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18
딕 프랜시스 지음, 김병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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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딕 프랜시스는 경마 챔피언 출신으로 엘리자베스 모후의 기수까지 지냈다고 한다.
단순히 챔피언이 아니라 350회가 넘는 경기에서 우승했고 왕실의 큰 어른의 기수까지 지냈다고 하니 이 분야에서는 명실 상부 1인자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왕좌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심각한 부상이 겹쳤고 경마 최고의 대회인 그랜드 내셔널 경기 중 마지막 점프에서 말이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승리를 놓치고 이후 은퇴했다고 한다.
은퇴 후 경마 기자로 일하다가 자신의 기수 경험을 바탕으로 약 40여편의 경마 스릴러를 출간했다고 하며,에드거 상, 대거 상, 왕실 작위, 타임스 선정 위대한 작가 50인, 미국 미스터리 작가 협괴 그랜드 마스터 등등 분야를 바꾸어서 또 한 번 챔피언이 된다.
2010년에 별세했다니 생각보다 최근이다. 1920년 출생이니 장수하신 편이다.

 

요즘도 왕실 기수가 있기는 하겠지만, 웬만한 행사는 말이 아니라 자동차가 대체하지 않을까 싶다.
포드사가 최초로 자동차 생산라인에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게 1913년이니 이동 수단이 말과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어가는 그 시기, 기수의 위상이 요즘과는 달랐을 무렵에 마지막 화려한 시기를 보낸 작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너무 오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이 소설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쫀득쫀득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이유는 주인공은 물론이고 경마 세계와 그곳에 발을 붙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기 때문이다.
종마 목장 경영자, 장애물 경주 이사회, 조교사, 마주, 마부장, 마구간 주임, 마부들 등이 생활하는 세계가 각각 어떻게 구분되어 있고, 또 그 각 세계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큰 경마라는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소통하는지를 보다 보면 역시 어릴 때부터 이 분야에 미쳐 있던 사람이 쓴 소설답구나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이 책은 작가의 3번째 소설이고, 해설을 읽어보면 아마도 작가의 소설 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작품인 것 같은데, 당당하게 읽어보라고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그 주인공이 원래 속해 있던 떠나온 세계와 새롭게 도달한 세계에 대한 묘사도 양쪽 다 섬세하고,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도 전부 흥미있고,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지 못하고, 범죄의 실상이 파헤쳐질 때는 전율이 느껴지고, 소설 전체의 결말은 깔끔하다.
아, 훌륭하다.

 

주인공 로크를 다른 소설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다른 소설에도 나오려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인 흥분의 원제가 뭔지 궁금했는데 원제는 For Kicks 이다. 이게 흥분이라는 제목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책을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아, 이래서 작가는 이 소설에 For Kicks 라는 이름을 주었구나 하고 알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흥분 이라는 한글 제목은 소설 전체 내용을 봤을 때 상당히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 입장에서나... 주인공 입장에서나...

 

해설에서 작가의 다른 소설을 소개했는데 놀랍게도 전부 2글자의 한자어다. 이것은 아마도 책을 번역해온 출판사에서 일부러 맞춘 것 같은데, 책 제목을 훑어보다 보면 중국 무협소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일본식으로 번역한 유럽의 모험소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담력이나 벌금, 골절, 연막은 그렇다 하더라도 본명이나 비월, 사문 등은 번역가가 고심해서 찾아낸 단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대혈이나 혈통, 혼전은 진짜 사전에도 안 나와 있는데 한자어가 없으면 흔히 쓰이는 다른 단어로 알겠다. 진짜 이건 너무 어거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출판사의 선택이 작가의 고유하고 특별한 점을 강조하는 효과는 있는 것 같다.

 

다음은 해설에 나온 딕 프랜시스의 소설 제목과 출간 연도를 정리한 내용.

 

1962년 본명本命: 사람이 태어난 해의 간지, 자기가 타고난 명
1964년 담력膽力: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
1965년 흥분
1965년 대혈大穴:  큰 구멍, 큰 동굴
1966년 비월飛越: 몸을 날려 위를 넘음. 특히 육상 경기나 마장 마술 따위에서 일정한 장애물을 뛰어넘는 것을 이른다.
정신이 아뜩하도록 낢
1967년 혈통穴通: 앞의 혈은 구멍이나 동굴을 뜻하고, 뒤에 통은 편지나 서류, 전화 따위를 세는 단위이다. 그러니까 전화 한 통, 편지 두 통, 서류 세 통 이럴 때 쓰는 통이다.
1968년 벌금罰金: 규약을 위반했을 때에 벌로 내게 하는 돈
1969년 사문査問: 조사하여 캐물음
1970년 혼전混田: 앞의 혼은 혼탁하다는 뜻이고 뒤의 전은 밭 전이다. 그러니까 혼전 양상이라고 표현하는 그 혼전과 혼은 같은데 전이 다르다.
1971년 골절骨折: 뼈가 부러짐
1972년 연막煙幕: 어떤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교묘하고 능청스러운 말이나 수단 따위를 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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