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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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독한 슬럼프다. 그것은 활자들을 읽는 재미조차 상실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이 없기에, 그에 따른 해결책으로 내 자신은 내게 유예기간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기꺼이 내주었다. 그러니까 난 징그러운 슬럼프와 싸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포기선언을 한 상태. 그런데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이름하야 「밀레니엄」 - 그것은 내가 이 책에 빠져들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손과 마주잡았기에 이 책을 오롯이 읽어내고 그에 합당한 서평을 써내야만 했던 것. 밀레니엄, 밀레니엄 -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100페이지까지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가며 이게 뭐가 대단한데? 왜? 어째서? 어떤 부분이? 라고 부정적으로 반문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당연하지, 그쪽 지방의 실 지명을 댄다한들, 관심을 두지 않아 들어도 모르는 그곳이기에 -한마디로 듣도 보도 못했으니-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진척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야 늘 쓰던 것이라 아무런 거부감도 없었지만, 연습장 한 켠에 지명도 함께 적기는 처음인 것만 같아서 머릿 속에서는 아우성을 치더라 말이다. 결국 그것은 책을 읽는 것에 있어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어쨌든, 그것에 내가 대응이랍시고 할 수 있는 것은 4일째 하릴없이 페이지를 넘기며 졸음을 머금은 나의 눈이 번쩍 뜨이게 만드는 부분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그곳과 조우한다. 반갑다. 미치도록. 그제서야 안면에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

 

 

 

이제 그것은 하나의 연례행사가 되어 있었다. 남자가 그 꽃을 받은 날은 자신의 여든두 번째 생일날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헨리크 방예르’의 증손녀 ‘하리에트 방예르’가 그의 생일만 되면 만들어주던 압화(押花)가 그녀가 죽은 36년 뒤인, 그 해에도 역시 날아든 것. 그는 1년이라는 시간에 살해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면 500만 크로나 -8억의 상당한 금액- 를 주겠다 말하는 것과 함께, “자네에게 한스에리크 베네르스트륌을 넘겨주겠네. 나는 그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 그는 30여 년 전 바로 우리 회사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네. 나는 자네에게 그의 목을 쟁반 위에 담아줄 수 있어. 수수께끼를 풀게! 그럼 나는 법정에서 망신당한 자네를 ‘올해의 기자’로 만들어주지!” p170-171 라며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는 안그래도 ‘베네르스륌’과의 소송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위축되어있었고, 그는 그 사건을 맡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아니, 그것은 그에게 있어 잡아야하는 어떤 동앗줄이었을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글쎄, 그가 과연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을 빌자면, 강산은 벌써 세 번도 변했고, 이제 네 번째 변할 차례인데, 그만큼 시간이 지나 또렷하지 못한 그토록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줄까.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다. 그 뒤엔 언제쯤 보여줄건데? 라고 재촉하는 내가 있다.-

 

스포트라이트는 ‘블롬크비스트’만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다.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그녀를 향해 비추고 있었다. 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 데다, 짧게 커트한 머리, 코와 눈썹에는 피어싱까지 했으며, 목에 2cm의 말벌 문신과 이두박근 둘레에는 끈 모양의 문신, 그리고 견갑골에는 좀 더 큰 용 문신을 한 매력적인 사람임엔 분명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리스베트 살란데르’ - 그녀였다. 그녀의 삶은 어떤 모양새인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누구에게 어떤 대우를 받았고, 또 받고 있는지_를 다루고 있다. 아직 그녀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자꾸만 기대가 된다. 실은 ‘블롬크비스트’보다 좀 더 기대가 되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그가 기가 죽는 것은 아닐까. 쿡쿡. 어쨌든, 그녀에겐 무언가가 있다. 그녀의 행동 양식이 그걸 말해준다.

