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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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 사진을 처음 봤을 때에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일 포스티노의 한 장면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실제 이슬라 네그라 저택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파블로 네루다의 사진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보기 전에 영화 일 포스티노를 먼저 보았는데, 물론 영화에서 소설을 각색하여 다르게 표현한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그대로 원작 소설을 가지고 왔다. 특히 시인과 마리오과 서로 우정을 나누는 명장면 일부는 빠지지 않고 그대로 영화에 실렸다. 영화는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에서 이탈리아의 칼라 디소토로 장소를 바꾸었고, 그에 따라 시인과 교감하는 마을 사람들도 전부 이탈리아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올 정도로 상당 부분의 설정은 그대로 두었다. 아마 바뀐 부분은, 장소가 칠레에서 이탈리아로 바뀌면서 그대로 둘 경우 어색해질 경우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바뀐 듯하다. 영화의 각본가이자 주연 배우는 이탈리아의 재능 있는 영화인으로, 아마도 이 책을 읽은 후 파블로 네루다와 교감한 청년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였을 것이다. 만약 이 시인이 내가 살고 있는 나라로 온다면 어떠할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덧붙이면서.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작가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와도 닮은 구석이 있겠다. 스카르메타도 네루다와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같은 나라에서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같은 아픔과 좌절과 눈물을 공유했으리라고 믿고 싶었을, 세계적인 시인이자 문학 선배를 흠모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구상했을 테니까. 이 소설은 비교적 최근 소설이라서 내가 여태까지 읽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에서는 작가가 드물게 살아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완벽하다거나 압도당한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운은 상당하다. 어쩌면 이 여운은 온전히 책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소설과 쌍둥이라고 해도 좋을 영화 일 포스티노에 상당히 기대는 면이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필립 느와레는 실제 네루다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풍긴다. 먼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본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살려내었기에 양쪽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소설에는 없고 영화에만 있는 OST,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어촌 풍경을 생각한다면 영화 쪽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다소 달랐던 결말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이 역시 영화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역시 개인적으로 끌렸던 이유는 서문 때문이었다. ‘작가가 되려던 나의 꿈은 그 축축한 편집국 사무실에서 매일 밤 사그라졌다. 새벽녘까지 남아 매번 소설을 새로 쓰기 시작했지만 스스로의 재능과 게으름에 실망하여 중도에서 그만두곤 하였다. 내 또래의 다른 작가들은 국내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심지어 (중략) 유명한 외국 출판사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그때마다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러나 언젠가 나도 작품을 끝마쳐야지 하는 자극이 되기는커녕 차가운 물벼락을 뒤집어쓴 느낌만 들었다.’ 한동안 이 구절에서 떠나지 못하고 멈춰 있던 서문의 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자 분리되어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다. 소설이든, 영화든 엔딩 이후 먹먹해지는 느낌도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하여 둔화되지 않고 각각 다른 느낌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시인은 마리오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네루다는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지었다.
"좋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 그게 메타포야."
"그렇게 쉬운 건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부르죠?"
"왜냐하면 이름은 사물의 단순함이나 복잡함과는 아무 상관 없거든. 자네의 이론대로라면 날아다니는 작은 것은 마리포사(스페인어로 나비)처럼 긴 이름을 가지면 안 되겠네. 엘레판테(코끼리)는 마리포사와 글자 수가 같은데 훨씬 더 크고 날지도 못하잖아."

