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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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시대의 사랑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이자 피델 카스트로와 우정을 유지했던 정치 운동가이기도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작가의 조국은 혼란 그 자체인 것 같은데, 사실 중남미 국가 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많은 것 같다. 축구 강국, 최고 등급의 커피, 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 불안정한 치안, 부정부패와 카르텔 이외에 다른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간간이 들리는 중남미 지역의 뉴스들 때문에 더 그런가? 멕시코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였지만 살해당한 한 아이돌의 아버지, 사실상 붕괴 위기인 나라를 탈출하는 베네수엘라 국민들, 수개월 단위로 일어나며 한 번 일어날 때마다 사망자가 50명이 넘는 브라질의 교도소 폭동 등 이런 불안정한 나라에서 어떻게 사나 할 정도로 섬뜩한 뉴스가 대부분이다. 찾아보니 콜롬비아는 중남미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며 전반적으로는 안정적인 것 같다. 어쩌면 콜롬비아 국민들 입장에서는 다른 주변의 국가들과 한꺼번에 엮여서 평가받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중남미는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인터넷의 정보를 전부 믿을 수는 없으나 대략적으로 중남미는 지역적인 분류인 것 같고, 라틴 아메리카는 문화적인 분류인 것 같다. 즉, 아메리카 대륙에서 북쪽에 위치한 캐나다나 미국은 북미인 것이고, 중간에 위치하면 중미, 남쪽에 위치하면 남미인 것이다. 그럼 중미면 중미이고 남미면 남미이지 왜 중남미인가 할 수 있겠는데, 흔히 들어봤을 라틴 아메리카는 앵글로 아메리카와 구별되는 단어로, 여기서 앵글로 아메리카는 앵글로색슨 족의 영국이 지배한 캐나다와 미국을 의미하며, 현재 중남미에 위치한 대부분의 나라는 라틴 족의 지배를 받았기에 라틴 아메리카라는 것이다. 실제로 라틴 아메리카로 통칭되는 나라들은 라틴 족인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라틴 족의 종교인 가톨릭을 믿으며 라틴 족의 언어인 에스파냐 어나 포르투갈 어를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라틴 족의 문화나 사회 제도가 속속들이 흡수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는 원래부터 이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들의 문화와 역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으며 북미, 중미, 남미의 용어를 쓰는 것이 훨씬 중립적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접할 수 있었다. 즉, 콜롬비아는 중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한 나라로, 공용어는 스페인어, 국민의 절반은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이며 대부분의 국민이 가톨릭 신자인 나라인 것이다. 식민지배, 독립, 다인종 다민족 사이에서의 차별. 이 분야에 자세한 지식이 없어도 어떤 문제들이 나타날지는 예상을 할 수 있는데 격동기를 살았던 마르케스 또한 이 시대를 온 몸으로 맞은 사람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전학년 장학생으로 콜롬비아국립대학교에 진학하여 법률과 언론을 공부하던 중 자퇴하고 유럽과 미국의 특파원으로 신문 칼럼을 쓰던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미신, 토착 신화, 민담 등을 소재로 삼아 중남미 민중의 생활을 그려낸 소설을 발표한다. 문학적인 고귀함, 상업적인 성과, 노벨상 수상.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의 삶보다 오히려 중남미의 역사가 궁금해지고, 그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51년 9개월 4일 동안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린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17살에 반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할머니가 되고도 잊지 못하고 있다가 남편이 죽자 다시 사랑을 고백하여 결국 그녀와의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간추리고 보면 다소 소름이 돋기도 하는데, 이 소설은 단순히 ‘crazy love’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삶과 죽음과 노화와 질병과 사랑과 욕망을 다룬 소설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는 제목이 처음 접할 때는 낯설었는데, 다 읽고 나면 이보다 더 적확한 제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한 인물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한때는 뛰어난 지성과 왕성한 정력을 가졌던 의사 후베날은 여전히 인정받는 의사이기는 하지만 그의 기억력과 체력은 예전만 못하다. 그보다 어린 그의 체스 친구는 본격적으로 다가올 노화가 두려워 자살하고, 그의 죽음을 한편으로는 애도하고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던 노의사는 평생 변함없이 삶의 의지를 불태우던 도중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사망한다. 장례식장에서 과부가 된 노의사의 아내인 페르미나에게 플로렌티노가 다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현재 시점에서 여기까지 진행된 소설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젊은 시절로. 젊음이란 무엇일까. 늙음의 반대가 젊음이라면, 그렇다면 젊음과 늙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열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과연 둘 사이에 차이를 둘 수 있을까. 그렇다면 둘 사이의 차이는 뭘까. 생식 능력? 체력? 소설 속 한 인물을 채 늙기도 전에 늙음이 두려워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또 다른 인물은 늙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또 다른 인물은 늙었다는 사실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이고, 또 다른 인물은 갈팡질팡하며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 아직 늙지는 않았지만 늙음이란 어떤 것일까 요즘 고민이 늘어난 나에게 이 책은 여러 모로 생각에 잠기게 했다. 아, 물론 재미도 있었고.

이미 황혼에 접어든 두 사람은 이 일화를 떠올릴 때마다 그 싸움이 결혼 반세기 동안 가장 심각한 것이었으며, 두 사람에게 결혼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킨 유일한 사건이었다는 놀라운 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성질도 온순해졌지만, 두 사람은 가능하면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간신히 치유된 상처는 마치 어제 입은 상처처럼 다시 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실컷 이용하도록 해. 넌 젊으니 가능한 한 모든 고통을 겪어보는 게 좋아. 이런 일이 평생 지속되는 건 아니거든.”

카드 점괘는 미래에 오랫동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데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을 것이라고 나왔다. 그녀는 그 예언을 듣자 용기를 되찾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남자와 그렇게 행복한 운명을 누리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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