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각오로 살아 보라는 너에게
이다안 지음 / 파람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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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들었는데, 그런 감정 따위들을 다 서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분명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내 서평이 그에게는 또 다른 죽음의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고 싶어 했던 이유는, 세상에 각기 다른 힘듦과 괴로움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다 잘 견뎠다. 하며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특히나 저자의 나이가 나와도 같았기에 그런 마음이 더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친절하거나 다정한 사람이 아님을 인지해야만 했다.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무척이나 피로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깊은숨을 한참이나 내쉬었다.

 

 

 

 

 

부모에게 도망치듯 벗어나 들어간 셰어하우스에서 오손도손 잘 지내던 와중에 회사에서는 긴장을 하면 생기는 고질병인 복통이 점점 심각해져 퇴사를 하면서 이야기의 컨디션은 좀처럼 위로 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셰어하우스에서 저녁을 먹고 죽음이 화두로 올라왔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묻는다.

 

 

"너희들은 왜 살아?"

"나는 누군가가 나를 고통 없이 죽여준다고 하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지금 당장 죽여 달라고 할 거야. 너희는?"

 

 

다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두 번째 문장에서 뜨악했다. 친한 친구가 아니면, 그리고 같은 마음인 친구가 아니라면 (앞뒤 상황 설명도 없이) 공감을 얻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냥 문득 누군가에게 목구멍까지 차오른 이 우울함을 토로하고 싶었다는(P92), 내가 여전히 병들어있는 나약한 환자라는 것을 누구든 제발 알아줬으면 한다는(P148) 부분들을 읽으며 마음 한편이 답답해졌다.

 

 

 

나한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본인이 힘든 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의 친구였다. 어느 순간 내가 감정 쓰레기통도 아닌데 그런 얘기를 왜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다가의 고민, 어쩌다가의 짜증이 아니라 매번 그 소재로 이야기가 귀결되어버리는데 더 이상의 공감이나 응원이 힘들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에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무기력해지기 때문에 니가 나아질 의지가 없다면 더 이상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안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내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때 내가 그 애에게서 들었던 말은, 실망이라는 말이었는데, 그동안 내가 그 애의 말을 들어주었던 시간들을 후회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 애가 1년 후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고마움을 몰랐던 그 애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애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내 경우에는 매일매일이 행복인 사람은 괴상했고, 매일매일이 고통인 사람은 부담스러웠다. 사람은 똑같지는 않아도 삶에는 굴곡이라는 게 있어서 기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는 말을 나는 신뢰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S나 유선이, L의 행동들을 어렴풋 이해가 됐다.

 

 

 

 

 

 

저자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내게도 저자의 엄마 같은 사람이 가족으로 있기 때문에. "네까짓 게 뭐가 잘났다고. 니가 잘 하는 건 글씨 잘 쓰는 거, 그거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서로를 할퀴어야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내가 힘든 것이 싫어 독립을 하며 절연을 택했다. 그래도 가족인데, 라는 말은 내게 무용하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몇 번의 시도 끝에 분명하게 알아차렸고, 더 이상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으며 그와 연결된 다른 가족과도 연락을 끊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 대상이 분명하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그것을 끊어낼 생각이 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나를 무방비 상태로 가만두지 않는다.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아픔이라는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공감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아픔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을 보고 나도 나아질 수 있겠다고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저 버티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을 보면서는 오히려 의욕이 꺾였고, 힘들지만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이 됐다. 한없는 그 아픔 속에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천천히 의지가 될 때마다 나를 조금씩 들어 올려주어 제대로 된 숨을 쉬고 싶다.

 

 

 

저자는 몇 번이고 살기 싫다고 하고 죽고 싶다고 하지만, 방에서 엄마가 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자살 결심을 내려놓는 것은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어쩔 수 없음에서 기인했을지라도, 그것 역시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은 누구 때문에, 라는 말은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켜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누구 때문에,라는 말처럼 자신을 연민이 가득한 피해자로 만들어 세상을 보는 눈을 가리는 것도 없었으므로.

 

 

 

 

 

추신.

돈이 없어 아이들 원비를 밀리고 보일러를 낼 돈을 밀려 가스가 끊겼다는 친구에게 일을 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친구의 남편은 쓰리잡, 포잡까지 뛴다고 했다.

이후로는 돈이 없다고 할 때마다 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했고, 친구는 일을 하지 않을 핑계만 말했다.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내게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끝까지 모를 것이다.

