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혐오 동서 미스터리 북스 64
에드 맥베인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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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60

로저 하빌랜드는 형사이다.

동료들은 그를 황소 형사라고 불렀다. 그는 진짜 황소였다. 형사들은 짜브또는 황소라고 부르는 것과는 별도로 그는 짜브 황소라 불리고 있었다. 몸도 건장할 뿐만 아니라 식성도 그렇고, 힘도 그러했고, 코로 숨쉬는 것까지 거칠었다. 그가 사나운 황소라는 데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성질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황소 형사였다.

그가 좋은 형사였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 자신마저도 잊고 있으니까. 언젠가 그는 잡아 온 사나이에게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입으로만 몇 시간이나 심문한 적도 있었다. 말할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악담을 늘어놓지 않은 시절도 있었던 것이다. 그도 지난날에는 점잖은 경찰관일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번 세상에서 불운한 일을 만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분서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싸움을 말리려고 했었다. 그 무렵의 그는 자기의 직무를 하루 24시간 내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심적인 경관이었다. 싸움은 흔히 있는 것이었다. 사실 친구끼리의 단순한 말다툼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권총 같은 게 얼굴을 내밀 만한 싸움은 아니었다.

그는 그 사이에 끼어들어 조용히 말리려고 했다. 그가 권총을 빼들고 싸우고 있는 무리들의 머리 위로 두세 발 공포를 쏘아올리자 무엇을 어떻게 착각했는지 싸움을 하고 있던 한 사람이 그의 오른쪽 손목을 파이프 토막으로 내리쳤다. 그의 손에서 권총이 떨어지면서 그에게 불행한 사건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싸우고 있던 무리는, 그때까지 상대방의 머리를 때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경관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모두들 권총을 잃어 버린 그에게 달려들어 길바닥에 쓰러뜨리고는 잠깐 사이에 마구 짓이겨 놓고 말았다.

파이프를 들고 있던 자는 그의 팔을 네 군데나 꺾어 놓았다.

복합 골절이라는 것은 통증이 심하다. 상처가 쉽게 맞붙지 않아, 할 수 없이 의사는 뼈를 헤치고 처음부터 맞추어 나가야 했다. 이로 인한 고통은 말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하빌랜드는 자기가 경관으로서의 임무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어떨지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수사과의 일반형사가 된 바로 뒤여서 앞일이 그다지 희망적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그동안 팔의 상처는 다 나았다. 대개 팔은 잘 낫는 편이다. 몸은 옛날과 같이 회복되었으나, 그의 사고방식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옛말에 심술쟁이 하나가 세상을 어지럽힌다라는 말이 있다.

그 파이프를 들고 있던 녀석은 시 전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이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하빌랜드는 그 뒤로부터 황소같이 완고한 진짜 황소 형사가 되었다. 그 일이 그에게는 좋은 교훈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 뒤 하빌랜드가 용의자를 잡는 데는 한 손으로도 충분했다. 겸손하게 나가지 않고 상대방을 납작하게 할 방법만 생각하면 곧 고압적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하빌랜드에게 붙잡힌 자로서,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료 경관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갖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호의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책 전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우직하지만 순수했던 한 경찰이 어떻게 무자비하고 냉정하게 바뀌어 가는지 묘사가 대단하다. 책을 죽 읽다 보면 경찰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홈즈나 루팡, 크리스티의 소설에서 대체로 사설탐정에 미치지 못하는 경찰을 묘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에는 경관 혐오, 한밤의 공허한 시간 두 편이 실려 있는데, 당연히 책의 제목으로 앞세운 경관 혐오가 일품이지만, 한밤의 공허한 시간도 인상적이다. 정말 재미있어서 내가 왜 이 작가를 그동안 몰랐나 싶어서 작가에 대해 조사해 보니, 소개된 이름만 8개이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필명을 써서 글을 썼다는 것인데 왜 그렇게 썼는지 궁금하다. 이건 나만의 추측인데, 한 이름을 써서 유명해지니까 취재를 하는 데에 제약이 있어서 다른 필명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묘사를 하는데 취재를 대충 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의 의외의 이력은 바로 히치콕의 영화 새의 각본을 썼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에반 헌터라는 이름으로 올라가 있다. 개명을 하긴 했지만 이 이름이 본명이라고 한다. 개명 전 본명은 살바토레 앨버트 롬비노라고. 그 외에 이름으로는 커트 캐넌, 헌트 콜린스, 리처드 마스튼, 에즈라 해넌, 존 에벗 등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이름으로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소설을 썼는데 범죄 소설은 물론이고 과학 소설과 동화, 극작가로도 활약했다.

얼마나 소설을 많이 썼으면 기관총 작가라고 불린다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87분서 시리즈’, 그리고 가장 알려진 그의 필명은 ‘87분서 시리즈를 쓴 에드 맥베인.’ 이 경관 혐오나 한밤의 공허한 시간도 그 시리즈 안에 들어간다. 후에 드라마화가 되었는데 그 드라마의 각본도 맡았고, 형사 콜롬보 시리즈의 각본도 맡았다고 한다. 가공의 도시 아이솔라에서 형사 캘레라가 있는 87분서 경찰들의 이야기는 후에 나온 거의 모든 경찰 소설과 경찰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페르 발뢰와 마이 셰발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도 영향을 줬다고 하는데, 이전에 동서 미스터리 북스로 이미 읽었던 웃는 경관이 바로 이 시리즈이다. 그때는 읽으면서 독특하고 흥미롭다는 생각은 했지만 명성에 비하면 다 읽고 나서 기억에 계속 남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책은 확실히 더 재미있다. 마치 요즘 나오는 수사물, 특히 영미권의 경찰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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