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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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엄마한테 뭘 기대해?”

“아니. 엄마는 더 이상 내게 상처를 줄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설명도, 사과도.”

“그럼 엄마를 용서했어?”

 

용서… 거창한 말이다.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하겠다고 저자가 열네 살에 집을 떠난 엄마.

저자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 나는 내가 용서를 해야 하는 대상을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에 우습게도, 그동안 미워했고 싫어했던 대상들에게도 용서라는 단어는 적절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분명 나는 그들에게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고, 분명한 것들로 인해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용서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왜 자꾸만 불편했을까. 그렇다고 화해의 대상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과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오간다고 하더라도 화해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태니까. 도대체 용서라는 것은 무엇이고, 용서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오히려 책이 질문을 던진다.

1. 용서는 이해한다는 뜻일까

2. 용서는 사랑한다는 뜻일까

3. 용서는 망각한다는 뜻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사랑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망각해서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세 가지가 결합되어도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세 가지 모두가 적용되지 않아 용서를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심지어 기억이 망각되거나 미화가 됨에 따라 혹은 시간의 지남에 따라 혹은 자신의 여러 경험들에 따라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이해를 하게 되고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 뒤늦게라도 용서를 하게 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이런 어려운 질문들을 던지다니.

 

 

 

16. 용서는 말 그대로 하자면 복수와 보상의 포기다. 용서하는 사람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념하고, 중지하며, 꾸짖기(가리키고 알리기)를 멈춘다. 상처를 가리키는 손이, 타인을 향한 책망이 용서와 더불어 끝난다.

책을 읽으며 어려움을 느꼈다. 용서라는 개념을 알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용서가 철학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구렁텅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는 책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하는 애매모호함에서 왔다.

 

책에서는 죄 사함과 용서를 비교하고 있는데, 죄 사함(=사면)은 오직 성직자 혹은 신의 영역이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다운그레이드 된 용서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한다. 영화 <밀양>을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책의 소개평에 쓰여있는 것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딸을 죽인 범인이 이미 자신은 신에게 사면을 받았다고.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사면을 받았다니. 영화를 봐야만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영화를 위시 목록에 넣어두고 조만간 보려고 한다.

 

나는 그보다는 화해와 용서의 개념을 정립하고 싶었다. 어떤 행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순간부터 그 행위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라는 그 말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화해는 하고 싶지 않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용서는 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몰라 마음이 삐죽거린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용서라는 것은 단순하게 복수와 보상의 포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이다. 단순하게 복수와 보상의 포기라고 한다면 나는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상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게는 용서를 함으로써 얻는 보상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책의 논리를 인용하자면 용서가 아니다.

 

“제가 만일 ‘나는 네가 용서를 구함으로써 변화되었고 더 이상 전과 동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조건하에서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용서하는 것일까요?”

진정한, 순수한 의미에서 용서하는 사람은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자신이 보상을 포기한 것이 유익한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반드시 의도가 있는 경제적 채무 탕감과 달리 용서는 철저히 무목적적이다.

 

 

그렇다고 그게 용서가 아닌 것은 아닌데. 그럼 그건 용서가 아니라 무엇으로 칭해야 한단 말인가. 아, 책의 제목과 꼭 같다. 조금 불편한 용서_

 

 

 

책을 읽으며 용서라는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황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마음가짐이 다르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 이해할 수도 있고 지금은 사랑할 수 없지만 결국에 사랑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며 지금은 생생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고 여전히 생생하지만 용서를 할 수도 있다. 용서는 오롯하게 개인의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이 그것을 종용하거나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문제다. 어쩌면 용서는 딜레마와 같을지 모르겠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 결국 엄마를 용서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생일에 초대한 엄마가 와서 환하게 맞이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초대를 한 것도, 올까 안 올까를 궁금해한 것도, 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것도 모두 한 사람이라는 것을. 따라서 저자에게 엄마는, 용서의 존재가 아니라 화해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책 속의 문장

 

21.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실상 그것이야말로 용서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야말로 용서를 요청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 아닙니까?