돈이 없지만 일주일에 대여섯 번 배달을 시키는 친구에게,

돈이 없지만 티비는 60인치를 사는 친구에게,

돈이 없지만 중고차보다는 새차라며 차를 샀던 친구에게,

'그러니까 니가 돈이 없는 거야.'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내가 도와줄 게 아니라면,

친구의 인연을 끊어버릴 게 아니라면,

입을 닫는 편이 나았으니까.

 

 

 

하지만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다.

친구가 이후에도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계속해서 말했다면,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뒤에까지 닿지 못한다.

나는 그 친구가 될 수는 없으니까.

 

 

 

 

추신2.

내 마음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내비쳐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참 번거로운 일이라 느껴진다.

상대방은 정말 위로를 해주었지만 와닿지 않는 말도 참 많았고, 알게 모르게 상처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맥락으로 저자에게 여러 문장을 쓰다가, 어떤 말도 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만 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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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위로 -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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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를 하는 쪽에 속해있었다.

위로를 하는 게 힘들게만 느껴졌다.

난 분명 그렇게 이야기하려던 것이 아닌데 말이 딴 데로 새어나간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럴 땐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위로를 받는 상황이 되니 위로를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괜찮아요? 참 흔하더라고요. 나도 그런 적 있어요. 시간이 약이에요.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따위의 말을 들을 때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

흔하다는 말에 너도 그 일을 겪을 예정이냐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고,

나도, 혹은 내 주변에도 그런 적 있다는 말에 너도 내 상황과 한치도 다르지 않고 꼭 같았냐고 묻고 싶었으며,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너만 그런 거 아니니 유난 떨지 마라.라고 꼬아듣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얼마만큼 지나야 되는 것이냐며 소리 높여 묻고 싶기도 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이 이미 다 끝나버린 상황에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렇게 말한 이들이 내가 이렇게 된 것이 고소해서, 재미있어서, 심심해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정말 위로였다는 것을.

그러나 정작 나는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어떤 식으로라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내가 꺼내지 않았는데 불쑥 꺼내며, 자꾸 나를 위로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서 자꾸만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정말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오늘 밥은 뭘 먹었느냐고 물어봐 주는 것.

아무 말 없이 손잡아 주고 안아주는 것.

내 상태와 감정을 인정받고 이해받는 것.

그게 전부였다.

책을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점점 길어졌다.

초반에는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면,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면 얼마나 공허해졌는지 모르겠다.

읽다가 말고 읽다가 말고 하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책을 손에서 놓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눈에 띈 책이 있었다.

강세형 작가의 <희한한 위로>

강세형 작가의 책을 가지런히 모아둔 책장의 한편을 떠올린다.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처음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책을 늘 사서 책장에 꽂아둔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아마 다른 작가의 같은 제목이라면 아주 많이, 꽤 많이 망설였을 텐데, 강세형 작가니까.

예쁜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 난 <희한한 위로>를 가져가 그 위로들을 꼭꼭 씹었다.

24. 나의 구내염이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를 외롭게 만드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피곤하면 나도 그런다, 아니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럼 난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거리는, 꾀병 부리는 애가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어쩐지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냥 한두 군데 헐어서 아프다고 하는 게 아닌데, 매번 입안을 보여주며 ‘당신도 정말 이만큼 셀 수도 없이 많이, 심하게 허나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언젠가부턴 부러 안 아픈 척 애를 쓰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나도 그랬어. 누구도 그랬어. 라는 말에, 너도 나와 상황이 꼭 같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말에 대해 입을 닫아버렸다.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라는 게 존재한다.

나 역시 J와 함께 겪은 이 일을, 우리가 받은 상처가 꼭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우리 똑같이 힘들지가 아니라,

그때의 너는 얼마나 힘들었니. 하고 그때의 각자를 품어주는 일이다.

저자 강세형은 베체트 병이라는 희귀병 유전인자를 가진 환자였다.

이제까지 본인이 뭘 잘못하고 잘 못해서 자꾸 구내염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베체트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조금 웃었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베체트라는 병이 잘못하고 잘 못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혼자 관리를 잘 못해서 덜 노력해서 등등의 이유로 얼마나 자책하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81. 나는 운이 좋은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아슬아슬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내 깜냥을 혼자 버텨낼 수 있는 삶을 살아왔던 거니까.

