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분, 부부의 시간 - 뇌과학을 활용하는 작지만 강력한 부부 습관
마커스 워너.크리스 코시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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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로망을 크게 가져본 적도 없지만, 결혼생활이 이렇게 적나라한 것인 줄 전에는 미처 몰랐다. 우리는 언제쯤 싸우지 않고 지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원인이 내가 서운해하는 것인지, 혹은 나를 서운하게 하는 그의 행동인 것인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다른 부부들은 싸우는 주기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곳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친구들한테는 말하고 싶지 않았고, 폭풍이 지나간 뒤에 웃으며 그런 적도 있었다 하며 한숨을 내쉬는 게 고작이었다. 현재진행형을 알리는 것은 내게 참 힘든 일이었다. 한 친구에게만큼은 현재진행형을 말하곤 했지만, 어느 순간 이 친구가 내 감정 쓰레기통도 아니고, 이 친구가 나를 위로하거나 나의 배우자를 욕해준다고 하여 내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내 얼굴에 침 뱉기네.라며 멈추게 되었다. 그때 당시 가장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은 블로그였다. 그 역시 지나간 뒤에 쓰는 것이었지만, 남한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쓴다기보다 내 블로그를 방문해서 글을 읽는 배우자가 그것을 읽고 당시의 내 마음이 어땠을지 헤아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던 까닭이었다.




조금 나아질 법하면 새로운 도시에 적응을 해야 하는 우리였는데, 설상가상으로 2018년~2019년 초반에 내가 새로운 도시에 적응을 하지 못하며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놔버려야겠다고 판단했었다. 그는 알았을까. 그의 수많은 미안해, 속에는 고쳐볼게, 가 없었기에 그것이 꾸준하게 지속되었더라면 나는 이미 그를 놔버렸을 것이다. 난 그때 이미 지쳤기 때문에. 나 하나만으로도 힘든데, 배우자까지 이해해 줄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부부라는 사이가 어떤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여러 가지가 퇴적하여 곪아서 썩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았다.




지금은 충분히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정확히는 2019년 10월 말 즈음, 모든 것이 안정화되었다. 이따금 불만이 속출하지만 그때의 내 감정을 나만 컨트롤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열에 한 번은 서운함 혹은 불만이 확 달아오르는 시기가 있어서 그렇지. 하지만 우리에게 이전과 같은 그런 고비가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은 나이를 먹는다고, 좀 더 같이 살아봤다고 하여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부부라는 사이는 참 근사하면서도 옹졸하기도 하여 어떤 관계보다 더 많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우리와 훗날의 우리를 위해 쓰고 싶어 읽게 된 <하루 15분, 부부의 시간>이다. 뇌과학을 활용하는 작지만 강력한 부부 습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뇌과학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어떻게 뇌과학을 이용했나 하는 궁금증도 일었다.





책에서 부부 사이를 유지시키는 방법으로는 ‘기쁨의 갭’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기쁨의 갭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순간들 사이의 시간 간격인데, 기쁨의 갭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부부 사이도 멀어진다고 보았다. 기쁨의 갭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P.L.A.N을 말하는데, 함께 놀고(Play together)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Listen for emotion) 매일 감사하고 (Appreciate daily) 리듬을 기르는 것(Nurture rhythm)이라고 했다.