 

21.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22. 화해의 과정에서 상처를 봉합하는 것

 

전체주의 정부의 등장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중요한 사건인 만큼 전체주의를 이해한다는 말은 무언가를 용서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가능한 세상과 화해한다는 뜻이다.

 

81. 이해를 하면 무조건 감수해야 할 때보다 견디기가 수월하죠.

 

133. 용서할 수 있으려면 상대에 대한 사랑이 한 움큼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용서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습니다.

 

137. 그는 용서란 ‘마음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충분한 거리를 두면 조금씩 진전이 보이죠 용서는 일종의 자기 발견이거든요.”

 

166. 용서하는 사람은 일어났던 일을 잊는 것이 아니며, 결코 건망증을 앓는 것이 아니다. 일어났던 일은 흔적으로 기억에 고이 보관된다. 용서를 통해 변하는 것은 이 흔적의 심리적 배역이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무거운 죄나 어쩔 수 없는 집착의 대상이 아니다. 그 흔적은 역사적 무의미 속으로 가라앉는다.

 

229. 용서는 포기의 행위다. 용서하는 사람은 보상을 포기한다. 하지만 이런 포기는 그것이 유지되는 동안, 유지될 수 있는 동안까지만이다. 용서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진행된다. 또 용서는 오늘 되는데 내일은 다시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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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에서 꽃 배우기
이유현 지음 / 부크크(book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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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지역으로 이사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듣고 싶었던 강의를 찾는 일이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본적 말고는,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큰 도시일지도 몰랐다. 이사를 오기 전에 검색해보니 교육에 대한 인프라가 꽤 괜찮기도 했었다. 바로 직전에 살던 곳에서는 취미로 꽃 수업을 배우려면 주 2회, 6주에 45만 원이라는 말에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접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곳에서 꽃 수업을 1년 텀을 두고 같은 곳에서 두 번을 수강했는데, (내 꽃꽂이 실력은 생각보다 더 하찮았지만) 꽤 괜찮은 강의였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수강을 하니 거의 98% 똑같은 커리큘럼에 그 이후로는 꽃 수업은 안 해도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즈음은 또 생각이 바뀌어 다른 곳으로 좀 다녀보고 싶은데,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직장 생활이나 직장 생활의 연장이 아닌 이상에야 모임은 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꽃 수업을 듣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가을이 왔으니 꽃을 들였다. 이번에는 카네이션 두 송이. 꽃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살랑거린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나한테 마법을 건 것이 틀림없다.

 

 

플로리스트 이유현 씨는 일상에서 꽃이 주는 행복을 일기처럼 적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꽃의 매력을 하나의 책으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이 그 결과물이 되었다. 책에는 본인의 커리큘럼을 담았는데, 재료와 도구, 부자재를 소개하고 꽃을 잡는 방법과 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꽃다발을 받으면 공기가 잘 통하도록 포장은 풀고 물에 꽂아주라는 것이었는데, 그 물은 매일 갈아주는 게 좋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고 이번에 데려온 카네이션의 물을 갈아주었다.

 

 

그런데 문화센터 꽃 수업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꽃들을 만져볼 수 있나? 싶어서 호기가 생겼다. 내가 이전에 꽃 수업을 받았던 곳에서는 꽃 종류가 10가지가 넘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 스톡, 장미, 유칼립투스, 소국, 왁스플라워, 편백, 리시안셔스, 글라디올라스, 스프레이카네이션, 레몬잎, 석주 정도였는데, 색상도 비슷할 때가 많았고, 꽃 상태가 별로일 때도 많았다. 간혹 천일홍, 거베라와 튤립이 나올 때면 너무 행복해서 탄성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책에는 퐁퐁이나 라넌큘러스, 수국, 히야신스, 카라, 프리지아, 작약, 맨드라미도 몇 번씩 나왔다. 나는 꽃을 데려오는 금액은 잘 모르지만 장미나 스톡, 리시안셔스, 왁스플라워, 스프레이카네이션 정도는 좀 저렴한 가격에 데려올 수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해봤다. 꽃 수업을 다닐 때 단골인 꽃들이었는데, 책에서도 꽤 많이 나오는 걸 보면-

덧. 집에 맨드라미를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데, 9월인 지금도 있으려나. 다음에 꽃집에 가면 여쭤봐야지.