"어때?"
"이상해요."
"'이상해요'라니. 이런 신랄한 비평가를 보았나."
"아닙니다. 시가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시를 낭송하시는 동안 제가 이상해졌다는 거에요."
"친애하는 마리오, 좀 더 명확히 말할 수 없나. 자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침나절을 다 보낼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바다처럼 말이지!"
"네, 그래요. 바다처럼 움직였어요."
"그게 운율이란 것일세."
"그리고 이상한 기분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이 움직여서 멀미가 났거든요."
"멀미가 났다고."
"그럼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
시인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내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바로 그래요."
"네가 뭘 만들었는지 아니, 마리오?"
"무엇을 만들었죠?"
"메타포."
"하지만 소용없어요. 순전히 우연히 튀어나왔을 뿐인걸요."
"우연이 아닌 이미지는 없어.“
마리오는 손을 가슴에 댔다. 혀까지 치고 올라와 이빨 사이로 폭발하려는 환장할 심장 박동을 조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리오는 걸음을 멈추고 고귀한 수신인의 코앞에 불경스러운 손가락을 바짝 들이대며 말하였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즉 바람, 바다, 나무, 산, 불 동물, 집, 사막, 비.......”
“......이제 그만 ‘기타 등등’이라고 해도 되네.”
“......기타 등등!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루다의 입은 턱이 빠질 듯이 떡 벌어졌다.
“제 질문이 어리석었나요?”
“아닐세, 아니야.”
“너무 이상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아니, 생각에 잠겼을 뿐이야.”

“선생님, 저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인은 전보를 부채 삼아 턱 앞에서 부쳐댔다.
“별 심각한 일은 아니군. 다 치료법이 있으니까.”
“치료법이라고요? 치료법이 있다 해도 차라리 아프고 말겠어요. 사랑에 푹 빠져버렸단 말이에요.”

"저를 버리시면 안 돼요. 과부에게 이야기해서 미쳐 날뛰지 말아달라고 해주세요."
"이봐. 나는 시인일 뿐이야. 딸 가진 어머니의 오장 육부를 녹이는 재주는 없다고."
"도와주셔야 해요. 선생님이 그렇게 쓰셨잖아요."

지붕없는 집도 유리창 없는 창도 싫네.
노동 없는 낮도 꿈이 없는 밤도 싫네.
여인 없는 남자도 남자 없는 여인도 싫네.
남녀가 얽혀 그때껏 꺼져 있던
키스의 불꽃을 불태웠으면 좋겠네.
나는야 유능한 뚜쟁이 시인.

"지금 와서 이 시가 부도 수표라고는 말씀 못하시겠죠."

"시인 동무, 당신이 저를 이 소동에 빠뜨렸으니 책임지고 저를 구해 주세요.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쳤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천만에! 시집 두어 권 선물했다고 내 시를 표절하라고 허락해 준 줄 알아. 게다가 자네는 내가 마틸데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스에게 선사했어."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

첫째,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바람 소리.(바람 소리가 일분쯤 계속된다.)
둘째, 제가 이슬라 네그라 종루의 큰 종을 울리는 소리.(종소리가 일곱 번 울린다.)
셋째, 이슬라 네그라 바윗가의 파도 소리.(아마도 폭풍우가 치던 날에 녹음한 듯, 바위에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편집한 것이다.)
넷째, 갈매기 울음소리.(이 분간 기묘한 스테레오 음이 난다. 녹음한 사람이, 앉아 있는 갈매기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새들을 놀래 날려 보낸 듯하다. 그래서 새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절제미가 담긴 무수한 날갯짓 소리 역시 들을 수 있다. 중간에 사십오 초 지날 즈음에 마리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염병할, 울란 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다섯째, 벌집.(거의 삼 분간 윙윙거리는 위험천만한 주음향이 들리고 배경음으로는 개 짖는 소리와 무슨 종류인지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되었다.)
여섯째, 파도가 물러가는 소리.(녹음의 절정의 순간으로, 큰 파도가 요란하게 모래를 쓸어 가다가 새로운 파도와 뒤섞일 대까지의 소리를 마이크가 매우 가깝게 쫓은 듯하다. 마리오가 내리 쏟아지는 파도 옆을 달리다가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끼리 절묘하게 섞이는 것을 녹음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곱째, (분명히 긴박함이 깃든 격앙된 음성이었고, 침묵이 뒤를 잇는다.)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살레스 군.(갓 태어난 아기가 쩌렁쩌렁 우는 소리가 십 분쯤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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