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아이 - 아홉가지 무민 골짜기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6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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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는 패터슨, 두 번째 이야기는 그것,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야기는 떠오르는 작품들이 너무 많았고, 여섯 번쨰 이야기는 독창적,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이야기는 친숙한 이야기를 살짝 비틀었고, 아홉 번째 이야기는 존재감이 부족했다.

 

첫 번째 이야기 봄노래

 

 '노래 짓기 좋은 저녁이군. 첫 소절에는 마음속 기대를, 두 번째 소절에는 봄의 우수를 그리고 나머지 소절에는 홀로 걸으며 느끼는 만족감과 끝없는 즐거움이 담길 새 노래를.'

 

 '내 노래에 시냇물이 들어가야겠어. 후렴 같은 자리에.'

바로 그 순간 폭포 낭떠러지에 있던 돌이 하나 빠졌고, 시냇물의 노랫가락이 한 옥타브 바뀌었다.

 

 그 순간, 스너프킨은 노랫가락이 잡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던 작은 녀석의 간절하고 수줍은 목소리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전에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어디 아픈 게 틀림없어.'

 

 스너프킨은 늘 빌던 소원을 빌 뻔했다. 새로운 노래를 짓고 싶다고, 아니면 언제 한번 새로운 길을 찾아내고 싶다고.

 하지만 스너프킨은 재빨리 마음을 바꾸어 말했다.

 "티-티-우우를 찾게 되기를."

 


두 번째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갑자기 배 속에서부터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차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누구 하나 마차 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훔퍼가 마차 생각을 하자마자 유령 마차가 나타났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내달리려고 어두워지길 기다리고 있는 유령 마차가.

 홈퍼가 말했다.

 "내 생각엔, 그러니까 나는 지금 십 년째 집을 찾아다니는 훔퍼 같아. 이제 집 가까이까지 왔고."

 


세 번째 이야기 재앙을 믿었던 필리용크

 

 "필리용크 여사님? 여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끔찍한 일 말인데요. 그런 일이 자주 있었나요?"

 필리용크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러니까, 가끔 있었다는 말씀이시죠?"

 필리용크가 말했다.

 "사실 한 번도 없었어요.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죠."

 

 필리용크의 환상이 천천히 폭풍우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필리용크의 집을 뒤흔든 폭풍보다도 훨씬 더 컴컴하고 사나웠다. 밀려드는 파도는 거대한 백룡이 되었고, 으르렁거리는 토네이도가 수평선에서 새까만 물기둥을 휘감듯 세웠으며, 그 번들거리는 새까만 물기둥은 필리용크를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필리용크의 마음속 폭풍은 언제나 가장 끔찍했고, 늘 그렇게 상상해 왔다. 그리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철저히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재앙이 조금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필리용크는 생각했다.

 '개프지 여사는 머저리야. 과자랑 베갯잇 말고는 생각도 못 하는 바보 같은 여편네라니까. 꽃을 보는 안목도 없지. 나를 눈곱만큼도 모르고. 지금쯤 집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아무것도 겪어 본 적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날마다 지구가 끝장나는 경험을 하면서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속 옷을 차려입었다가 갈아입고,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손님까지 맞는데 말이야!'

 

 필리용크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집 안 무언가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하지만 필리용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웅크린 채 눈을 크게 뜨고 밤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더는 춥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갑자기 무척 안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필리용크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하지만 필리용크가 더 걱정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마침내 재앙이 닥쳐왔는데.

 

 예전 필리용크는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필리용크는 자신이 예전 모습을 되찾고 싶은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리용크가 갖고 있던 장식품들은 다 어떻게 될까?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칠하고 또 고치지 못하면 마음 아파하고 금이 간 흔적은 영영 없어지지 않을 테고 예전이 훨씬 아름다웠다고 생각하고....... 맙소사! 그 뒤로도 계속 똑같이 음울한 방에서 똑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을 아늑하게 만들 궁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싫어, 안 돼! 예전이랑 똑같이 하려고 들면 나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겠지. 다시 두려움에 떨고....... 뻔해. 그럼 사이클론이 내 뒤를 슬금슬금 쫓아오고, 태풍이며 폭풍도......."

 

'아, 너무 좋아! 작고 가엾은 필리용크가 거대한 자연의 힘에 맞서서 뭘 하겠어? 이제 고칠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는데! 말끔하게 깡그리 치워져 버렸어!'

 

 '이제 두 번 다시 두려워할 일 없어. 이제 자유야. 이제 뭐든 할 수 있어.'

 필리용크는 새끼 고양이 인형을 바위에 내려놓았다. 모형의 한쪽 귀가 밤사이 날아가 버렸고, 코에는 폐유가 묻어 있었다. 새로워진 얼굴을 한 새끼 고양이는 조금은 짓궂고 건방져 보였다.

 


네 번째 이야기 세상에 남은 마지막 용

 

"내가 널 돌봐 주고 사랑해 줄게. 밤에 내 배게에서 자도 돼. 네가 더 커서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나랑 바다에서 헤엄칠 수도 있어."