그걸 읽으며 우리는 충분히 그것에 상응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함께 노는 시간이나 방법이 잘못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만족감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한 환경이 바뀌면서 ‘우리’가 아닌 ‘나’만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에 귀를 기울일 수는 없었겠지. 그도 나도, 우선 내가 힘든 게 우선이고,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니까. 최적의 상태라고 말하는 지금, 우리는 이 P.L.A.N을 다 실행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았을 때, 지금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금 우리는 작년(2019년) 12월 이후로 ‘저녁이 있는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더 줄어들고 있는데, 내가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최근에 배우자가 내게 서운한 빛을 내비쳤는데 내가 전화를 한 번에 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을 벨소리나 진동 어떤 것도 싫어서 무음으로 해두고, 전화가 왔음은 시계를 통해 아는 방식으로 했는데, 그 시계를 더 이상 착용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현상이었다. 평소에는 전화를 안 받으면 그럴 수 있다 하겠지만, 정말 위급한 상황이나 걱정되는 상황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어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며 집 밖에서는 벨소리를 최소화로 줄여서 켜두기로 했다(진동은 벨소리보다 더 싫기 때문에). 실제로 P.L.A.N은 기쁨의 갭을 줄이는 것이라기보다 부부가 사이좋게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우리의 스위치가 꺼져 관계 회로가 멈춰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방법으로 부부가 사이좋게 만드는 방법 번외 편으로 C.A.K.E 즉, 호기심(Curiosity), 감사(Appreciation), 친절(Kindness), 눈빛 나누기(Eye contact)를 소개하고 있다. 네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나는 눈빛 나누기에 시선이 간다. 언젠가부터 배우자가 “나 좀 봐.”라는 말을 요즘 들어 자주 한다. 그냥 귓등으로 들을 때가 많았는데, 내가 요즘 그의 눈을 보지 않았구나. 미안함이 서렸다. 함께 놀기를 소개하는 놀이 중에는 ‘눈을 마주 보며 미소 짓기’가 있다.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기본적인 것이 쉽지 않아졌다는 것에 경계를 해야 할 때다.



많은 놀이들이 작은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실질적으로 부부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들이라고 생각한다. 놀이라는 것은 부부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데, 특히나 배우자에게 감사함을 말하는 것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이 선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말만 노력해야지, 해놓고 사실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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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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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라지고 질서는 무너졌다.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없던 날들.

‘내’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데 정부라는 게, 나라라는 게, 질서라는 게, 예의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하다못해 애도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날들의 향연.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도리가 사는 한국에도, 내가 사는 한국에도.

전염병이 이렇게 오래갈 수 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나는 그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내가 사는 곳을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달팽이 신세가 되지 않아도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 건지, 숨을 천천히 내뱉는다. 살기 위해 한국을 떠났으나 떠나서도 방향을 몰랐고, 방향은 몰랐으나 쉼 없이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은 알았으며, 농담과 웃음을 고향에 버리고 왔지만 사랑은 끝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은 비단 미소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였으니까.

97. 세상이 지옥이어서 우리가 아무리 선하려 해도, 이렇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악마야. 함께 있어야 해.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를 보고 만지고 노래하며 사람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많은 지옥이 있어서, 우리는 그 지옥을 통과할 때 곁에 있는 이의 손을 잡아야 한다. 21.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미 내 앞에 벌어졌잖아. 그러니까 손을 잡아. 지옥을 함께 겪었다면, 그렇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아니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람일 수 있었다면, 손이 내내 따뜻할 수 있었다면.

23. 희망은 내가 움직여야 닿을 수 있는 대륙이 아니라 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가 태양을 돌다 보면 나타나는 밝고 따뜻한 계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서 그 계절을 맞이하는 것뿐인지도.

문장을 읽고선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 눈동자를 잡아두려고 묶었던 실이 툭, 하고 풀리는 느낌. 시야가 아득해졌다. 그런 계절을 나는 기다리고 있던 중이니까. 누구에게는 따뜻한 봄이, 내게는 무척이나 추웠으니까. 내 지구는 계속해서 돌고 있는 중이겠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지나에게 립스틱을 선물해 준 도리에게, 그 립스틱을 받아 그 자리에서 예쁘게 칠한 지나에게, 언니가 잠에서 깨어나면 사랑한다고 약속하겠다던 미소에게, 1년 내내 따뜻한 바다에 가고 싶은 건지에게, 그 계절이 도래했느냐고 묻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도래하지 못했다고 대답해버리면 울어버릴 것 같으니까.

37. 난 더더욱 불행을 닮아 가고 싶지 않았다. 삶을 업신여기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어떤 잘못이나 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55.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 거야.

131. 나는 아주 고요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 좋은 것을 지킬 것이다. 좋은 것은 소중한 것. 내 중심에 있는 이것.

