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보았으나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책의 소개를 보면 출판 이후 이른바 니나 신드롬까지 불었다는데, 그 시대라면 모를까 요즘 시대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낡아 보이는 주인공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 평가가 박한가? 그만큼 내가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굳이 태클을 걸어보자면, 중년 남성의 삶의 의미란 딸만큼이나 어린 여성과의 사랑이 아니면 찾아낼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삐딱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사랑이 맞는지, 그저 지나가버린 자신의 젊은 날을 붙잡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평탄하게 살아온 니나의 언니가 니나를 부러워하듯이. 정작 젊은 시절 열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니나는 언니의 그 안정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슈타인이 실제 니나를 사랑했는지 아리송하다. 열정적이고 불완전한 젊음 그 자체를 붙잡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대놓고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하는 남성이 오히려 털털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사랑일 수 있다. 숨이 막히는 사랑이겠지만.

슈타인은 그렇다치고 니나는 어떠한지. 학교 수업을 거부할 정도로 안락사를 반대하면서 정작 남편의 조력 자살에 협조하는 모순. 그 모순 또한 인간의 한 부분인 것은 맞는데, 한 인간 안에서의 변화에 대한 통찰 수준까지 소설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전후 세대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성숙한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 감정에만 몰두하는 니나는 그저 자기 파괴적인 본능에서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고, 소설 자체로만 보면 매력적인 소설은 맞는데, 인물이 매력적인 것은 모르겠다. 신드롬까지는....... 정말 모르겠다. 분명히 니나는 작가의 모습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인물일텐데 작가에 대해 찾아보다가 한때 나치주의자였다는 경력이 드러났다고 한다. 스스로를 반나치 인물로 열심히 포장하며 살았다는 것인데, 한 때 이 소설과 니나를 열렬히 마음에 품었던 사람들에게는 아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