 


다섯 번째 이야기 침묵을 사랑한 헤물렌

 

 그러자 친척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헤물렌이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일을 평생 해 왔다니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친척들이 비웃는 바람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이 있는 인형의 집을 만들겠다는 헤물렌의 꿈은 산산이 부서져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 친척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헤물렌에게 의미 있는 일을 망쳐 버렸다고 누가 친척들에게 말해 주었더라면, 친척들은 진심으로 미안해했을 터였다. 그리고 깊이 숨겨 두어야 할 남모를 꿈을 너무 일찍 말하고 다니면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여섯 번째 이야기 보이지 않는 아이

 

 "다들 알겠지만 너무 자주 겁먹으면 잘 보이지 않게 되잖아요."

 

 "음, 네가 끈적이는 버섯을 밟고 넘어져서 다듬어 놓은 버석 한가운데에 주저앉았다고 상상해봐. 엄마라면 당연히 화를 내겠지. 하지만 그 아주머니는 그렇지 않아. 대신 쌀쌀맞게 빈정대며 말하지. "네가 그렇게 춤추고 싶어 한다면 어쩔 수 없다만, 음식에 대호 그러지 않으면 고맙겠다." 하는 식으로."

 무민이 말했다.

 "어휴, 진짜 기분 나쁘네."

 투티키가 맞장구쳤다.

 "맞아. 왜 아니겠어. 그 아주머니가 딱 그랬다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빈정거리기만 하니까 결국 아이가 점점 옅어지더니 보이지 않게 되기 시작했어. 지난 금요일에는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아주머니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친척은 돌볼 수가 없다면서 나한테 닌니를 맡겼어."

 

 닌니는 하루 내내 무민 가족을 따라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가족들 모두 자기 위를 졸졸 따라다니는 방울 소리에 익숙해졌고, 닌니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더는 하지 않았다.

 

 "네가 말을 시작하다니 잘됐어. 너한테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말이지만. 할 줄 아는 괜찮은 놀이라도 있어?"

 닌니가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있다고 듣긴 했지만."

 무민은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아는 놀이를 닌니에게 모조리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었다.

 

 조그마한 들창코에 빨간 앞머리가 나 있는 화난 얼굴로 닌니가 부잔교에 서 있었다. 닌니는 무민파파에게 고양이처럼 카악 소리를 내며 고함쳤다.

 "아저씨가 저 크고 무서운 바다에 감히 아주머니를 빠뜨리려고 했어요!"

 무민이 소리쳤다.

 "닌니가 보여요. 보인다고요! 귀여워요!"

 

 닌니가 소리쳤다.

 "와! 진짜 재미있네! 아니, 진짜 신기해!"

 그리고 부잔교가 흔들릴 만큼 깔깔대며 웃기 시작해싿.

 깜짝 놀란 투티키가 말했다.

 "닌니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어요. 무민 가족이 쟤를 미이보다 더 고약하게 바꿔 놓았네요. 닌니가 보인다는 점이 중요하기는 하지만요."

 

일곱 번째 이야기 해티패티들의 비밀

 

 오래 전, 무민파파가 아무 설명도 없이 그리고 왜 떠나야 하는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채 홀연히 집을 떠나 버렸을 때였다.

 

 하지만 무민파파가 듣기로 해티패티들은 다투는 법이 없고, 과묵하기 그지없으며, 다른 아무것도 흥미가 없고 멀리 가고 싶어하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제 무민파파는 해티패티처럼 과묵하고 심오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다들 말수 적은 이를 존경하게 마련이었다. 과묵한 이들은 모르는 것 없고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해티패티들을 보자 무민파파는 갑자기 전기가 들어오듯 모든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크고 막강한 폭풍우만이 해티패티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있었다. 해티패티들은 강력하게 충전되어 있었지만, 꼼짝 없이 막혀 있었다.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채로 헤매고 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전기가 흐르면 온 힘을 다해 그리고 격렬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났다.

 

 '기뻐할 수도, 실망할 수도 없다니.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고, 용서조차 할 수 없고 말이야. 잠들 수도 없고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실수할 수도 없고 배가 아팠다가 나을 수도 없고, 생일 축하도 할 수가 없고, 맥주를 마시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도 없다니....... 아무것도 못 한다니. 정말 끔찍하군.'

 행복에 젖어든 무민파파는 악천후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무민파파와 가족들은 집에 전깃불을 켜지 않고, 여느 때처럼 호롱불을 켜 두었을 터였다. 

 


여덟 번째 이야기 세드릭

 

 세드릭은 살아 움직이지 않는 소장품이었지만 얼마나 근사한 녀석이었는지 모른다! 세드릭을 처음 보면 작은 플러시 천으로된 강아지 인형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황옥으로 만든 눈이 박혀 있고 목걸리 걸쇠 바로 위에는 자그마한 진짜 월장석이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바보 같은 꼬맹아. 할머니가 가진 걸 탈탈 털어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편을 만들었잖아. 건강을 되찾은 할머니는 연회를 열었어. 홀로 된 아이들을 위한 집도 지었고. 심해 잠수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지만, 불 뿜는 산은 볼 수 있었어. 그런 다음에는 아마존강으로 떠났지. 우리가 들었던 할머니 소식은 여기까지야."

 


아홉 번째 이야기 전나무

 

 "크리스마스가 너무 허기졌으면 어쩌죠?"

 무민파파가 군침을 흘리며 말했다.

 "나보다 더 허기지진 않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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