나를 홀대하지 말아야지, 나를 억압하지 말아야지, 나를 탓하지 말아야지, 나를, 나를, 나를.

세상의 많은 불행들 속에 나까지 나를 밀어 넣는 건 너무 잔혹한 일이니까.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작은 내가 세상을 좀 더 보드랍게 살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지.

17. 죽는 순간 나는 미소에게 무슨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해.

사랑을 부탁할 것이다. 내 사랑을 부탁받은 미소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 전염병이 최고조로 돌던 그때에, 나는 참 당연하지만 큰 것을 바랐다.

전염병이 사라지기를,

네가 무사하기를,

내가 무사하기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당신도 무사하기를,

그렇게 우리 모두가 무사하기를.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아무도 무사할 수 없었으나,

또 그렇게 무사했다.

안녕이라고 물을 수 있었고,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안녕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니.

마지막에 내가 너에게 준 것은, 오직 사랑이었기를 바라면서.

내 욕심인 것을 알지만, 너도 느꼈을 거라 믿으면서.

입에 모래를 한 움큼 집어넣은 까슬거림이, 그 모래를 씹을 때의 털썩거리는 치아들의 반항들이 오래 남던 책이었다.

도리의, 미소의, 지나의, 건지의 사랑 앞에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비참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아서.

처참한 형벌에서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이 역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나의 죄목을,

보이지 않게 손으로 가려주고, 조용하게 누그러뜨리고, 그런 나의 등을 한없이 다정하게 쓸어내려주어서.

24. 우리는 어디로 가?

우리는…… 여름을 찾아서.

여름은 어디 있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저기, 가 지는 곳에.

현재 전염병은 일상에 녹아내리고 있고, 우리는 그것과 타협하며 어울려야겠지.

내가 어디까지 전염병 네 녀석과 타협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복종하거나 굴복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세상의 전염병은 오직 사랑,말고는 없었으면 한다.

<책 속 밑줄>

21. 기쁘고 즐거운 순간에도 약간의 우울감은 살 냄새처럼 배어 지워지지 않았고, 나와 세상 사이에는 늘 안개가 끼어 있어 어떤 질문에도 흐리멍덩한 대답만 간신히 뱉어 내던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눈과 비를 막아주는 천장과 차갑지 않은 바닥이 있었다.

22. 고요하게 담담하게 각자의 인생을 삭감해 나갔을 것이다.

23. 희망은 시간처럼 머무르지 않고 오고 가는 것.

38. 아니면 누나도 나랑 같이 갈래?

건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전에 본 적 없는 결연함. 꿈을 꾼다는 것. 그 꿈을 나눈다는 것. 건지에게 꿈이란 전에 닿아본 적 없는 새것, 실패해 본 적 없어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 폐허가 된 세상의 따뜻한 바다를 상상해봤다. 기나긴 교향곡이 끝난 뒤 오래 맴도는 적막처럼 어쩐지 공허하고 서글퍼졌다.

44. 엄마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고, 아름다웠고,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46. 눈앞의 추위와 황폐만이 현실이고 그것이 바로 이 세계 전부인 듯했다. 우리보다 앞서 떠난 이들은 영영 멀어졌고 돌아오는 자는 없었다.

미리 다짐해야 했다.

이들과 언제까지 함께 다닐 것인지.

48. 분명 겪은 일인데 지난 일 같지 않다. 미래 같다. 앞으로 수없이 겪게 될 일 같다.

50. 노란 전구를 달아 놓은 탑차 안에서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앉아 지나의 손을 잡고 있으면, 지나의 숨소리와 몸에서 전해지는 작은 진동에 집중하다 보면 서서히 현실감이 사라지고 과거가 지워졌다. 순간만 존재했다.

55.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이번이 마지막 식사가 될지도 모르잖아. 그럼 감자 한 알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고 싶어지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면,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56. 가장 큰 불행은 내게서 늘 한 걸음 정도 떨어져 있고 나는 정신병자처럼 그것을 내내 주시하고 있을 뿐. 그러다 홀로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째서 나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는가. 불행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듯, 마치 그것에 익숙해지려는 사람처럼. 하지만 보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은 너무 가까이 있다.