82.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그것도 연달아 우르르 몰아치자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무력해졌다. 혹시 내가 가진 운은 그동안 다 써버렸고, 이제는 견뎌야 할 날들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산다는 것이 한없이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즈음 그런 나를 어색해하며 멀어져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내게로 바짝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도움을 받는 것에도 우울감을 느꼈다.

83. 이래도? 이래도 네가 견딜 수 있어?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엄마의 갑상선암 수술이 있었고, 봄에는 우리 부부에게 일이 있었다. 초여름에는 아빠의 뇌경색이 있었다.

책의 저 문구를 보며 병원에 있을 때부터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블로그 이웃님에게, 내 상황에 대해 슬프지? 안 슬퍼? 그럼 이건? 아니면 이건 어때? 라며 굉장히 심술궂은 신이 내게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썼던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저 생각을 했던 저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해보며 그때의 저자를 조금 도닥여주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난 며칠 전에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153. 그래서 늘 어렵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잘 안 된다. 내가 이 선택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 돌려보고, 장단점을 다 뽑아보고, 내가 그 단점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 과정을 수없이 돌려봐도 내키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을 유보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건 아니고 몇 년 됐다. 선택을 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인데, 이걸 선택 장애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기도 하다. 이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큰일들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도 내가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음 먹을까 말까 이런 부분에서도 J가 먹으면 되지! 하면 뭔가에 허락받은 애처럼 그래!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해놓고 그냥 늘 넘어갔었는데, 아무래도 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바보가 되는 기분이야.

184. 아무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86.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겁니다.”

“아니요. 경험하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이 그저 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그 상황을 겪고 또 겪으며, 나는 과거 속을 살고 있었던 거니까.

나를 정말 힘들게 했고, 힘들게 하는 것.

모든 상황들이 그 공간의 나를 데려다 놓는 통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조금씩 발을 빼서 걸어 나오는 방법을 알아야지.

227. 운이 좋아서 나는, 나의 마을을 발견했다. 식물들이 가득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가 있는,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마을은 어쩌면 내가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마음만 너무 바빠서, 그저 힘들어하기만 하는 데 지쳐서, 이 마을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그것이 나의 수많은 시행착오 중에 가장 큰 착오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을 돌아보며, 그동안 내가 위로랍시고 마음을 할퀴었던 말들에 대해 깊숙이 생각하며 사죄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사람은 늘 혼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지에 대하여 고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바랐던 위로는 내가 말을 하고 싶어질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주었다가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안아주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말하기 싫었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내며 침묵으로 일관해 주기를 부탁했었다. 제발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말없이 곁에서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많이 고마웠다. 싫은 사람들도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너 까짓것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햇빛이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오랫동안 축축해져있던 손을 햇빛에 보송하게 말리고 고개를 들면, 다른 손이 있다.

당신과 내가 기꺼이 손을 잡는 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안아주겠다.

언젠가부터 꿈꿔온, 내 가장 큰 고민이자 걱정인 “오늘 저녁 뭐 먹지?”의 소망을 품고 오늘도 난 잘 지낼 예정이다.

오탈자 210. 질리는 법이 잘 없다 (중쇄 찍을 때 이건 수정을 좀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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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가기 싫으면 뭐 하고 싶은데?
생강 지음 / 로그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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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그렇지 않겠냐마는, 나는 회사를 다니기 싫은 주기가 있다. 나는 집에서 쉬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막상 그럴 수밖에 없어 몇 개월을 탱자 탱자 놀아보니 참 잘 놀았다. 그때는 이사를 앞두고 있기도 해서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웃긴 건, 나 지금 회사 그만둬도 잘 놀 수 있을 것 같은데_라는 생각이 다시금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싫고 일이 싫다기보다는 여러모로 지친 것 같다. 무작정 쉬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쉬는 날이 되면 속이 트이는 느낌. 그러면서 일을 그만둬야 하나 하고 매번 고민하다가도 지금 회사의 보수나 복지가 썩 괜찮은 수준이기도 하고 계약직이기도 하여 그만두지는 않고 계약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매번 좀 더 해보지 뭐,라고 생각하며 순응하고 만다.