 

 

 

나는 1권에서 멈춰있다. 아직 이 책이 어떤 책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내가 내릴 수 있는 정확한 대답일게다. 아직 사건에 대한 발돋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서, ‘헨리크 방예르’가 의뢰한 사건의 진척은 여전히 없어보이고, 손아귀엔 잡히는 것이 없다.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나는 그 곳을 서성인다. 혹자는 -아니, 사실 나를 제외한 모두일지도- 왜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지 알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1부 2권을 끝낼 때까지 이 책의 평은 내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저 책이 잘 읽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직 진척되지 못한 부분들에 평점을 내리기엔 그동안 잘 읽혔으나 끝 마무리가 별로였던 책에 대한 예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떠한 대안도 없이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하물며 어떠한 실마리라도 잡히리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소극적인 1권은 아직 내게 눈이 트일 자리가 없다,는 것도 한 몫한다. 다들 열광한다는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슬럼프를 겪고 있는 중이고, 그 슬럼프는 2권을 집는 순간에 끊을 수 있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그곳에서는 집어삼킬 듯 읽어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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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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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한 먼지라도 묻으면 어쩌나, 반들반들하게 닦아주는 판도라의 상자 속 또 다른 상자에는 당신이 그려놓은 유토피아가 떡하니 당신을 보며 그 어떤 것보다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덜 삶아진 달걀처럼 반숙 상태라 해도,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것은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또, 사고가 어느 곳까지 미치느냐,에 따라 언제 바뀔지도 모르고. 어찌됐든 누구나 품고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내보일 수는 없다. 왜?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아니, 오로지 당신만의 세계니까. 그 속에 오쿠다 히데오에게 굽고 삶아진 이들이 있다,라고 생각햇다. 하지만 완전히 속았다. 내가 앞서 한 이야기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저 책 제목인 「꿈의 도시」는 유메노(ゆめの : 꿈의)라는 도시를 직역(이랄 것도 없지만)하여 나온 책이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속은 기분이다. 혼자 착각해놓고 속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다섯 -이지만 그 다섯이라고만 말하기엔 다른 이들이 가엾진 않을까- 명에겐 제각각의 꿈이 있다,는 것이 내가 처음 이 책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보잘 것 없다, 생각하지 않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꿈의 도시’라는 말이 민망해질 정도로 유메노 시에 살고 있는 그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투영한 또 하나의 도시 - 유메노(ゆめの). 그곳의 배경은 시골과도 다름없다. 시골,하면 정겨움을 상상하는가? 아니, 그곳은 우리의 삶을 투영한 만큼이나 악질적이고 위험하다. 납치, 살인 등 오감이 움츠러드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이 벌어지고 있고, 혈연으로 자신의 아들을 출마시키려는 구의원이 있고, 생계형 원조교제를 하는 유부녀들이 가득한 려인서클이 있으며, 젊은이들의 대도시 거주 이동으로 인해 황량하게 노인들만이 그 자리를 떡 버티고 있다. 게다가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이민 온 브라질인들 -디뉴- 과 대립 중에 있다.

 

 

 

시점은 5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주자로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도모노리 -. 그는 기초생활비를 지원받는 부정 수급자를 적발하기 위해 파친코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우연하게 ‘주부 원조교제’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가 그를 노리고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두 번째 주자로는 도쿄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는 여고생 후미에 -. 작년 여름에 도쿄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이 도시의 ‘최고’라는 게 모두 다 시들하게 보였다. 드림타운의 관람차는 그저 창피할 뿐이다. 야경도 없는 주제에. p91 라며 유메노를 떠나 도쿄로 진학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러던 그녀가 어떤 이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렇게 그녀의 시점은 중간에 급작스레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무사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주자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세일즈를 하는 전직 폭주족 유야 -. 싸구려 누전차단기를 집의 형편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며 사기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시바타가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을 때, 그를 책망하기는커녕 회유의 길로 인도하려 한다. 네 번째 주자로 마트 식품 매장의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요원 다에코 -. 그녀는 누가 봐도 사이비 종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슈카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사슈카이와 갈등 중인 만신쿄에 의해 회사에서 잘리게 되고, 사슈카이 지도원이 되려고 우에무라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수입은 고작 7만 엔이지만 그정도면 먹고 사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때문에. 마지막으로 출세 가도의 야망을 안고 사는 재력가 시의원 준이치 -. 그는 돌아가신 부친에 의해 게이타·고지 형제와 결탁을 맺는데, 그 형제가 시키지도 않은 말썽을 일으키고, 결국은 그를 곤란에 빠뜨리게 된다.