57. 제 이름을 부르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나. 그 눈을 볼 때마다 나의 눈빛이 궁금했다. 나는 어떤 눈빛으로 너를 바라볼까. 어떤 눈빛이기에 너는 나를 보고 미소 지을까.

81. ……그러니까.

………….

넌 죽지 마.

………….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같이 견뎌야 돼.

같이 어떻게.

우리가 함께 있으면 그럴 수 있어.

82.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 같은 건 없어.

100. 미루는 삶은 끝났다.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101. 살아 있는 순간에 집중해야 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맡겼어야 했다.

103.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고독 같은 것. 같잖고 우스워 갖다 버리려 해도 검은 옷에 들러붙은 하얀 먼지처럼 자꾸 따라와 날 성가시게 하는 지독한 감정. 무섭다 못해 지겨웠다. 너무 들러붙어 내가 곧 그것 같았다.

116. 살아남은 것을 기적이 아닌 감내할 일로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138. 기억은 사라지고 감정은 무뎌졌다. 지난 일 모두 꿈만 같고 현재도 현실 같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고 내가 사람 같지도 않았다.

156. 난 언니를 혼자 두지 않아.

언니는 날 혼자 두지 않아.

언니가 잠에서 깨면 약속할 거야.

사랑한다고 약속할 거야.

171. 가장 먼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182. 경험과 깨달음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189. 우리…… 만날 수 있을까?

…… 기억하고 바란다면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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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취업 합격의 공식 최신 이슈 & 상식 7월호 - 공기업.대기업.언론.대입 시사 / NCS + 인적성 + 논술 + 면접 대비
시사상식연구소 지음 / 시대고시기획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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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뉴스를 틀면 나는 한숨밖에 안 나온다. 국가 시책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아예 귀를 닫고 살 수는 없다. 나한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져가며 순응할 것은 순응하고 대응할 것은 대응해야 하니까.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날마다 신문 배달이 왔다. 매일은 아니지만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었기에 좋았는데, 자주 보지도 않는 신문을 보겠다고 신문 배달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신문은 웬만하면 잘 읽지 않는다. 눈앞이 흐려질까 봐. 그래서 나는 사실을 적시한 뉴스나 신문을 보고 읽으려고 하는데, 실은 내가 편파적인 인간이라 그 역시도 골라잡아내기가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달마다 <최신 이슈&상식>을 정리해둔 알짜배기 책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신청해보았다.

2020년 7월호의 탑 이슈는 두 가지였는데, 한 가지는 민간 유인우주선인 ‘크루 드래건’을 발사한 지 19시간 만에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드 장비의 반입에 대한 의혹들에 대해 각국의 입장들이었다. 그 이후에는 정치·외교, 경제·산업, 사회·교육, 국제·북한, 문화·스포츠, 과학·IT 순으로 핫이슈들을 모아두어 책자 한 권으로 그 달의 이슈들을 훑어볼 수 있었다.

 

또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코로나19에 대한 지분이 꽤 많았는데, 퇴직연금 담보대출 허용과 기업들 R&D 투자·채용 축소, 99일 만에 전국 초중고생 정상 등교, 기본소득제 논쟁, 무기한 무급휴직·자진퇴사를 강요 등등이 있겠다. 코로나19로 변하는 사회가 (당연하겠지만) 나는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그에 따른 대책들도 너무나도 황당할 때가 많다. 기본소득제라니. 사회적 배급주의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이겠지만, 누군가의 돈을 뺏어서 누군가의 배를 불려야 한다면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6.17부동산 대책을 보고 나는 얼토당토않아 웃었다. 수도권을 규제하게 되면 수도권 집값이 잡히나? ‘아, 나 살쪘네? 오늘부터 굶어야지. 하루 굶고 폭식. 다시 원상태.’ 이거 아닌가. 수도권을 규제하면 지방 집값은 폭등할 거고, 수도권 집값 역시 잡히는듯하다가 다시 오를 거다. 뭐 그렇다고 지금 딱히 뭔가 그것을 대체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되었다. 이건 완벽하게 부동산 실패다. 2007년의 부동산을 따라간다.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하다.

