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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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모스크바에 온 처음 얼마 동안, 레빈은 시골 사람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사방에서 그에게 요구하는 비생산적이지만 불가피한 지출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미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점에서 그에게 일어난 현상은 흔히 술 취한 사람들에게 일어난다고들 하는 현상이었다. 첫 잔은 막대기처럼 목에 걸리고, 두 번째 잔은 매처럼 날아가고, 세 번째 잔부터는 작은 새들처럼 마구 넘어가는 것이다. -265쪽 이 부분을 읽으면 당시 사회에 대한 톨스토이의 비판을 알 수 있다. 하인과 수위의 제복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고, 친척들에게 만찬을 베푸는 등의 일은 레빈에게 요구되는 비생산적이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농사를 짓는 그는 일정한 곡물에는 일정한 가격이 있어서 그 밑으로는 팔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도시에서는 이미 그 밑으로 팔린다.

“주여,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소서!” 그는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입술에 닿은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을 믿지 않는 그가 입술로만 그 말을 되풀이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의 모든 의심뿐 아니라 자신이 내면에서 인식하고 있던 불가능성, 즉 이성을 통해서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도 자신이 신에게 호소하는 것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영혼 속에서 먼지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자신을,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사랑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그 존재에 호소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에게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 333~334쪽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평소 신의 존재를 믿지 않던 그가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는 장면이다. 결혼을 통하여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을 재점검하거나 타협해나가는 레빈이 책 전체에서 가장 성장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생활에서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의 완벽한 불화나 애정 어린 화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 관계가 불명확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에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게 된다.
많은 가정이 단지 완전한 불화도 화합도 없다는 이유로 부부 모두에게 지긋지긋한 그 묵은 자리에 수년 동안 머무르곤 한다. -396쪽 아마도 권태기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일까?

‘저기야!’ 안나는 객차의 그림자를, 석탄 가루와 뒤섞인 채 침목을 뒤덮은 모래를 쳐다보며 혼잣말을 했다. ‘저기가 바로 중간이야. 난 그에게 벌을 주고 모든 사람에게서, 나에게서 벗어날 거야.’
...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객차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중간 지점이 그녀와 나란히 온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빨간 손가방을 내던지고는 어깨 사이에 머리를 푹 숙인 채 객차 밑으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는 마치 곧 일어날 자세를 취하려는 듯 경쾌한 동작으로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기가 한 짓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소한 농부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 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455-456쪽 브론스키와 싸우고 나서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을 상상 속에서 들은 것처럼 느끼고 자신의 모습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해리 증상이 생긴 것일까? 질주하는 사고는 안나가 밤에 잠이 안 와서 복용하던 아편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녀의 죽음의 의미가 떠오른다. 상대에 대한 엄청난 분노로 상대를 벌주기 위해 자기를 파괴하는 방법으로서의 자살. 죽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하다니. 읽으면서 소름이 끼치고 문장 하나하나가 엄숙하고 아름답다.

그는 그녀와 보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그러한 순간은 독에 오염되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그러나 씻을 수 없는 회환을 남긴 채 실현되어 버린 그녀의 의기양양한 협박만을 기억했다. 그는 더 이상 치통을 느끼지 않았다. 흐느낌이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486쪽 자살을 하고 나면 남은 사람이 얼마나 파괴되는지 브론스키를 보면 알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안나 카레니나가 죽고 난 이후의 이야기를 상당 부분 들려주기 때문이다.

이런 상념들은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그를 괴롭히고 지치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그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었다. 그는 읽고 또 생각했다. 그런데 읽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최근 그는 모스크바에서나 시골에서나 유물론으로부터는 해답을 발견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플라톤, 스피노자, 칸트, 셸링, 헤겔, 쇼펜하우어 등 삶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지 않은 철학자들의 책을 다시 읽어 보거나 처음으로 통독을 하곤 했다.
그들의 사상은 그가 책을 읽거나 다른 학설, 특히 유물론에 대한 반박을 찾으려 할 때는 유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책을 읽거나 직접 문제의 해결을 찾으려 할 때면, 언제는 곧 똑같은 것이 되풀이되곤 했다. 정신, 의지, 자유, 본질 같은 모호한 말들의 정의를 따라가는 동안, 철학자들이나 그 자신이 그에게 쳐 놓은 말들의 덫에 일부러 빠지는 동안, 그는 마치 무언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인위적인 사유 과정을 잊은 채, 삶에서 벗어나 그저 주어진 실을 따라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만족을 준 것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카드로 만든 집 같은 그 인위적인 구조물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그 구조물은 삶에서 이성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와 상관없이 그저 치환된 것에 불과한 똑같은 말들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곤 했다.
언젠가 그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의지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에 사랑을 넣어 보았다. 그러자 그 새로운 철학은 그가 그 철학을 벗어나기까지 이틀 동안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삶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자, 그것 역시 와르르 무너지며, 몸을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하는 모슬린 옷이었음을 드러냈다. -501∼502쪽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영화에서 톨스토이언은 톨스토이의 사상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인데 정작 톨스토이 자신은 톨스토이언이 아니라고 톨스토이언이 되고자 찾아온 젊은이에게 톨스토이 스스로 이야기한다. 아마도 평생 자기 모순 속에서 톨스토이는 싸워 왔을 것이다.

'이건 비밀이야. 이것은 나에게만 필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비밀이야.
이 새로운 감정은 나를 바꾸지도, 나를 행복하게 하지도 않아, 그리고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갑자기 나를 계몽시키지도 않아. 아들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지. 역시 뜻밖의 선물은 없었어. 믿음인지 아닌지, 난 이게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이 감정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통해 들어와 내 영혼 속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어.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559∼560쪽 이 책 전체의 마지막 단락이자 레빈의 생각이다. 여기까지 다 읽고 나면 과연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이 안나 카레니나인지 레빈인지 알 수가 없다. 레빈은 누가 뭐라고 해도 톨스토이의 분신이며, 우리 모두의 고민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삶의 부분들에 대해 답답해하다가, 결국 그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삶의 본성이라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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