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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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에마는 제인 오스틴의 네 번째 소설이자, 그녀 생전에 출판된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의 반응을 얻은 정도였던 이성과 감성 이후 발간된 해에 바로 매진되어 재판을 찍었던 오만과 편견, 뒤이어 역시 곧 재판을 찍은 맨스필드 파크 다음 소설이 이 소설이다. 이 소설은 당시 궁정의 요청으로 섭정 동궁에게 헌정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그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마도 암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제인 오스틴은 사망하였고, 사후에 설득과 노생거 사원이 출판되었다. 작가 생활의 전성기가 길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고 아쉽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은퇴 및 사망 후 친척들의 도움으로 살았던 그녀의 삶이 계속 마음을 붙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불규칙적으로 한 권 한 권씩 읽어나가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는 세계문학전집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의 순서는 출판되었던 순서가 아니다. 88번째 권이 오만과 편견이고, 132번째 권이 이성과 감성, 283번째 권이 에마, 348번째 권이 설득, 363번째 권이 노생거 사원이다. 맨스필드 파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아마 언젠가는 나오리라고 본다. 이 순서는 아마도 대중적인 인기, 문학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단연 1등이고 그 다음이 이성과 감성... 이런 식으로 나름의 서열이 매겨진 셈일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에마는 처음 읽어보는데 내용은 알고 있었다.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를 보지는 못했으나 포스터만 보고도 사랑스러워 영화 내용과 사진을 여러 번 찾아봤었다. 다소 비호감일 수 있는 여주인공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기네스 펠트로 특유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다만 섣불리 읽기를 망설였던 것은 두께 때문이었다. 책의 두께는 700쪽이 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책을 볼 때 흔히 쓰는 독서대에 올려놓기 힘든 정도였다.

7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분량에 비해서 스펙타클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다 읽고 나면 별 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마 주변의 사람들에 대핸 서술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소설이 결코 단조롭지는 않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이해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인 에마는 똑똑한 여성이기는 하지만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집순이에 가깝다. 이 책의 시작은 에마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미인이지 총명하지 부유하지 거기에다 안락한 가정에 낙천적인 성격까지 갖춘 에마 우드하우스”는 “오냐오냐하는 무척 자애로운 아버지의 두 딸 가운데 동생”으로 “언니가 시집을 간 까닭에 진작부터 집안 여주인”이 된 여성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아예 초반부터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이라고 선언해버린 여주인공이 부유한 집안의 사실상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사실을 본인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다소 거만하게 보이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을 절대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마음으로만 드러나기 때문에 소설 속 모든 사람들은 에마에 대해 호감을 가진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성이 이렇게나 친절하다니?’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독자들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속으로 무시하는 에마가 소위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의 속마음은 작가랑 독자만 아는 것이니까.

아마 작가도 그 부분을 생각했는지 생전에 에마는 독자들이 좋아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라고 생각되지만, 정작 작가 자신은 제일 좋아했다는 생각을 밝혔다는 이야기도 있다. 분명히 에마는 여러 모로 허점이 많기는 하지만 소설 속의 나이틀리나 제인 페어팩스를 제외하면 제일 사려 깊고 분별력이 있다는 점은 맞다. 웨스턴 부인이 된 테일러 양조차도 에마보다 판단력이 뛰어나지는 않다. 이것은 에마의 나이가 나이틀리보다는 20살 가까이 아래이고, 든든한 부모나 재산을 물려줄 친척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외모와 지혜로만 세상을 살아 나가야하는 제인과는 달리 “인생의 여러 복을 한 몸에 타고난 듯”해 “세상에 나와 스물한 해 가까이 살도록 걱정거리랄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에마와 같은 조건에 처하면 좀 지나치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고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이 문제점인데, 그녀도 이 두 약점 때문에 그녀가 누리는 많은 즐거움이 희석될 위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위험을 전혀 느끼지도 못했으니, 그녀에게는 이 약점들이 무슨 불운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네 번째 문단인데, 마치 작가가 앞으로 이 여성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약점 때문에 많은 즐거움이 희석될 것이니 어떻게 그녀가 성장할지 지켜봐 달라는 당부처럼 보인다. 사실 에마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다소 속물적인 경향이 있지 않던가? 현대의 우리도 아닌 척 하면서 은근히 다른 사람들 서열을 매기고, 맨 위에 나를 올려놓으면서 즐거워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그런 가치에 전혀 관심 없는 척 태연히 남들을 대하며 남들에게 관대하고 자상하고 상냥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또 속으로 기뻐하는 마음이 없을까?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옵저버>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하는데 이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드는데(말도 안 될 정도로 개인적인 기준 같아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던 것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에서 꼽으라면 그래도 오만과 편견이 에마를 제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한 인간 안에서 이렇게 모순이 되는 점들이 많으며 그것이 극복되는 과정 속에서 한 인간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을 읽어나가며 충분히 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 가장 윗길로 꼽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은근히 자신의 교양을 자랑하고 싶고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거나 자신이 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지성을 갖춘 사람들에게 경쟁심을 느껴 폄하하고자 하는 모습들은 작가가 한 때 가졌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이 소설이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에 비해 길고, 작가가 스스로 제일 좋아하는 주인공이라고 밝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성숙해진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서 성장한 에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 출판된 마지막 소설이자, 그녀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창작한 소설이다. 그러기에 이 소설보다 앞서 창작된 소설에는 없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지은 소설 설득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오스틴 자신이 에마를 두고 오만과 편견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이 재기에서 떨어진다고 볼 것이고, 맨스필드 파크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이 작품이 양식에서 떨어진다고 볼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만과 편견의 독자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공감이 갔고, 맨스필드 파크는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나중에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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