7월호에는 없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내놓은 사람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현재 우리 부부는 언젠가의 거주 목적으로 매매하기는 했지만 집 한 채를 가지고 있고, 현재 세입자를 두고 있다. 전세를 내놓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과된다면 전세는 선택항목에서도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더 큰 전세 대란이 올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가을, 우리의 집에 기존 세입자가 나가고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텐데, 그 정책이 시행된다는 가정하에 최대한 올려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월세를 올려두겠지. 거주 목적의 집도 그런데, 재산 증식이 목적인 집은 더 심하지 않을까.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이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찬반 토론이 있다는 것. 비대면진료에 찬반을 나누어두었는데,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효용성이 있을까부터 의심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반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싶어서.

나의 의견을 조금 보탠다면, 비대면진료는(코로나19로 인해 확장된 것이겠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연로한 분들이 이용하기는 쉽지 않을 테고 (키오스크가 보편화된 곳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해하고 꺼리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면), 결국 동네병원을 죽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현상이 전부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는 현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책자는 <최신 이슈&상식>이라고 하지만, 한 번 주르륵 다 읽고 나니 부제인 ‘취업 합격의 공식’이 좀 더 와닿는다. 아무래도 뒷부분의 ‘시크릿 취업 정보’나 ‘시험에 나오는 취업 문제 패키지’의 지분이 꽤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각 이슈의 하단에는 기출문제라고 하여 문제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건 취업 준비생이 아니더라도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을 법해서 나도 유심히 본 부분인데, 한 번 훑고 말 것들에 대해 핵심을 다시 짚어주는 느낌이라 좋았다.

 

덧. 대기업 인적성 문제와 공기업 NCS 문제 중 공기업 NCS 문제가 더 쉬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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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
이소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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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미술관이나 전시관을 일부러 찾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그림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는다. 그림에 대한 책을 읽을 때에도 한 화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 여러 그림에 대한 감상 위주의 책을 찾는 편이기도 하다. 그림과 화가에 대해 좀 안 상태에서 그림을 보면 그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훨씬 더 깊어질 것을 알지만, 왜인지 아직까지 손을 대본 적은 없다. 물론 좋아하는 화가에 대해서는 그의 생애를 스윽 한번 훑기는 하지만, 그 범위가 굉장히 협소하기도 하다. 그만큼 화가의 생을 알고 그림에 접근하는 일은 내게 무척이나 예외적으로 작용하는데, 이번에 <칼 라르손, 오늘도 행복을 그리는 이유>를 읽으며 칼 라르손에 대해 얕게나마 알 수 있었다.

칼 라르손은 그림의 대부분이 가족과 집이 주제가 되었는데, 그런 모습이 ‘행복’의 모습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의 전 생애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칼 라르손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빈민가에서 1853년 5월 28일에 태어나서 술에 빠진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와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네가 태어난 날이 가장 거지 같은 날이야.”라고 하니 그의 유년 시절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고집쟁이 영감이 그의 아버지인데, 「나의 아버지, 올로프 라르손」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밉지는 않았을까, 그는 어떤 감정으로 아버지를 그렸을까, 그는 아버지를 용서한 것인가, 아버지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을까. 하는 그런 상상들을 했다. 내게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나는 결코 용서하지 못했을 것 같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를 자신의 그림에 기꺼이 초대했다. 이것은 「아버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림들을 보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용서를 하게 되는 것인가,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인가, 하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예술은 그에게 가장 안전한 도피처라는 것을 아마 온전하게 이해해 주었을 카린과 결혼을 하게 되고, 그는 결혼식 도중에 자신의 삶에 있던 불행이 행복으로 극복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리」라는 그림을 보면서 (왜 그림의 제목을 단순하게 다리라고 표현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두색과 초록색이 무방비한 곳에서 한 여인이 백색 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카린의 아름다움에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이소영 작가는 칼 라르손의 그림 중 「포도나무」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보자마자 나도 마음을 빼앗긴 그림이었다. 나의 경우에는 샛연두빛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포도나무」의 연둣빛은 조금은 단호한 연두빛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건 정말 포도나무색이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으니까. 지금 막 포도를 딴 것이 옆 테이블에 있는 남자가 마시고 있는 포도주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았다. 와인을 한 잔 마셔야 할까 봐,라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지금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데 필요한 거라곤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라는 글이 칼 라르손의 그림들과 꼭 맞아떨어졌는데, 그의 그림들은 분명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잔, 울프, 폰투스, 리스베스, 브리타, 매츠, 커스티, 에스뵈른 여덟 명의 아이들의 그림과 아내 커스티에 대한 사랑이 묻어 나오는 그림들이 행복이 아니고서야 무엇인가 말인가.