 

 

하지만 내가 꽃보다 더 관심이 갔던 건 가드닝이었다. 꽃 수업을 할 때도 식물은 언제 심느냐며 여쭤보고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까지 했었으니까. 꽃과 식물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꽃보다는 식물 쪽이다. 당시에 가드닝은 왜 이렇게 적냐는 내 말에 강사님은 가드닝만 하면 지루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가드닝이 더 즐거웠기 때문에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책에는 가지치기를 통해 나무를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키울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너무 아쉬워서 가지치기를 못하고 있다. 새싹이 나고 있는데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나요. 엉엉.

 

 

 

책을 읽으며 저자가 꽃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들이 더해져 마음이 따뜻해졌고, 꽃과 식물들을 보며 잠깐이지만 설렘과 즐거움을 느꼈다. 며칠 전에 식물을 들여서 이름을 뺀질이라고 붙여주었다. 뺀질이를 데려올 때, “오늘 식물 하나 데려오려고-”라는 내 말에, “꼭 하나만 데려와. 두 개 데려올 거면 니가 짊어지고 자야 해.”라고 말하던 J의 말이 떠올라서 잠시 눈치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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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넘어지지 않는 몸을 만드는 스쿼트 발뒤꿈치 쿵 헬스케어 health Care 22
가마타 미노루 지음, 이윤미 옮김 / 싸이프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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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가장 최근에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했었다. 갱신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8월 초에 잰 체중이 7월 초에 잰 체중보다 3kg 이상이 불어있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질적인 질병이 다시 심해졌나 싶었던 것이 가장 컸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마시고 나서의 니글거림이 신경 쓰였던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고, 사무실에 늘 구비되어 있던 여러 가지의 과자를 먹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나는 원래 그 체중이었던 사람처럼 유지 아닌 유지를 했다. 처음에는 “아닐 거야- 오늘 내가 너무 많이 먹었나 봐.”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나를 비웃던 그 숫자들이란... 점차 늘어가는 숫자들을 보며 약간의 우울감과 더불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먹는 건 똑같이 먹었다...



하지만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체중이 아니라 근력이다. 신체의 근력을 기르는 것. (이라고 말은 하지만 체중에 얼마나 일희일비되는 사람인지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체중의 숫자가 바뀌었을 때 나는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오늘 내가 너무 많이 먹었겠지. 하면서 아침마다 체중이 그대로일 때 느끼던 그 막막함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말을 번복한다. 나는 체중도 줄여야겠고, 근력은 늘려야겠다.



체중만큼 근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쫓길 때 도망을 가야 하는데 다리에 근육이 갑자기 다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게 되는 꿈을 여러 번 꾼다. 일 년에 못해도 열 번은 넘는 것 같다. 그 꿈을 꾸고 나면 며칠 동안 자각을 하면서 걷기 운동에 스쿼트를 병행하곤 했었는데 그건 근육처럼 스르르 풀려 그때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운동에 대한 의지 향상을 좀 높여보기 위해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운동에 관한 서적을 읽어보기로 했다는 게 이 책을 읽은 이유라면 이유가 된다. 평소에 나는 운동 서적을 전혀 읽지 않는 편인데,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면 되지, 왜 책을 읽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읽는 게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70대의 남성으로, 현재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 67세에 80kg에 달하며 건강관리를 시작했다는 그는, 현재는 9kg를 감량하면서 허리둘레는 9cm가 줄었다고 한다. 연령으로 보아 기초대사량이 현저히 낮을 텐데도 그런 결과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신기함을 넘어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이 한 운동들을 소개하는데 운동은 총 3가지에 플러스알파 정도가 되겠다.




1. 스쿼트

8년 전 나는, 자신감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헬스장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운영하는 그룹운동에 매번 참여했었다. 그룹운동은 매번 강사님도 다르고 운동 방식도 달랐지만, 스쿼트는 매일매일 있었다. 처음에 스쿼트를 하면 허벅지가 두꺼워진다던데 등등의 말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는 스쿼트에 심취하여 스쿼트를 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하나둘셋 구령에 맞춰 그것을 해내는 것이 목표의 전부인 사람이었고, 지금보다 허벅지가 더 두꺼워질 것 같지도 않아서 (휴) 열심히 따라 했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변화들이 있었다. (그래... 사진 찾아보니 변화들이 있긴 있었네...)



