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2
S.S. 반 다인 지음, 안동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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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인 작품 중 비숍, 그린, 카나리아 이 세 작품을 최고로 꼽는 것 같다. 이 순서대로 동서미스터리북스에 나와 있으며 책이 나온 순서는 정반대다. 아마 점점 상승세던 작가가 그린살인사건에서 피크를 찍은 것 같은데 카나리아 살인사건은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앞의 두 권에 비하면 정교한 맛은 좀 떨어진다.
파이로 번스가 나오는 두번째 소설이다보니 탐정에 대한 소개가 비교적 자세히 나온다.

진상을 밝히면 매컴은 그 유명한 범죄 사건들에서 대부분 조연 역할을 했을 따름이었다. 그 사건을 실제로 해결한 공적은 그 무렵 이름을 밝히기 싫어한 매컴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로 돌아가야 마땅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사교계의 젊은 귀족으로, 이름을 밝힐 수 없으므로 파이로 번스라고 부르기로 한다.
번스는 갖가지 놀라운 천분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규모가 작으나마 미술 수집가였으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데다 미학과 심리학에 조예 깊은 학도였다. 미국사람이었지만 대부분의 교육을 유럽에서 받았으므로 그의 말투에는 영국적인 액센트와 억양이 얼마쯤 남아 있었다. 그에게는 독립된 풍부한 수입이 있었으며, 집안 체면상 치러야 할 사교적인 의무를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으나 게으름쟁이도 아니고 호사가도 아니었다.

그는 빈정거리는 듯한 초연한 태도를 지녔으므로 만나는 사람들은 그가 잘난 체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처럼 번스를 잘 아는 사람은 겉으로 나타나는 태도 뒤에 숨은 그의 참된 인품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번스의 그런 태도는 잘난 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민감한 성격과 고독한 본성에서 본능적으로 생겨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번스는 35살로 차갑고 조각적인 용모가 훌륭하고 인상적이었다. 갸름한 얼굴은 표정이 풍부했으나 어쩐지 엄격하고 냉소적인 기색이 깃들어 있어 친구들 사이에 울타리를 치는 근원이 되었다. 그는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은 주로 지적인 것이었다. 금욕적이라고 곧잘 비난받곤 했으나 나는 미학이나 심리학 문제에 이따금 그가 정열을 쏟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사와는 일체 멀리 떠나온 듯한 인상을 풍겼는데, 사실 정열도 없는 비인격적인 연극을 바라보는 관객처럼 차거운 눈빛으로 인생을 내려다 보면서 모든 일들이 부질없음을 소리없이 비웃고 있었다. 한편 지식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아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인간 희극의 아무리 하찮은 점이라도 그의 눈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번스가 비공식적으로 매컴의 범죄수사에 적극 관계하게 된 것은 결국 이 지적 탐구심 때문이었다.

탐정에 대한 소개인데 읽다 보면 작가 스스로 규정한 자기 자신, 아니 남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스스로의 모습이 바로 파이로 번스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작가의 분신이자 화자가 반 다인이라고 대외적으로 해놓고, 실제로는 번스처럼 보이도록 연출하고픈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닌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헤이스팅스나 왓슨에 비해 극중 화자인 반다인이 공기화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책은 시대상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사건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이 나오는데,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그리고 여보게, 자네는 상대방의 두개골 특징을 좀더 주의해서 연구해야겠네. Vultus est index animi(용모는 영혼의 지표)니까. 자네는 그 신사의 넓은 장방형 앞 이마며 가지런하지 못한 눈썹. 야릇한 빛을 띤 눈, 귓밥이 뾰족하며 아래위의 끝이 엷고 터무니없이 큰 귀를 눈여겨보지 않았나?

이거 골상학 아닌가? 현재 시점에서 유사과학이라는 사실 자체도 그렇다고 치더라도 타인종이나 타민족에 대한 근거없는 작가의 우월감이 드러난 부분 아닌가? 원래 이 작가가 현학적으로 유명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남은 용의자들을 데리고 포커를 치면서 범인을 추리하는 대목은 안 좋은 쪽으로 압권이다. 일단 다들 번스와 매컴에게 말로 들이받을 정도로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굴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 순순히 협조하여 포커를 치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포커판에서의 태도로 심리상태를 추리하여 범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너무 나갔다 싶다.

"매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에 거는 포커 플레이어는 교묘하고 유능한 도박사로서의 이기적인 자신감이 모자라는 사람이라네. 위태로운 다리를 건너가며 크나큰 위험을 무릅쓸 사람이 아니야. 심리학자가 열등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얼마쯤 가지고 있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유리하게 만드는 기회라면 무엇이든지 붙잡지. 요컨대 선천적인 순수한 도박사가 못되는 걸세. 그런데 오델을 죽인 사람은 수레가 한 바퀴만 더 돌면 어떤 위험한 곳에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것에 모든 것을 거는 으뜸가는 도박사였네. 그녀를 바로 그렇게 죽였으니까. 이기심만이 작용하고 절대로 확실한 것에 거는 일은 멸시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가진 도박사만이 그런 범죄를 해치울 수 있지.

이런 추리 할 수도 있는데 사건 초기라면 모를까 결말에 가서야 이러고 있는 것도 여러모로 황당하다.

번스가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나 난처하게도 나는 그럴 수가 없네. 전지전능한 신께서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네. 그러나--부디 믿어주었으면 좋겠네만--나는 아주 훌륭하게 범인을 지적했다고 생각하네. 그 수법까지 설명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잖은가."

결국 포커에서의 태도로 범인은 추리해내지만 범죄수법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델의 아파트에 다시 한 번 가보자는 번스의 제안을 내키지 않는 듯이 항의했을 뿐 결국 동의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 여기서의 오델은 카나리아라는 별명을 가진 살해당한 여배우다. 그러니까 이 대목 이후가 되어서야, 9부 능선을 넘어서야 다시 한번 피해자의 집을 확인하고나서 범죄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데... 이쯤 되면 번스를 명탐정 반열에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소설 자체는 재미가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번스나 반다인의 이름을 고려하면 그저 그렇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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