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화살의 집 동서 미스터리 북스 25
앨프레드 메이슨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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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p

제임스 플로비셔는 한동안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젊은이는 지난해 허즐릿의 공동 경영자 지위를 이어받은 26살의 변호사였다. 일을 재빨리 처리해야 할 때에는 꽤 민첩하지만 다른 사람의 성격을 평가할 때에는 신중하게 도사리는 성격이었다. 더욱이 허즐릿 노인을 존경하는 나머지 사무실에서는 타고난 신중성이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키가 크고 휘청휘청하는 걸음걸이의 사나이로 이마가 좁고 눈초리가 아주 거칠었으며, 철사 같은 흰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 뻗쳐 있었습니다. 어쩐지 잘 다루어지지 못하는 인형극의 인형처럼 움직이더군요. 얼마쯤 격렬해지기 쉬운 감정적인 사람 같았습니다. 담배로 더러워진 손끝으로 자꾸만 쉬지 않고 콧수염을 잡아당기고 있더군요. 언제 어느 때라도 위험한 곳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은 사나이였습니다."

 

16p

셰익스피어 연극에나 나오는 것 같은 소동은 원칙적으로 플로비셔 & 허즐릿 법률사무소에서는 인정되지 않았다. 이곳의 일상 생활용품이 오래된 것처럼 여기에서 하는 방법은 위엄 있는 것이었다.

 

17p

제임스 플로비셔는 그를 잘 아는 사람이나 친구들로서도 겉으로밖에 알 수 없는 듯한 조금 색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고독한 사람으로 이제까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과 교제를 가졌다. 그 얼마 안 되는 사람조차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은 정도였다. 자기의 생활과 생활 수단이 좀 수준 높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덕을 입지 않고도 해 나가려고 하는 게 그의 신조였다. 여유가 생기면 그는 몇 달이고 이 신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썼다. 일인승 반갑판 돛단배, 얼음 절벽에 발판을 새기는 아이스 액스(얼음 깨는 도끼), 엽총, <<반지와 책>> 처럼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는 한 두권의 흥미진진한 책. 이러한 것들은 자신의 사상처럼 별하늘과 더불어 그가 종종 시도하는 고독한 탐험여행의 길동무였다. 그러다 보니 그의 풍모에는 기묘하게 초연한 빛이 더해져서 얼른 보기에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보였다. 이 풍모는 곧잘 사람을 속이기도 하는데, 그 까닭은 아무 근거도 없이 사람에게 신뢰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허즐릿이 지금 와베르스키 같은 남자와 교섭하게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사나이다라고 생각한 것도 이 믿음직한 풍모 때문이었다.

 

21p

"제임스, 이런 사건에는 99퍼센터 뭔가 감추어진 비밀이 있는 법이라네. 입 밖에는 내지 않지만 표면에 나타난 비난의 뒷면에 협박자가 단단히 쥐고 있는 비밀 말일세. 대개 대수롭지 않은 부끄러운 비밀이나 집안 명예에 관한 추문 같은 것이지만, 공적인 재판 사건이 되면 순식간에 표면화되고 만다네.

와베르스키의 경우도 그런 종류의 사실이 숨겨져 있을 게 틀림없어. 그 사나이의 고발이 터무니 없이 맹랑하면 맹랑할수록 그는 헐로우 집안 사람들이 남모르게 덮어 두고 싶어하는 집안 명예에 관계되는 사실을 쥐고 있는 것이 확실해. 다만 그 괘씸한 사실이 과연 무엇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짐작이 안 가네만."

 

162p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지요. 조금 마음이 괴로울 때 산을 보고 있으면 친구와 말없이 마주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와 마주앉는다. 이 말은 제임스에게 눈 덮인 비탈이며 바위 등성이 따위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아노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을 한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산이 전하고 싶어하는 포착하기 어렵고 거의 전달하기가 불가능한 온갖 미묘한 감정의 하나를 그는 이 말로 표현한 것이다.

 

독화살의 집. 원제는 The House of the Arrow.

 

위의 구절들은 읽으면서 인상적인 구절이라서 적어 놓았다. 평이하게 읽어나가다가 중간에 아, 하고 뭔가 마음에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적어놓았는데, 따로 저 문장만 보아도 인상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왠지 이 부분을 기억해 두면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복선으로 작용하지도 않고.

내가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로 다 읽고 나면 처음에 인물에게 받았던 느낌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게 범인에 국한할 때에는 소설 전체가 매력적이 되지만, 범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이 된다면 작가가 치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푸와로든 마플이든 홈즈든 왓슨이든 헤이스팅스든 루팡이든 레스트레이드든 대체로 인물은 누가 되었든 큰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게 행동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어떤 인물이든 처음 등장할 때와 나중에 퇴장할 때 느낌이 너무 달라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신랄하고 경쾌한 유머가 뭘까 궁금했는데 읽는 도중에 느낄 정도는 아니고, 다 읽고 나면 아하! 하고 느끼게 된다.

 

용의자의 수도 적고, 의외로 누가 범인일지 쉽게 추리가 가능해서. 초반에 생생한 묘사가 아까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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