 

 

 

“결국 우리처럼 학교에서 낙오한 인간들은 말이다, 돈 왕창 벌어서 자신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 일류 기업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제 새삼스럽게 연예인이나 레이서가 될 수도 없잖아. 어떤 집에서 사느냐, 어떤 차를 타느냐, 자식새끼에게 어떤 옷을 입히느냐. 그런걸로 치고 올라가지 않으면 아무도 우릴 상대해주지 않아. 무조건 빅이 되어야 해. B,I,G, 빅.” p176

 

“(…)이 여자도 그렇고 그 남편도 그렇고, 20대 한창 나이에 정사원으로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 번듯한 대학 나오고, 일할 의사가 있는데도 졸업하자마자 빈익빈부익부 사회에 떨어지는 거예요. 진짜 요즘 젊은 사람들,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멀쩡한 성인이 시급 천 엔 미만으로 일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 이 젊은 부부를 좀 도와주세요. 인생,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서 사는 거 아닙니까?” p457



 

또 다르게 - 그들에게서 뻗어나온 다른 이들이 있었다. 모두 다 나열할 순 없지만, 우울증·불면증·섭식장애를 두루 갖추고 있는 니시다, 은둔형 외톨이 노부히코, 승진을 위해 혹은 사장 가메야마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자처해서 일하는 시바타, 려인서클 매니저 야마다 등을 통해서 우리는 그야말로 아득할 만큼 불안한 현재에 태동하고 있음을 등장인물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삶에 노출된 게다. 모든 것은 ‘돈’으로부터 시작하여 ‘돈’으로 끝나고, 그것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없는 자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 굽실거리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는 없는 자를 가지고 놀아난다. 그리하여 극한 상황까지 치닫는다. 또한, 인 각자의 이익을 창출하고자 할 때, 사회 기반의 흔들림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데, 그들은 여전히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 그들은 고집을 꺾지 않고, 새로운 수급자가 되려는 이들을 향한 공무원들의 강한 거부가 이어진다. 결국 그것은 덤프 트럭의 핸들을 잡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현시대엔 가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매서운 눈길과 더불어 삿대질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우둔하다고까지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향해 따뜻한 눈길 한 번, 미소 한 번 던져줄 수 없고, 그럴 마음조차 없다. 하지만 나같은 이들이 많을수록 그들은 더욱더 움츠러들고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을 숨기고자 한다. 현실에선 그런 그들을 반가이 여기지 않는 까닭에 그들이 자신을 내보이는 장소는 오직, 가상뿐이다. 그래서 그 속에서 메일린이라는 공주를 만들고 살아있는 메일린을 만들어 공주를 지켜주는 임무를 띠게 된 것, 그것이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일 게다. 이렇게 저자는 사회의 문제를 하나만 콕 집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속엔 나와 너의 자화상이 유영하고, 우리는 그런 나와 너를 쯧쯧, 혀를 차며 비웃는다.

 

 

 

책의 내용은 한 나무에서 서로 다른 나뭇가지가 각자 다른 방향을 뻗어나가듯, 그렇게 제각각인 듯 하다. 하지만 그 나뭇가지에서 뻗어나온 또 다른 나뭇가지들은 한데 엉켜있다. 번잡스러워 정신이 없어 가지를 잘라내쳐야할 정도가 아니라 그것들은 사이사이 엮여있다. 그것은 인물들의 만남은 무척 자연스럽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면 후미에와 하루키의 만남이 그랬고, 유야와 도모요의 만남이 그랬으며, 유야와 노부히코의 만남이 그랬다. 책을 읽으며 전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도미노」와도 비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월등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요인 첫 번째는 캐릭터의 완성이다. 그는 캐릭터마다마다에 또렷한 색채를 칠해주고 다른 색과 뒤섞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혼동할 여지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도미노」를 읽을 당시 28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은 제각각 빛을 내지 못하여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28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등장인물이 필요하긴 했을까? 라는 등의 물음표로 남기기에 충분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꿈의 도시」인 이 작품은 주인공 다섯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더해지는 격이다. -그것은 다섯 명이라는 적은 등장인물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이끌어나가는 캐릭터의 명확함이라 함은 작가의 역량과도 비례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두 번째는 시점의 명확한 선긋기이다. 중간 후미에가 납치당해서 행방불명된 것을 제외하고 그의 시점은 바뀌는 것 없이 한결같다. 또한 시점이 바뀔 때마다 번호가 매겨지게 되는데, 그 매겨진 번호에 5를 더하여 그 시점만 따라가면 도 다른 흥미로움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다.

