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이근삼의 원고지가 생각이 났다. 이근삼의 희곡은 아마도 교과서에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인공이 읽어가는 신문내용은 몇 년 전과 현재가 다르지 않다. 동일한 내용의 신문을 읽는 장면에서 아, 부조리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희곡이 60년대 작품이라는 사실. 2018년의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성숙해졌나 하고 생각하면 감탄이 아니라 탄식이 나온다. 1960년대의 대한민국과 2018년의 대한민국이 연결되는 고리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근삼의 이 희곡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공연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외젠 이오네스코의 연극에서는 이 정도의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의 연극 속 세계와 내가 속한 세계와는 시간과 장소와 언어의 간극이 있고, 그 간극만큼 거리가 느껴졌다. 프랑스어로는 분명히 급소를 찌르고 재기발랄했을 대사들이 번역과 각주를 거치다 보니 생동감이 떨어져서 연극 특유의 치고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부족하고 다소 싱거워졌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은 아쉽게도 '나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