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보지도 않은 이 연극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는 것은 2005년 양동근이 공연하는 연극을 보러 간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한 친구 때문이었다. 관객 모독이라는 독특한 제목과 양동근 때문에 이 연극을 기억하게 되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오묘한지. 현재 그 친구와는 아주 오래 전에 연락이 완전히 끊긴 상태인데도 이 연극을 보러 간다고 말했던 그 친구의 얼굴, 그리고 보고 와서 정말 좋았다고 이야기하던 그 친구의 얼굴은 기억이 난다. 당시 양동근은 학교-광끼-뉴논스톱-네 멋대로 해라 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핫한 청춘 스타였다. 그 시기에 찍었던 영화를 내가 영화관에 가서 본 적은 없으나 늘 주연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랬던 그가 한동안 뜸해지는 것 같았는데(철저히 나의 기준에서, 분명히 열심히 활동은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다시 여러 방송에서 보이는 것 같아 반갑다. 한 때 나에게 참 매력적이었던, 세상과 반목하거나 심드렁하던 그 반항적인 청춘의 느낌은 더 이상 아니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 현실에 발을 붙인 성실한 모습을 보면 요즘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해진다. 어쩌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한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솔직히 나는 10여 년 전 연극을 보러 와서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그 친구를 보며 ‘쟤가 뭘 알고 그러는 걸까?’ 하는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보았던 기억이 선명한데, 아마도 당시 내 처지에서 편하게 공연을 보러 다닐 수 없었던 데다가, 또래에게 갖게 되는 묘한 경쟁심이나 시샘이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에야 드는 생각은, 기존의 연극에 도전하는 듯한 이 연극이야말로 당시 어렸던 그 친구나, 역시 한창 젊었던 배우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미리 이해하고 가지 않아도 가슴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연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새삼 그 친구가 부러워졌다. 시샘이 아닌 온전한 부러움. 10여 년 전 이 연극을 봤더라면 그 시간이 얼마나 풍요로워졌을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든 나에게 영향을 조금은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러고 보면 질투나 시기심만 걷어 낸다면, 상대를 순수하게 부러워할 수 있다면 얼마나 내 삶이 더 가벼워지고 더 촉촉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지기 싫다는 마음이 안으로 차곡차곡 쌓여서 괜히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생각도 들었고.

이 연극은 말 그대로 관객을 모독한다. 여러분이라고 불리던 관객은 나중에 배우의 욕을 들어야 하고, 원작에는 없지만 물을 끼얹기도 한다. 초연 당시에는 관객들이 분노해서 무대로 의자를 집어던졌다는데, 요즘은 다 찾아보고 와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1966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뤄진 공연 영상을 보는데 독일어라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어 아쉽지만 관객들이 감탄하고 웃고 휘파람을 부는 것이 보인다. 아마 내가 이제 와서 이 연극을 보러 간다고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지는 않을 테고 즐기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의 원제는 Publikumsbeschimpfung (독일어) 이다. 영어로는 Offending the Audience 라는데 한 단어로 똑 떨어지는 맛이 없다. 아마 여러 나라로 번역을 거치면서 언어유희는 죄다 덜어내거나 의역을 했으리라. 내가 인생 영화로 꼽는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각본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원제인 <베를린의 하늘>을 잘 의역한 제목이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 1960년대 <관객 모독>의 냉소와 1980년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의 연민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서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