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현대미술사 -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
윌 곰퍼츠 지음, 김세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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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이 언덕에 올라 똑같은 풍경을 역시나 똑같은 카메라로 담는다면 거의 다를 바 없는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열 명이 며칠 동안 언덕에 앉아 똑같은 풍경을 그린다면 전혀 다른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개개인마다 다른 예술적 기량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두 같은 풍경을 볼 수는 있어도 정확히 같은 대상을 보지는 않는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개개인은 고유한 편견, 경험, 취향, 지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해석한다. 대개는 흥미로운 것을 관찰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을 무시한다. 농가의 마당을 그리더라도 누군가는 닭, 다른 누군가는 농부의 아내에 집중할 수 있다. p122

쇼펜하우어의 음악론은 바그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는 모두가 '의지'의 노예이며 기본적이고도 끝없는 성(性), 식(食), 안전 같은 욕망에 갇혀 살아가므로,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처럼 단조로운 쳇바퀴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방법은 인간에게 초월적이며 지적인 출구를 제시하고 긴장을 해소해주는 예술뿐이라 주장했다. 음악은 추상적이다. 귀로는 들리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음표는 인간이 추구하는 '의지'와 이성의 감옥에 갇힌 상상력을 해방한다. 그렇기에 그의 주장대로라면 모두가 열망하는 얼마간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지고한 예술은 음악이었다. p 217

미술은 나에게 오래도록 접근 어려운 분야였다. 교과서 상에서 시대별로 나열되던 ~파, ~파의 사조들, 시험 때 반짝 보고 나면 다시는 들여다 볼 일 없었고, 그나마 왠지 모르게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알 것 같은 인상파 화가들, 그리고 그림뿐 아니라 작가 개인의 삶마저 흥미로운 후기 인상파의 고흐나 고갱을 제외하면 각 작가간의 구별도 어려웠다고 할까.
이 책은 큐레이터의 글이다. 즉,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위치에 7년간, 그것도 세계 최고의 미술관중 하나인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근무했다. 당연히 이 책은 현대 미술의 핵심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예술사와 예술 작품을 다루는 책 치고는 비교적 빨리 읽히고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어렵게 강의를 하고 잘 아는 사람이 쉽게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이 책은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 없지만 한 문단문단마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흘러나온다. 한 번 읽고 나서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좋고 텀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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