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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름 ㅣ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4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6월
평점 :
Farlig midsommar
이 작품의 원제다.
미드소마? 그러고 보니 최근에 개봉한 공포 영화 제목이 미드소마였던 것 같다.
찾아보니 ‘미드소마’는 90년에 한 번, 9일 동안 이어지는 한여름 미드소마 축제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공포영화라고 한다. 환한 대낮에 일어나는 공포를 그린 영화라고 한다.
미드소마는 이 책에도 나와 있는데 하짓날이라는 뜻으로, 백야가 있는 북유럽에서는 하지가 크고 중요한 명절이라고 한다. '위험한 여름'은 한여름으로 갈수록 낮이 길고 밤이 짧은 백야 현상이 일어나고, 한겨울로 갈수록 해가 떠 있는 시간이 극도로 짧아지는 북유럽 특유의 날씨, 그 중에서도 여름 날씨를 잘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북유럽의 겨울 날씨에 대해서는 이 다음 권인 무민의 겨울에 잘 나와 있다.)
한편으로는 한여름밤의 꿈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한바탕 꿈 속 일 같이 느껴지기도 해서다.
"석고에 색칠한 거네."
그러고는 사과를 집어 한 입 베어 물더니 말했다.
"이건 나무를 깎은 거야."
미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훔퍼는 걱정이 밀려왔다.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이 진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본뜬 물건이었고 예쁜 색깔로 제 모습을 감추고 있었으며, 손에 닿는 모든 게 종이나 나무나 석고로 만들어져 있었다. 황금 왕관은 가뿐하게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웠고, 꽃은 종이로 만들어져 있었고, 바이올린에는 현이 없었고, 상자에는 바닥이 없었으며, 책은 펼쳐지지도 않았다.
순수한 마음을 다친 훔퍼는 이 모든 상황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 보았지만,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훔퍼는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몇 주만이라도 일찍 태어났더라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밈블의 딸이 말했다.
"나는 여기가 좋아. 모든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잖아."
미이가 물었다.
"거기엔 무슨 의미가 있는데?"
밈블의 딸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없어. 그런 바보 같은 건 물어보지 마."
"그 코바늘 뜨개질 조언은 정말 고마워요. 실내화는 완성되면 바로 보낼게요. 주소가 어떻게 되죠?"
무민파파가 말했다.
"무민 골짜기면 충분해."
무민 가족은 잠시 계단에 멈추어 서서 안도와 안심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고, 가만히 서서 다시 집에 있는 느낌을 맛보았다. 모든 게 예전과 다름없었다.
베란다에 실톱으로 무늬를 새긴 예쁜 난간은 부서지지 않았다. 해바라기도 남아 있었다. 물통도 남아 있었다. 해먹은 홍수 때문에 물이 빠져서 색깔이 더 예뻐졌다. 하늘이 비치는 작은 물웅덩이도 하나 생겼는데, 미이에게 맞춤한 수영장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위헌한 일도 더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원에 난 길은 조개껍질로 가득했고 계단은 빨간 해초 화관을 두르고 있었다.
"이제 더 필요한 건 없지?"
스너프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응."
무민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새로운 담배를 피우나 봐? 산딸기 같은데, 그거 좋아?"
스너프킨이 말했다.
"응. 하지만 이건 일요일에만 피워."
무민이 깜작 놀라 말했다.
"그렇구나. 오늘이 일요일이었구나. 음. 그럼 안녕. 나는 자러 갈게!"
"안녕, 잘 자!"
무민은 해먹이 달린 나무 뒤에 있는 갈색 연못으로 갔다. 무민은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 장신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무민은 풀밭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나무껍질 배를 찾아냈다. 배는 나뭇잎에 걸려 있었지만 멀쩡했다. 짐칸 위에 있는 작은 출입구도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무민은 정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은 서늘하고 부드러웠고, 젖은 꽃들은 그 어느 떄보다 더 강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무민마마가 계단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무민마마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고, 아주 행복해 보였다.
무민마마가 말했다.
"이게 뭔지 맞춰 볼래?"
"작은 배요!"
무민이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특별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너무나도 행복했기 떄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