나는 내가 지금 이 직업으로 40세까지만 해도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살고는 있지만, 아마 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지역에 오래 있는 것이 아니라 주기마다 지역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이직할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인 이 사안을, 나만의 고민거리라고 말할 수도 없고 말을 해봤자 답은 나오질 않아서 답답해하던 찰나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출근길에 머리에서 뭔가 녹는 기분이 들다가 정전이 되는 기분을 느꼈는데 자리에 주저앉아있었다는 생강 작가는, 병원에 갔다가 이것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알고 병가를 내고 세 달 동안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지기로 한다. 취미라고 할 만한 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없었던 작가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대신에 생각을 전환하여 오히려 싫어하던 일 두 가지에 도전을 해보기로 했는데, 하나는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을 시작한 일이고 또 하나는 직장인 모임에 나가는 일이었다. 직장인 모임에서는 그림을 그렸는데 사교모임은 여전히 싫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재미있었고, 여세를 몰아 꽃꽂이도 배워보았는데 그 고요한 시간이 참 좋았다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회사는 한동안은 괜찮았지만 다시 착잡해짐을 느끼고 이직을 고려했고, 이직에 성공하여 만족을 느끼며 다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면과 무기력, 공허함은 다시 찾아와 작가를 괴롭혔다. 우연히 본 영화 두 편으로 인해 떠난 발리에서 두 달 동안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돌아와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했다.

삶의 균형을 찾는 일은 쉬우면서도 참 어려운데,

쉽다는 것은 마음을 먹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말일 테고,

어렵다는 것은 그 마음을 먹기가 힘들다는 말이 되겠다.

 

 

정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수많은 활동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는 것도,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기 위한 노력도,

더불어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모두 힘들고 어려운 것투성이다.

 

티비 프로그램만 봐도

직업이라는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오는 것이라는 걸 느끼곤 하는데,

작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꾸준히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내 삶을 돌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언젠가의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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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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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널 보낼 수 있을까.”

내용을 짐작하고 내내 울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책을 펼 때마다 울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어쩌자고 이 책을 읽고 싶어 했을까 후회를 했다. 처음 책을 펼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회사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눈이 벌게져서 감추기에 급급해졌고, 어떤 날은 울어서 다음날 눈이 퉁퉁 붓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펴는 데에만 시간이 걸렸다. 이걸 여기서 읽어도 되나, 싶어서.

 

 

 

취업 준비생인 시미즈 미소라는 취업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차에 전에 아르바이트로 했었던 반도회관에서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아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승낙한다. 반도회관이란 도쿄 스카이트리 옆 장례식장의 상호다. 시미즈 미소라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능력을 긍정적으로 알아봐 주는 장례 디렉터인 우루시바라와 스님 사토미를 만나게 되고 그 능력을 극대화하기에 이른다. (소재 자체는 드라마 <태양의 주군>과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40.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 세상을 떠났다면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이런 식으로 후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승화하는 수밖에 없지. 장례는 그런 자리이기도 해.”

139. 죽음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니까요. 죽음을 어떻게 인정하느냐, 어떻게 포기하느냐.

 

분신자살을 하였기에 이미 유골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추모식을 하냐는 미소라의 말에, “문제는 남은 사람의 마음이니까.”라는 말이 한동안 맴돌며 떠나질 않았다. 전에는 그런 말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을 텐데, 몇 달 전에 화장장을 다녀온 적이 있어 그때의 마음이 도로 생각나버려 무너져버렸다. 사람이 단 몇 시간 내에 가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우는 것뿐이었는데, 난 그 이후로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다. 나에게 그곳은 마음을 다 내어놓고 울 수 있는 자리,였다.

 

 

 

68.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추모식과 고별식이 전부 끝난 다음이라도 좋다. 아내와 아이의 죽음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그들을 떠올리면서 이제 이 세상에 없음을 깨닫기 위한 시간이…….

 

카페에서 눈물을 훔치느라 바빠서 책을 도로 덮을 수밖에 없던 이야기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에 이른 장례식에 지인으로 보이는 어떤 만삭의 여인이 문상을 와 가방을 들어달라고 한다. 그것은 죽은 아내와 함께 기저귀가 가득 담아두었던 가방이었던 것. “내가 잘 보내주어야 하는 거죠.”라고 말하며, 그 기저귀를 태움으로써 남편은 아내와 아기를 보내주기로 한다.

 

 

 

150. “엄마랑 아빠는 같이 갈 수 없어. 네가 가야 할 곳은 아주 먼 곳이거든.”

‘싫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집에 가고 싶어.’

