑’이 의사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에까지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병원 뿐 아니라 어느 사회의 누구에게도 충분히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드라마에서도 장준혁의 죽음을 그의 모든 라이벌이 다 안타까워했다. 물론 그 사람이 죽지 않았더라면 자기 자신을 반성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살아서 계속 야욕을 부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보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그가 살아서 남아있는 것이 의료계의 상당한 발전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드라마 내내 그와 격렬하게 대립했던 사람들도 드라마의 막바지에 가서는 어떻게든 그를 살리려고 노력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에 장준혁이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관심이 있어서 한번 찾아보니 의외로 의사들은 자신의 시신을 잘 기증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의대생일 때의 실습과 의사가 된 후 수많은 수술을 거치고 나서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내어 주는 것에 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된다. 아직 예과생인 내가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나도 나중에 장기나 시신 기증 서약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품게 되었다.
‘하얀 거탑’과 비슷한 시기에 ‘외과의사 봉달희’라는 또 다른 메디컬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둘 다 인기를 끌어서 인터넷상에서는 두 드라마를 비교도 많이 했고, 나 역시 두 드라마를 모두 즐겨 시청했던지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의대생인 나로서는 ‘봉달희’가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학교 모임에서도 병원 실습을 도는 본과 선배들로부터 ‘봉달희’가 재미있고 현실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마도 ‘봉달희’는 레지던트 1년차의 이야기이고 ‘하얀 거탑’은 전문의가 대학교수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이므로 의대생들과는 어느 정도 동떨어져 있는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봉달희’보다는 ‘하얀 거탑’이 정치적인 면을 강하게 드러낸 것도 의대생들이 더 멀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방영 시기가 의료법 개정 때문에 전공의들이 많이 민감했던 때라서 ‘메디게이트’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하얀 거탑’이 많이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나도 ‘하얀 거탑’을 재미있게 봤고, 정치적인 부분도 솔직히 흥미롭게 보기는 했지만 의대를 다니는 학생으로서는 우리 의료 현실을 좀 더 반영하고 병원 내의 생활이 더 중심이 되는 그런 드라마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의대를 다니지 않는 주변의 친구들 중에서는 ‘봉달희’를 보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하얀 거탑’에 비해서 ‘착한 의사’들을 많이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의사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기존 시각이 부정적인 것에서 다소나마 ‘봉달희’를 통해 좋게 바뀌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터넷상에서는 두 드라마 모두 ‘재미를 위해 현실을 과장했다’는 비판과 함께, 비슷한 외국의 메디컬 드라마나 원래의 원작과 비교하여 부족한 점에 대한 질타가 방영 내내 이어졌다. 아마도 단순히 드라마적인 재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의학 전반 분야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하얀 거탑’의 장준혁은 최고의 외과의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그가 그런 삶의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의 첫 단계는 바로 정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국내 최고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세계최고가 되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길이었다.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의료 현실에 적응하고, 그 앞에서 선두주자로 나아가려면, 장준혁처럼 평생 동안 계속 공부하며 부단히 자기 계발을 하는 데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장준혁은 그 과정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새로운 질병의 케이스들을 만나고 그것을 정복하는데 희열을 느꼈다는 점에서 약간 소름이 끼치기는 하지만, 그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태도만큼은 나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장준혁이 오로지 개인의 명예와 권력만이 목적이었다면 외과, 그 중에서도 남들이 다 기피한다는 간담췌외과를 굳이 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담낭암, 담관암, 췌장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게 할까하는 나름의 사명감과 소신 때문에 그 분야를 택하고 거기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하고 생각된다. 가장 훌륭한 의사는 최도영의 마음과 장준혁의 기술이 조합된 의사일 것이다. 환자에 대한 애착과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는 노력, 거기에 체력까지 덧붙여진다면 아마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생각보다 여자의사에 대한 이야기나 비중이 좀 적은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과, 정치적인 면을 부각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리고 내가 여자라서 지나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여자 의사, 또 여자 외과 의사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 드라마에서 짚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존재하는 여자의사에 대한 선입견이 바뀌는데 많은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하얀 거탑’의 영향은 너무나 큰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렴풋이나마 외과는 돈도 많이 못 벌고, 힘들고, 가족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또 선배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어서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진정한 의사는 아마도 외과의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조차도 오랜 시간 동안의 수술 이후 죽기 직전의 환자가 살아나는 장면에서 짜릿한 감동을 느꼈을 정도인데 실제로 생명과 관련된 장기를 다룬다는 것은 정말 의사로서의 멋진 모습이고 큰 매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된다. 편한 것을 좋아하고 물질적인 것을 많이 따지는 요즘 세상에 단순히 이런 점 때문에 외과를 선택하는 현직 외과 의사 분들이 모두 존경스러웠다. 외과가 다른 과에 비해서 자기 분야에 대한 애착이 훨씬 강하고 특히 환자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외과에 대한 현재의 대우가 나중에는 달라지고 언젠가는 보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아니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 거탑’은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묘사가 컸다. 그래서 단순히 병원이 무대인 정치드라마라고 생각될 때도 있었다. 아마도 중년 남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최근 들어 메디컬 드라마와 영화가 많이 나오고, 또 그 내용이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얀 거탑’처럼 다양한 내용이 담기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의료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반감이 매우 큰데 의사를 무조건 신성시하는 것보다 장준혁처럼 의사도 불완전할 수 있고 충분히 공감갈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려내는 것이 오히려 의사를 친근하게 느끼고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통해 지루함을 달래고, 약간의 감동과 재미를 느끼는 것은 어떤 시청자라도 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 ‘하얀 거탑’을 시청했을 때는 그랬다. 하지만 이번 방학 때 이 드라마를 다시 한 번 돌려 보면서 생소했던 간담췌 분야에 대해서도 아주 약간이지만 알 수 있었고, 의사로서, 또 앞으로 의사가 될 의대생으로서 현재와 앞으로의 내 자세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다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