2. 발뒤꿈치 쿵

발뒤꿈치 쿵은 발가락 끝으로 선 상태에서 발뒤꿈치를 쿵-하고 떨어뜨리는 운동인데, 이는 골다공증, 골절,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뇌경색, 대사증후군, 치매 등을 예방해 주므로 강력 추천하고 있다. 스쿼트보다는 좀 더 쉬운 운동이지만, 이 역시 짬을 내서 실천하지 않으면 정말 하지 않게 될 운동 중 하나인데, 고작 발가락을 이용하여 발뒤꿈치에 압력을 가해 이 모든 것들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잘 믿는 편은 아니지만, 저자가 의료계에 종사하니 속는 셈 치고 믿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게다가 어렵지 않으므로 잠깐의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중장년의 어르신분들도 쉽게 따라 하실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3. 걷기

9월 중반으로 넘어가는 지금, 나는 7월 초의 몸무게를 되찾게(?) 된 지 3일 정도 되었다. (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지금의 몸무게는 8년 전 내 최고의 몸무게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그동안 덥다는 이유만으로 걷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 8,000보의 걸음이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었는지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8월에는 덥기도 하고 갑자기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찝찝하다며 하루 3,000보도 못 걸었던 날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유동성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한다.

저자는 빠르게 3분, 느리게 3분 걷기를 추천하고 있다. 평소에 일정한 걸음으로 걷는 편인데, 빠르게와 느리게를 병행하며 걸을 생각은 못했기 때문에 출근길에 일부러 차를 좀 멀리에 대 놓고서라도 해봐야지!




요즈음은 주간 목표를 이런 식으로 세우고 있는데, 몇 주간 내 목표는 ‘건강한 돼지 되기’이다. 스쿼트는 J와 함께 하고 있는데 10번 3세트를 하루 해놓고... 허벅지 안쪽이 너무 아파서 엄두를 못 내다가 오늘은 해봐야지 오늘은 해봐야지 하고 있는 중이다. 서평을 쓰는 오늘은 꼭 다시 할 거다. 그러면 내일 또 허벅지 안쪽에서 불이 나겠지. 흐으... 건강한 돼지가 되는 길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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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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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업으로 삼을 수 없는 것들이 아주아주 많지만 개중에서도 생명과 죽음과 관련된 것은 더욱 그렇다. 최근에 읽었던, <머지않아 이별입니다>라는 소설에서 등장했던 장례 디렉터라는 직업을 접하게 되면서 그런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이 생경했다. 세상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입에 올려본 적 없는 직업군이라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인 <시간이 멈춘 방>은 유품정리인이었다. 며칠 전에 이 직업이 티비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보진 못하고 돌아다니는 캡처본만 봤었지만, 그 캡처본만으로도 어떤 고충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어두워졌었다.



