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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ㅣ Art & Classic 시리즈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제딧 그림, 김난령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6월
평점 :
어릴 때 내가 <오즈의 마법사>를 읽었던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사자가 용기를 갖고 싶다는 말을 기억해내고 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것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어서,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내용과 뒤섞인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서 <오즈의 마법사>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일러스트가 참 예쁜 알에이치코리아의 오즈의 마법사 책. 정말 오랜만에 두근두근하며 책을 펼쳤다.
캔자스에서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와 살고 있는 도로시가 어느 날 회오리바람에 아주아주 아름다운 먼치킨의 땅에 집이 안착하게 된다. (먼치킨? 던킨도너츠의 그 먼치킨!?) 집이 먼치킨의 땅에 떨어지면서 우연히 못된 동쪽 마녀가 깔려죽었고, 그 덕에 먼치킨이 자유를 되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시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캔자스로 다시 돌아가는 것뿐이어서 캔자스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그러면서 각자 원하는 것이 하나씩 있는 허수아비도 만나고, 양철 나무꾼도 만나고, 사자도 만나 동행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는 도로시와 이하 친구들이 역경들을 겪어내면서 “이런 일들을 겪어냈으니 선물이 필요 없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줄 알았는데, 오즈에게 (거짓이었지만) 각자가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었다. 이건 기억의 오류인가.
정말 위대한 마법사인 줄 알았던 오즈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나도 덩달아 허탈해했다. 이런 사기꾼...
각자 캔자스에 가기를 원하고, 지혜를 갖기를 원하고, 심장을 갖기를 원하고, 용기를 갖기 원하는 그들의 희망사항들이 우습지 않고 오히려 소중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엇을 달라고 할까 생각해보다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잃지 않기를, 또 잊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다. 잠시 멈추거나 게으름을 부릴 수는 있겠지만, 그 방법을 알고만 있다면 언제든지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를 되돌아본다. 근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나. 타인의 눈치를 보며 지내기도 했고, 온갖 번뇌들이 머릿속에 기생하여 어질어질한 삶을 지냈던 것 같다. 그 이유가 내가 많이 약해져있고 내 모습에 자신이 없기도 했으며 일희일비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이 모습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은 더 두고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단지 오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에게 꼭 맞는 옷이 되지 않기를 또 바랄 뿐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도로시는 캔자스에 가서 엠 아주머니와 재회를 했고, 허수아비는 지혜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사자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진 이는 도로시뿐이었다.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사자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리고 자신이 가지게 되었다는 확신을 통해 본인이 스스로 이루어낸 것이리라. 경험을 통해 자란다고는 하지만, 그러려면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겪어야 한다면 나는 경험을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경험에도 정도(程度)가 있어서 나쁜 경험이라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