 

우느라 진이 다 빠졌던 이야기. 네 살의 아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미소라의 눈에 비친 아이는 팔짝팔짝 기운이 넘치게 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별은 슬프지만 아이는 병에서 해방되어 겨우 자유로워졌으니 이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 부모가 본다면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얘길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열심히 양수를 만들어낸 것들을 밥 먹는다고 물 마신다고 답답하다고 앉고 걸으며 쏟아내어 겨우 작은 그곳에서 옹그려있던 그 애가 생각나 울었고, 그 애도 자유롭게 폴짝폴짝 뛰었을까 상상하며 울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땐 차라리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가기는 무섭다는 히나의 말에 또 울어버렸다. 히나는 미소라의 언니인 미도리와 함께 갔는데, 그 애는 누구랑 갔을까. 나는 P아저씨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P아저씨, 잘 부탁해요.

 

 

아이를 잃은 부부 중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장례 디렉터인 우루시바라가 읽어주는 부분이 있었다. “(…) 부인이 다시는 깊은 슬픔에 잠기지 말고,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은 빛이 보이지 않아도 앞으로 따님을 가슴에 품고 서로 위로하면서 함께 살아가자는 의지가. 히나 양은 브루가 되어 앞으로도 계속 두 분과 함께 있을 겁니다.” 아마 부부는 더 단단해지겠지. 그러길 바라며.

 

 

 

 

 

지금 라디오에서는 <섬집아기>가 흘러나오고 있고, 난 그 애를 또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해가 장렬하게 지고 있고, 지금의 내 마음을 아는 퇴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배우자는 옆에서 일부러 과장해서 오두방정을 떨고 있다. 컴퓨터를 끄고 웃으면서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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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 3판
서중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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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좌편향된 한국 현대사를, 저자는 ‘객관성’이라고 일컫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 줄 평부터 써버린 것은, 책을 읽으며 매우 매우 매우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현대사는 짤막짤막하게 어떤 시대를 소설이나 역사서로 읽은 적은 있지만, 한국의 현대사를 나열하는 책은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끝으로 처음이다. 기존에 있는 내용에 새로운 내용들을 보태고, 이후의 일을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개정증보 3판으로 되어있다고 하여 기대도 많이 되었던 부분이었다. 추천사를 쓴 이이화 씨 역시 이 책은 객관적 공정성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고 하였다. 저자는 착각을 하고 있는듯하다. 이건 명백히 한쪽으로 치우친 자기 감상에 빠진 낙서장일 뿐이다.


참고로 책은 1945년 해방(광복절)을 시작으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직후까지 만을 기술하고 있다.



책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밝혀야 할 것이 있다.

너는 어느 쪽이냐라고 묻는다면 지지하는 당이나 사람이 없기에 자신만만하게 답변할 수 있지는 않다. 나의 이념은 보수의 기조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보수를 지지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저 주적인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지키기 위해 국방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까지만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보수와 진보가 더 이상 서로를 헐뜯고 싶어 환장한 닭과 개가 아니라 서로의 이념들을 기반으로 상대의 이념을 추가 보완하여 국민들이 살수록 만족감이 들게 하는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훨씬 크다. 물론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4년 계약직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의 대리인’의 그 이상로도 그 이하로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렇기에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해 주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욕도 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 어느 대통령을 지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도 언젠가 내가 지지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한 번쯤은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산다.





1. 진보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념 정도로 말하고 있고, 보수는 반공독재, 극우, 극우반공 독재, 수구냉전세력, 친일독재 강경파 등등의 단어들로 기술하였다.

굳이 그렇게 기술을 해야 했는지 의아해진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반공이 왜 나쁘지? 공산주의의 이론에 따르면 한 마디로 ‘사회 모든 구성원이 재산을 공동소유하는 것’을 일컫는다. 공부 안 하고 일 안 하는데 돈 주면 누가 공부해? 누가 일해? 나 같아도 안 해. 일 슬렁슬렁하고 월급루팡인 사람들만 있으면 회사는 이윤이 있어? 그럼 우리 사회는 누가 발전시켜? 공산주의면 사회가 발전이 될 수 있나? 모든 것이 생각 차이고 입장 차 이일뿐인 것을.




2. 독재 개ㅆㅑㅇ마이웨이라서 욕을 먹어도 한참 먹어야 하는 박정희 정권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나 역시 매우 찬성한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죽겠다는 문장들이 여력하다. 하긴 서문에서도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했으니 오죽했겠나.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 되지. 373page에 ‘경부고속도로의 문제점’들을 기술하고 있는데,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물류 이동이 원활해지고 수출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가장 우스웠던 것은, (그래 이건 우스웠다는 표현이 맞다.)