유품정리인인 고지마 미유는 고독사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아버지의 돌연사 이후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유품정리인의 삶을 시작했다고 하니 올해로 7년 차인 셈이다. 유품정리인이라고 하면 단순히 유품정리만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유품정리 외에도 쓰레기 집 청소, 특수 청소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독사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실제 고독사가 발생한 현장의 사진을 쓰다 보면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고인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행위가 아닌지, 유족의 슬픈 기억을 들쑤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고. 그래서 저자는 고독사 현장에서 목격하는 방의 특징을 응축해 미니어처로 재현해냈다.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책을 제안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고독사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말을 걸고 얼굴을 보러 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도 책의 말미에 써두었다. 책의 서문을 읽을 때도, 책의 본문을 읽을 때도, 서평을 쓰는 지금도, 저자는 참 인간적인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쓰레기 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채로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의 기질적인 특성이 게으름에 비롯되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렇다. 여전히 접객업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 수집벽이 있는 사람, 정리 방법을 모른 채 혼자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산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치매나 발달장애로 인해 정리 정돈이나 분류가 어려운 사람이나 스토커로 인해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처음으로, ‘아, 그런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사를 가도 같은 건물로 이사를 와서 밖에 빨래를 널 수 없었고, 봉투를 뒤질까 봐 쓰레기를 내놓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쓰레기들을 상자에 포장하여 이삿짐으로 위장해 빼내기로 했는데, 스토커가 모습을 드러내고 어디로 가는 거냐며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고 해서 곤란을 겪었다는 글이 쓰여있었다. 그렇다면 의뢰인은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고 지냈던 걸까.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소중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걸려서 무기력하게 되어버린 사람들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으면 금세 쓰레기 집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면서 “난 저렇게는 안 될 거야.”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유품 정리를 하다 보면, 자칭 고인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나 집 안을 염탐하며 이른바 돈이 될 만한 것들이나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들을 점찍어둔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나한테 준다고 한 거야!”라고 무척이나 당당하게 말을 한다며. 하지만 그 친구들만 그럴까, 가족도 그럴 텐데. 저자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운 점이, 인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티비나 책에서 겪는 것들도 마음이 힘들어지는데, 직접 그런 꼴을 보면 회의감이 얼마나 들까 싶다. 인간이 인간일 때에야 가장 인간다운 법인데.

 

 

 

 

 

 

생을 살 때에도 외로웠을 그들이, 생을 마감한 후에도 외로웠을 거라 마음이 착잡해진다. 짧은 페이지가 마음을 헤집어놓았고, 그 마음들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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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따는 해녀
박형철 지음, 김세현 그림 / 학교앞거북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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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하늘에서 바다로 별이 떨어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바닷속에 있던 나는 바다로 떨어지는 별을 피하면서도 별을 만져보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던 그런 꿈이었다. 꿈에서조차 가까이서 본 별은 참 노랗다고 생각했다. 그 꿈이 인상 깊어 한동안 그 꿈을 길몽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별을 딴다고, 별을 따는 해녀. 입안에서 공글려본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쩐지 꿈에서 나는 해녀가 아니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곤 실없이 웃었다.

 

 

 

 

해녀들은 밤마다 별이 떨어진 바다로 가서 별을 따다가 등대에 넣어주니, 별의 기운을 받은 등대는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닷가 주변에 공장과 건물들이 들어서고 해녀들은 떠났으며 바닷물이 시커멓게 되었다. 밤바다를 밝혀줄 별은 보이지 않고 불가사리만 가득 남았다. 선희는 손녀 연주에게 밤마다 별을 땄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연주는 별들을 따서 등대에 별을 넣어주었고, 30년 만에 등대에는 불이 들어왔다.

 

 

 

 

올해부터 시작된 전염병 시대를, 우리는 현재 아직까지도 경험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몇 날 며칠 내리던 비에 많은 피해가 속출하기도 했었다. 이는 우리가 이제까지 아무렇게나 살아왔던 방증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처음 가져봤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단어를, 나는 재작년에 처음 들어서 대출 알고는 있었고 실천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 편리함을 버릴 수가 없어서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금씩 나도 그 움직임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마트에 장바구니를 가져가는 것과 종이컵 사용 대신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있다. 이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회사에서 텀블러를 매일 세척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그날그날 쓴 텀블러를 출퇴근 시에 달랑달랑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종이컵 사용 대신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귀찮은 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텀블러를 열심히 들고 다니고 있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움직여봐야지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읽어야 하는 동화책에, 이제는 환경에 대한 문제까지 등장을 하게 된 현재의 상황에 슬프기도 하다. 이러다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바다에 살던 인어공주는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노력해 주면 더 좋겠지만 나 먼저 잘 해봐야지. 나의 경우에는,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는 태어날 내 조카를 생각하기도 하고, 내 친구의 아이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좀 더 의욕이 생기기도 하니까.

 

 

보고 있니 미래의 조카야? 고모가 너를 이렇게 생각한단다. :)

ps. 오늘 종이컵 하나 쓴 거 반성해. 근데 텀블러가 머신에 안 들어가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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