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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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섯 명의 요리사들은 내가 없을 때 내 이야기를, 내가 다시 자리에 돌아왔을 때 딱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했다. 나는 그들 틈에 끼어 있는 나를 K라는 사람으로 한번 가정해 보았다... K의 삶은 이렇게 몇 문장으로 일목요연하게 요약되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나라도 K가 없으면 K 이야기를 했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도리어 안도가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K는 최소한 아무도 화제로 삼지 않는 그런 삶을 살지는 않은 모양이니까.




이것은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체념에 가까운 관조적 자세일까. 나는 처음에 이 부분을 읽고 묘하게 마음이 탁 놓이면서 슬며시 미소도 지어졌다. 조경란의 소설은 약자, 정확히 말하면 패배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는 점에서 나에게 늘 힘이 된다. 이 부분을 보니 삶의 실패들은 모두 훈장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도, 최소한 아무도 화제로 삼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소설로 치면 최소한 읽다가 책을 던져버리지는 않을 성장 소설쯤은 될 게다. 조금 지루해도 끝까지는 일단 읽어볼만한 정도라면 괜찮지 않은가. 원래 실패를 겪고 난 타인의 이야기만큼 정감 가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나를 H라고 가정했을 때, 나라도 H 얘기를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정말 묘하게 마음 편해진다.




삶이란 게 다 이런 것일 게다. 지원이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도 ‘죽여주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또 삼순이가 매번 상처받으면서도 이렇게 다짐한 것처럼.




하지만 미리 두려워하진 않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열심히 케이크를 굽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 김삼순을  사랑하는 것.




책을 읽으면서 내내 삼순이가 떠올랐다. 요리사와 파티시에. 30대의 노처녀. 무엇보다도 사랑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까지 집어던지지는 않은 씩씩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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