371page. 지나친 해외 의존도는 끝내 1997년 IMF (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불러왔다. 고 기술해두었다.

IMF가 박정희 때문인가? 왜요?... IMF


박정희 때 경부고속도로 건설, 원전 건설, 남산타워 건설, 4 대 강 유역 다목적댐 건설, 강남과 여의도 개발, 지하철 개통 등으로 인해 건설경기가 살아났으며 국방력이 강화된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 반도체, 조선업, 중화학공업, 경공업, 철강산업, 제철산업, 석유가공 등의 성장도 무시할 수는 없으며, 1~5차 경제개발을 5개년 계획으로 전면 시행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쓰고 있는 주민등록 제도를 시행시켰고 국민건강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의료보호법 제정에 이어 아동 장애우 및 노인복지법과 같은 복지법 역시 그 시대에 제정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시대와 노동자 및 교육열 높은 국민들이 따라줘서 어쩌다 얻어걸렸다고 말하는 표현들은 지양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구성원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지도자가 멍청하면 절대 발전할 수가 없는 일이니까. 오히려 본인 사업하겠다고 다 흩어지지. 그렇다고 하여 독재 정권의 주범인 박정희를 싸고돌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그가 이루어놓은 것들에 대해 인정은 하자는 것이다.


아, 가장 최근에는 경부고속도로 50주년을 맞아 기념비를 세웠는데, 박정희가 빠지고 김현미가 들어갔다고 한다. 참 개가 웃을 일이다.




3. 480page. 노무현 정권은 앞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어받아 정리해고의 합법화, 파견 근로제의 도입 등 노동의 유연화를 강요했으며, 진보적 지지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FTA 체결을 서둘렀다. 양극화 또한 더 심해졌다.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해외 의존 경제체제의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집권자로서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아파트값도 크게 상승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전 전 정권 탓을 하고 있다. (진보라면서 맨날 전 정권, 전 전 정권, 전 전 전 정권 탓만 해. 이건 고대 유물이야? 맨날 똑같아.)

그리고 아파트값이 상승했다는 이야기는 뒤에 꼬리처럼 왜 붙여놨어. 누구 탓이 아니라 누가 봐도 노무현 정권은 완벽한 부동산 실패였는데.


또 NLL은 정황만 있고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기술하지 않은 건가요?...



권양숙 뇌물 받은 정황은 따로 얘기도 안 하고 이명박이 비리를 캐내기 위해 공권력을 대거 동원했기 때문에 노무현이 자살했다고 기술했다. 권양숙을 위로하는 김대중이라고 사진이 실렸는데 나는 그 부분을 오려내고 싶었다. 뇌물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노무현이 죽음을 택한 이유는 본인이 가진 도덕성과의 충돌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것들이 결코 죽음으로서 미화가 되면 안 된다. 가장 악랄한 방법이다. 이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박원순도 마찬가지다.




4. 김대중·노무현 정권에는 그렇게 칭찬 일색을 늘어놓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오자 또 경제가 어쩌고 하며 까내린다. 진짜 질린다.

하지만 가장 질리는 대목은,


484page. 박정희 추종자답게 극우반공 성향이었는데,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대북 봉쇄정책을 펴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박정희·전두환 시대로 되돌려놓았다.



당연하잖아.

그럼 가만히 있나? 북한이 부모야? 형제야? 자식이야? 뭐야?

부모라도, 형제라도, 자식이라도 연 끊고 살 수 있어.

하물며 진짜 우리 부모, 형제, 자식인 국민이 죽었어.

다른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온도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니.

또 천안함 사건에 ‘계기’라는 맞지 않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우습다.




5. 결국 난 이 책에서 내가 취할 것만 취했고 버릴 것은 버렸다.

취한 것은, 난 저자의 말에 의하면 반공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많은 자유를 억압받는 지금의 정부에 강제로 헌납해야 하는 우리의 재산권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여전히 국방이 강화되지 못한 지금 현실에 애통한 마음이 든다.




6. 꼭 ‘객관적’이라는 단어는 뺐으면 좋겠다.

 

 


 

오탈자

221page. 조리돌리기는 293page에 있는 게 아니라 297page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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