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샘, 네가 바지에 오줌을 싸는 날도 이제 끝난 것 같다. 그러니 그 일로 부끄러워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부끄러움은 살아가는 내내 다른 방식으로 계속 찾아올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때면, 너를 사랑하고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아가기 바란다.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자신이 드러났을 때 맺어지는 친밀감속에는 놀라운 기회가 숨어 있다. 네가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으로 사랑받을수 있는 기회가!


 

'꼬리표'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샘, 지난 세월이 내게 일깨워주었다. 내가 곧 전신마비는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나는 전신마비가 '있는' 사람일 뿐이다.
너도 자폐증이 '있다'. 그러나 네가 자폐증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에게 붙여진 '꼬리표'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한테 말조차 걸지 않거나 우리를 믿지 않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척추손상으로, 넌 자폐증으로 단지 남들과 모습이 다르고 행동하는 방식이 따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노마가 내게 가르쳐준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 샘, 우리 이렇게 말하자.
"할어버지는 몸에, 저는 마음에 사고를 당했어요. 하지만 우리 영혼이 다친 건 아니에요."


 

마음에 대해 삼십여 년 동안 공부한 끝에,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의 마음은 '고장난 콩팥'이다! 이렇게 말하면 할아버지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들어보아라.
콩팥(신장)은 매일 백구십 리터 정도의 혈액을 여과해서 필수영양소를 걸러내고 나머지 액체는 몸 밖으로 배출한다. 우리의 마음은 매일 수입 억 개가 족히 넘는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단순한 감각을 자극하는 메시지에서부터 과거 회상, 미래 예측, 감정 반응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거리도 많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마음은 영양가 있는 생각과 노폐물로 처리해야 할 생각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콩팥은 혈액 중에서 영양분을 많이 걸러내고 극히 일부분만 노폐물로 배출하는 반면, 우리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의 생각 중에서 적어도 구십 퍼센트는 마음 밖으로 배출해야 할 영양가 없는 것들이다.


 

모든 아픔은 과거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었든, 예전에 어떤 존재였든 관계없이 말이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고통을 낳는다. 사람들은 고통이 빨리 사라지지 않으면 스스로를 탓한다. 고통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자신이 강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또 자기가 애초에 너무 나약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상처는 그렇게 치유되는 게 아니다. 상처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 상처는 그 자체의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아무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어른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번 살았던 삶을 다시 살려고 하거나, 이룰 수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날 네가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가진 현재의 삶을 살 때, 지금 여기를 살 때 인생이 훨씬 행복해진다는 것을.
고맙다. 샘.



시골의사 박경철(외과 전문의, 경제평론가)


고백하건대 처음 출판사에서 이 책의 추천사를 부탁받았을 때의 느낌이 썩 탐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심 원고를 대충 한번 훑어보고 한두 줄의 상투적인 서평을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의 입을 통해 철학을 이야기 하는 책, 현자의 말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책, 우화의 형식으로 교훈을 들려주는 책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거기에 아류의 책이 또 한 권 얹혀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졸린 눈을 비비면서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자세를 바로잡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어느새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다. 우리가 서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다.

정신과 의사 출신인 저자는 삼십 오년간 심리상담가로, 그중 삼십여 년은 경추골절로 인한 전신마비 환자로, 또 자폐아 손자를 둔 할아버지로 살아왔다. 그의 삶은 소설처럼 파란만장하다. 그러나 이 책은 설익은 무용담이나, 최루성 투병기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는 자폐를 겪는 손자 샘에게 주는 편지를 통해 자신을, 주변을 용서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길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편견을 대상으로 한 ‘싸울 가치가 있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책은 평화롭고 따뜻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겁고 충만하다. 그래서 이 책을 그저 ‘감동적’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하기에는 송구하다. 나는 오늘 이 책이 내게 들려 있음에 감사하고, 책 속에서 그와 샘을 만난 것이 눈물겹게 행복할 뿐이다.




정혜신(신경정신과 전문의)

외과의사의 치료도구가 수술용 메스라면 정신과의사의 치료도구는 자기 인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요체는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자폐아라는 딱지 때문에 손자의 수많은 개별적 특성들이 가려지는 것을 경계하는 할아버지의 그윽한 시선으로, 심리상담의이기 전에 ‘전신마비 환자’로 규정되는 것에 대한 고요한 저항의 시선으로, 명함에 ‘인간(Human) 고틀립’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새겨 넣은 그의 사람과 세상에 대한 얘기는 깊고 곡진하다.

인간의 마음을 대하는 태도에 정석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고틀립의 이런 진정성일 것이라고, 정신과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경원(국회의원)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작품에 평을 한다는 것은 매우 고단할 뿐만 아니라 어색한 일이다. 엄청난 시간과 땀을 투자해 만들어낸 평생의 역작일 수도 있을 텐데 불과 몇 마디로 재단을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 한 장 한 장에 내 손때를 묻혀나가면서 문득 여러 단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소녀 시절 읽었던 하근찬의 ‘수난이대’와 몇 년 전 보았던 ‘오아시스’와 ‘아이 엠 샘’이란 영화이다. 모두 감명 깊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프고 불편했던 그런 소설과 영화들이다.

그러나 본인이 장애를 가졌거나 가족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마음의 불편을 넘어선다. 현실에서 오는 견딜 수 없는 차별, 편견으로 모든 것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장애를 갖고 있는 딸이 있기에 이 책은 누구보다도 나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눈물짓게 만들었다.

 

엘렌 바스(시인, ‘The Courage to Heal’ 저자)

마음을 찢어놓고 새롭게 꿰매어주는 책이다. 고통과 상실의 극한 경험을 헤쳐나온 저자의 지혜를 곱씹는다면, 그것은 황금이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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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할미 2009-07-2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 하나의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을 꼽겠다는 카피가 이 책에 대한 그 어떤 평보다도 진실하고 정확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