물론 그림 너머의 삶을 내가 유측할 수는 없다. 그림과는 별개로 그가 행복함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일상의 짤막한 순간들을 포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림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그의 행복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불행을 겪었기에 행복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불행이라는 늪에서 허우적대면 행복에 대해 알아차리기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에.

휘게(hygge)는 덴마크 사람들의 아늑하고 소소하고 여유로운 시간이라면 피카(fika)는 스웨덴 사람들의 커피 마시는 시간이라는데, 나는 휘게와 피카의 삶을 잘 조율하는 삶을 지내고 싶다고, 문득 생각하며 와인을 한 잔 따랐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림들만 감상하며, 릴라 히트나스라고 이름을 붙인 그들의 오두막은 언제까지고 즐거움과 웃음의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덧붙였다.

오탈자 P35. 나 스스로를 올바르게 받아드리는받아들이는

오탈자 P175. 심심하지 않는 이유는 → 않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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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Art & Classic 시리즈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제딧 그림, 김난령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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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가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던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사자가 용기를 갖고 싶다는 말을 기억해내고 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어서,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내용과 뒤섞인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즈의 마법사>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일러스트가 참 예쁜 알에이치코리아의 오즈의 마법사 책. 정말 오랜만에 두근두근하며 책을 펼쳤다.

캔자스에서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와 살고 있는 도로시가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아주아주 아름다운 먼치킨의 땅에 집이 안착하게 된다. (먼치킨? 던킨도너츠의 그 먼치킨!?) 집이 먼치킨의 땅에 떨어지면서 우연히 못된 동쪽 마녀가 깔려죽었고, 그 덕에 먼치킨이 자유를 되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시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캔자스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어서 캔자스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그러면서 각자 원하는 것이 하나씩 있는 허수아비도 만나고, 양철 나무꾼도 만나고, 사자도 만나 동행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는 도로시와 이하 친구들이 역경들을 겪어내면서 “이런 일들을 겪어냈으니 선물이 필요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줄 알았는데, 오즈에게 (거짓이었지만) 각자가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건 기억의 오류인가.

정말 위대한 마법사인 줄 알았던 오즈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나도 덩달아 허탈해했다. 이런 사기꾼...

각자 캔자스에 가기를 원하고, 지혜를 갖기를 원하고, 심장을 갖기를 원하고, 용기를 갖기 원하는 그들의 희망사항들이 우습지 않고 오히려 소중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달라고 할까 생각해보다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잃지 않기를, 또 잊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다. 잠시 멈추거나 게으름을 부릴 수는 있겠지만, 그 방법을 알고만 있다면 언제든지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를 되돌아본다. 근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지내기도 했고, 온갖 번뇌들이 머릿속에 기생하여 어질어질한 삶을 지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내가 많이 약해져있고 내 모습에 자신이 없기도 했으며 일희일비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이 모습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은 더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단지 오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에게 꼭 맞는 옷이 되지 않기를 또 바랄 뿐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도로시는 캔자스에 가서 엠 아주머니와 재회를 했고, 허수아비는 지혜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사자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진 이는 도로시뿐이었다.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사자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자신이 가지게 되었다는 확신을 통해 본인이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리라. 경험을 통해 자란다고는 하지만, 그러려면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겪어야 한다면 나는 경험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경험에도 정도(程度)가 있어서 나쁜 경험이라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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