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조 씻기기 - 제3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89
황인찬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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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과

말린 과일에서 향기가 난다 책상 아래에 말린 과일이 있다 책상 아래에서 향기가 난다

나는 말린 과일을 주워 든다 말린 과일은 살찐 과일보다 가볍군 말린 과일은 미래의 과일이다

말린 과일의 표면이 쪼글쪼글하다

말린 과일은 당도가 높고, 식재료나 간식으로 사용된다 나는 말린 과일로 차를 끓인다

말린 과일은 뜨거운 물속에서도 말린 과일로 남는다
실내에서 향기가 난다


나의 한국어 선생님

나는 한국말 잘 모릅니다 나는 쉬운 말 필요합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왜 이 인분의 어둠이 따라붙습니까

연인은 사랑하는 두 사람입니다 너는 사랑하는 한 사람입니다 문법이 어렵다고 너가 말했습니다

이 인분의 어둠은 단수입니까, 복수입니까 너는 문장을 완성시켜 말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매일 나는 작문 연습합니다

-나는 많은 말 필요합니다.
-나는 김치 불고기 좋습니다.
-나는 한국말 어렵습니다.

너는 붉은 색연필로 OX표시합니다 X표시투성이입니다 너 같은 애는 처음이다 너는 나를 질리게 만든다 너는 이제 끝이다 당장 사라져라 이것은 너가 한 말들입니다

한국말이란 무엇입니까 처음과 끝을 한꺼번에 말하는 말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마에 난 X 표시가 가렵기만 합니다

나는 돌아오는 길을 이 인분의 어둠과 함께 걸어갑니다 이 인분의 어둠이 말없이 걷습니다


의자

여섯 살 난 하은이의 인형을 빼앗아 놀았다
병원 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형은 나의
의사 선생님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아프다고 말했다
어디가 아프냐 물어도
아프다고만
선생님은 내게 의자에 앉으라 하셨다
의자는 생각하는
의자였다
앉아서 생각해 보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울어 버렸다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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