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2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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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은 1834년에 그려진 토머스 설리의 엘렌과 메리 매클베인의 초상이라는 그림인데, 토머스 설리는 당시 초상화가로 유명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실제로 검색해보면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그림은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닌 모양으로, 직접 작품의 이름을 쳐서 검색해야 작품이 나온다. 신기한 것은 어떻게 이 작품을 찾았는지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엘리너와 메리앤이었다. 각각 이성을 대표하는 엘리너, 감성을 대표하는 메리앤 두 자매의 이야기이다. 엘렌과 메리라는 이름은 엘리너와 메리엔을 연상시킨다. 표지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다정하지만 침착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한 여성과, 그 여성의 어깨에 팔을 얹고 어딘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멀리를 응시하는 한 여성이 있다. 그야말로 여성의 이성적인 모습과 감성적인 모습을 분리해 내 보여주는 느낌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이 있다. 어떨 때는 이성적이 되고, 어떤 사람 앞에서는 감성적이 되고. 다만 작가는 한 사람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면모를 두 사람으로 분리해 내 보여 준 것 같다. 사랑이란 이성만으로도 감성만으로도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렇기에 동일한 부모 밑에서 자란 비슷한 나이의 자매를 두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 같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던 자매가 마지막 순간에 합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늘 이성적으로 보이던 언니가 감성적으로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냥 감성적이던 동생이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사랑이나 연애뿐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성장으로도 읽힌다. 사실 어린 시절에는 제인 오스틴의 책이 재미있기는 해도 그저 연애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제인 오스틴의 시절에 여자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고 남자의 존재를 인생에서 지우게 되면 경제적으로 곤궁해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에 어쩌면 연애나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과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메이 알코트는 제인 오스틴보다 약 60년 뒤의 사람이다. 앤 셜리를 창조해 낸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루이자 메이 알코트보다 약 40년 뒤의 사람이다.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도, 앤 셜리도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야기의 비중만 놓고 봤을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들의 연애였고 결혼이었다. 결혼 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후속편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서 나왔던 것도 같다. 그걸 감안하면 그보다 60년 전, 100년 전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여주인공이 얼마나 당시로서는 센세이션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연애와 결혼이 전부였던 그 시절, 그 선택 안에서도 이렇게 개성적인 여주인공을 그려냈던 작가가 만약 현재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여성의 일과 사랑과 취미에 대해 좀 더 확장된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메리앤은 다음 날 아침 생각보다 많이 잠을 자긴 했지만 잠자리에 들 때와 똑같이 비참한 심정으로 눈을 떴다.

엘리너는 동생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해 보라고 부추겼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기 전에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엘리너 편에서는 역시 꾸준한 믿음을 가지고 다정한 충고를 했으며 메리앤 편에서는 역시 격렬한 감정을 엿보이고 생각이 오락가락하였다. 메리앤은 때로는 윌러비가 자신만큼 불운하고 결백하다고 믿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그가 면죄될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세상의 이목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그것을 피해 숨어버리고 싶어 했고 또 다음 순간에는 힘을 내서 거기에 맞서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변함이 없었는데, 막상 떄가 되면 제닝스 부인이 있는 자리는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고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어야 한다면 입을 꾹 다무는 것이었다. 제닝스 부인이 연민에 가득 차서 자기의 슬픔에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아냐, 아냐, 아냐. 그럴 수가 없어." 그녀는 소리쳤다. "부인은 느낄 줄 몰라. 친절하다지만 공감은 아니고, 성품이 좋다지만 따뜻하진 않아. 원하는 건 가십거리가 전분데 지금은 내가 그걸 제공해 주니까 날 좋아하는 거지. 딴 게 없어."

꼭 이런 말이 아니더라도 엘리너는 동생이 다른 사람들을 종종 부당하게 평가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워낙 과민할 정도로 고결한 성품을 가진 데다 강한 감수성에서 나오는 섬세함이라든가 세련된 매너의 우아함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 반이 넘는다면, 메리앤도 거기 속하는 세상 사람 반처럼 뛰어난 능력과 성품을 겸비하고 있지만, 분별도 없고 공정성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한테서 자기와 똑같은 의견과 감정을 기대하였고, 그들의 행동이 자기에게 곧바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동기를 판단하였다. 그래서 두 자매가 아침 식사 후 자기네 방에 함께 있었을 때 메리앤이 제닝스 부인의 마음을 한참 평가절하하게 된 사건이 일어났다. 제닝스 부인은 순전히 선의로 한 행동인데 메리앤에게 워낙 이런 약점이 있다 보니 우연찮게도 새로운 고통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윌러비의 사랑을 상실해 버린 것보다도 그의 인격을 상실해 버린 것이 더 애통한 일로 느껴졌다. 그가 윌리엄스 양을 유혹하고 버린 것, 그 불쌍한 소녀의 비참한 처지, 그리고 한때 그녀 자신에 대한 그의 흉계가 어떠했으리라는 의심이 한꺼번에 닥쳐 정신을 심하게 갉아먹어서, 자기가 느낀 바를 엘리너에게조차 토로할 수가 없었다. 말없이 자신의 슬픔을 부둥켜안고 있는 바람에, 털어놓고 자주 하소연을 하던 때보다 언니로서는 더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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