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과 선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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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은 몇 년 전 다른 출판사의 버전으로 읽은 적이 있다. 그때도 감탄하며 봤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별점을 짜게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높게 평가하는 책이 있고 더 낮게 평가하는 책이 있는데, 높게 평가하는 경우는 책의 진가를 그 당시 내가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개인적인 변화와 책 읽기가 합쳐지며 새로운 독서의 즐거움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마스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 제로의 초점 두 소설이 실려 있고 가격은 몇 년 전 그 책보다 더 저렴하다. 가성비 쪽으로도 여기가 나은 셈인데, 꼭 가성비 때문만도 아니고 번역도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번역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몇 년 전에 읽은 책은 2012년에 나왔고, 이 책은 2002년에 나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2002년보다 초판은 더 일찍 나왔을 것 같다. , 번역에 있어서 최소 10년에서 그 이상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옛스러운 표현이 좀 더 많아서 오히려 점과 선이 처음 나왔을 때의 일본 모습과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가 읽는 순간 마치 내가 그 시간과 공간에 가서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추리 소설 중 어떤 소설은 자꾸 내가 튕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트릭은 완벽한데 내가 그 소설 속에서 등장 인물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소설은 소설, 나는 나 이렇게 느껴지는 경우가 꽤 있다. 이 경우 아무리 트릭이 완벽해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인상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비교적 범인이 누구인지 빨리 짐작할 수 있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소설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사실 이 소설은 후대에 등장하는 미야베 미유키 등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가들의 원류(源流)라고 볼 수 있는데 소설 마지막 편지에서 이 사건과 핵심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어떤 자리에 가 있는지를 보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한 인간이, 아니 두 인간이 그저 도구로 사용되어 버린 상황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마지막 자살은 누가 봐도 반성이 아닌데 마치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들의 행위를 미화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남녀의 자살, 그 자살이 알고 보니 타살, 다시 두 남녀의 자살로 이어지는 구성도 굉장하다.

함께 실린 제로의 초점은 함께 실린 점과 선 만큼은 아니지만 소설 하나로만은 아쉬웠던 독자에게는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인상깊었던 한 구절이 있다.

 

아까스미라는 곳은 이 해변에서 약 4킬로쯤 북으로 들어간 해안입니다. 그곳은 매우 높은 낭떠러지로 되어 있어요. , , 아주머니는 한국의 해금강(海金剛)이라는 곳을 아시는지요?”

, 이름만은 들었어요. 그런데 아주 높은 낭떠러지라고 하더군요.”

그렇지요, 그 해금강과 똑같은 곳이 이 부근의 해안에 있습니다. 이름도 노또 금강(能登金剛)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갑자기 등장한 해금강에 이게 뭔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작가는 1944년 징집되었고 이듬해 한국에서 패전을 맞았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상당수 작품에서 한국 지명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어령 평론가가 강하게 비난했던 임화와 관련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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