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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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7번째 책인 이 책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아직 그 영화는 보지 못했으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책의 두께는 두껍지 않으나 처음 몇 장을 읽고 나니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예고편만 본 후 일단 책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의 표지는 화가 앙리 루소의 그림이다. 처녀림의 원숭이들이라는 그림인데 제목만 봐서는 이게 책과 무슨 관련이 있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영화 ‘지옥의 묵시록’ 예고편을 보면 알게 된다. 놀랍게도 영화에서 나오는 나무가 우거진 배경이 이 그림과 놀랍도록 닮았다.

제 1장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나는 늘 아프리카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두상(頭狀)의 측정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답니다.> 그가 말하더군. <그들이 귀국할 때도 그런 청을 하는가요>라고 내가 물었지. <오,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한답니다.> 그가 대답하더군. <더욱이 변화가 있다면 두상에서가 아니라 체내에서 일어나는 법이지오.>

책에 표기되어 있는 두상의 한자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타가 아니라면 내가 알고 있는 그 용어가 아닌 것일까? 어쨌든 다소 늘어지는 것 같은 앞부분을 읽다가 이 부분에 다다르며 정신이 바짝 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래저래 끌고 다니다가 갑자기 뚝 멈춰선 느낌이라고 할까.

제 2장
그 당시 백인들은 그 기선이 어디를 향해 기어간다고 여겼는지 지금까지도 나는 모르고 있네. 그들은 자기네가 무언가를 획득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곳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배가 오직 커츠를 향해서 기어가고 있었을 뿐이었네. 그러나 증기 파이프가 새기 시작하자 배의 속도는 크게 떨어지고 말았어. 잇달아 새로운 강기슭 풍경이 우리 앞에 전개되었다가 이내 등뒤로 사라지곤 했지. 그건 마치 밀림이 천천히 강을 가로건너 우리의 돌아갈 길을 막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어. 우리는 암흑의 핵심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2장에서는 말로가 커츠에 접근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에 당시 시대를 생생하게 살렸겠지만, 2장에서는 사실 그런 역사적 지식이나 사실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배를 몰고 가면서 커츠에게 점점 다가가고 있는 말로의 마음과 마치 그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주변 풍경을 묘사한 부분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제 3장
어느 날 저녁 나는 촛불을 들고 들어오다가 커츠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죽음을 기다리며 여기 암흑 속에 누워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구. 촛불은 그의 눈에서 1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지. 나는 애써 <쓸데없는 소릴 하시는군요!>라고 말하면서, 마치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된 사람처럼 그를 굽어보고 있었어.
그때 그의 표정에 나타난 변화와 비슷한 것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다시는 보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야. 오, 내가 그 변화에 감동했다고는 할 수 없고, 오직 매혹되었을 뿐이지. 마치 베일이 찢어지면서 어떤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至高)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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