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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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 기구했던 세상을 살았던 여자의 일대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원제는 여자의 일생이 아닌 그냥 어느 일생이었다고 한다. 요즘 트렌드는 의역된 제목들의 원제를 찾아주는 것 같은데 아마 이 제목이 임팩트가 워낙 크기에 이 제목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일생이라는 제목만 보면 좋게 말해 중립적이고 나쁘게 말해 밍밍하게 느껴지는데 여자의 일생이라고 하는 순간 1800년대 프랑스가 아니라 마치 광복 이후나 한국 전쟁 이후의 대한민국, 혹은 응팔세대들의 청춘 시절의 대한민국으로 무대를 옮겨도 될 것 같은 친숙함이 있다. 샹송이 아니라 트로트 한 곡조가 저절로 뽑아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일생이라고 포털 사이트에 치면 모파상의 소설 뿐 아니라 이미자의 노래, 모파상과는 관련 없는 영화도 함께 뜬다. 요즘과는 안 맞는 제목일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원제인 어느 일생을 떠올리며 읽으면 되겠다.

어느 일생... 그러니까 인생이란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방향에 데려다 놓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지나 노력은 전혀 의미가 없거나, 발휘되더라도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반영된다. 다정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능하고 다소 허세가 있으며 결단력이 부족한 부모, 반대로 생활력 있고 결심은 빠르고 고집은 있으나 감정적으로 존중해주지 못하는 남편. 사실 양쪽의 장점만 잘 조합되었더라면 어떻게 시골 귀부인으로 무난하게 살 수도 있었을 수 있던 잔느의 인생이 잔인하리만큼 서서히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괴롭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잔느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저 올리는 튼튼한 동앗줄과 바구니가 각각 하나씩 등장하는데, 그것은 예전에 남편과의 불륜으로 인한 사생아의 출산으로 잔느의 곁을 떠난 하녀 로잘리가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방탕하게 살던 아들 폴에게 남겨진 어미 없는 딸이다. 아이러니한 것이, 만약 남편이 로잘리와 외도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상당한 양의 재산을 로잘리에게 주어 집을 떠나게 하는 일이 없었다면, 말년의 잔느가 의탁할 곳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주인에게 받은 재산을 착실히 불려나가고, 또 주인 부부에 대한 죄책감이 있기에 로잘리는 잔느의 튼튼한 안식처가 된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 폴의 방탕함은 잔느의 추락을 가속화했지만, 그 방탕함 속에서 생긴 딸인 손녀를 보며 잔느는 다시 희망을 갖게 된다. 과연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좋은 것과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말년의 잔느가 로잘리의 보호 안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정신 차린 아들 폴과 손녀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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