 

 

 

하지만 《폭발하는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충격적인 라스트신》에 대해서 동의표를 던질 수는 없다. 까닭이라함은 스토리는 ‘도모노리 ― 니시다’라던가, ‘유야 ― 시바타’, ‘준이치 ― 게이타·고지형제’ 에 있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끌고 가는 듯하여 호흡이 좀 빨라질 시기,라고 생각했는데도 내 호흡은 여전히 정갈했다는 점은 스피디한 전개라고 생각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저 라스트신으로 몰고 가는 때, 그쯤이 되어서야 호흡이 가빠짐을 느낀다. 충격적인 라스트신? 오우, NO. 나는 사실 이런 라스트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실망도 컸고, 그 실망만큼 알 수 없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앞서 말했던 엉킨 나뭇가지들을 정갈하게 정리하고자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둔 꼴이랄까. 저자가 짜놓은 프레임 안에 그들은 갇혔다. 그리고서는 이제 난 해놓았으니 모르겠다, 나 몰라라 도망친 저자가 상상이 되더라, 그 말이다. 어떻게든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달래졌을까. 여전히 지금까지도 책을 읽고나서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단언하건대, 나는 이런 어제 운동하고 땀나는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 만큼이나 찝찝함을 풍기는 결말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캐릭터들을 한 공간에 멀뚱히 서있게 만들기만 하는 - 이런 결말은. 그래도, 오쿠다 월드. 난 그곳에 풍-덩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내 자신이 아이러니다.

 

 

 

 






















 

앞 유리에 비치는 풍경은 하늘도 길도 가로수도 온통 회색빛이었다 p21

하늘은 회색이었다. 하늘만이 아니라 길도 논밭도 집도 어슴푸레하게 가라앉아 마치 수묵화의 세계에 내던져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p190

평소에는 울긋불긋 요란하던 간판들도 춥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모두 다 회색으로 보였다. 그건 마치 이 도시의 색깔인 것만 같았다. p630


 



유메노의 회색 빛깔은 언제쯤 꿈의 빛깔로 제 빛을 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유메노가 낼 수 있는 꿈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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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나서 - 152 True Stories & Innocent lies 생각이 나서 1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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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받아들고 그 자리에서 맛배기로 조금 읽어볼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금세 그것은 ‘요건 봄이 오면 읽자’라는 다짐으로 바뀌어 책장 깊숙히 밀어두었다. 이미 에세이라면 최갑수 작가의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을 접한 뒤여서 당분간은 괜찮겠지, 싶던 터였다. 하지만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었던 까닭은 추위, 그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차게 만든다. 추위를 단숨에 녹여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는 그것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그 뿐이다. 황경신 작가 - 처음 아니, 오랜만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작가를 만난 것이 이 책이 처음이 아니다. 08 혹은 09년에 만났던 「슬프지만 안녕」이 있었다. 그 시절, 누구보다 시니컬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마음. 그렇게 메마를 대로 메마른 내 감성을 콕콕 찌르기엔 역부족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이제서야 아, 그 책. 읽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_라며 찾아보니, 그렇다. 읽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미처 와닿지 못한 것들이 허공을 유영하다 그대로 어느순간 자취를 감춰버려서, 그래서 내 기억 속에 제대로 자리메김하지 못했을거란 생각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천차만별로 다름을 느끼며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커피를 타와서 그녀의 펜 끝이 미끄러지듯 쏟아내는 문장들을 본다. 그리고, 소리내어 읽는다. 그제서야 마음이 꽉 찬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책의 내용에 공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와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달콤한 커피향이 황경신의 문장들과 어우러지고 그것들의 향연이 코 끝을 간지럽힌다.

  

-077, 03 FEBRUARY 그러니까 대체로
 

그러니까 대체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간이다.
다시 말해
시간은 대체로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한다. 

시간이 흐르면 대체로
기다리던 순간이 오고
기다리던 사람이 오고
기다리던 무엇이 온다.

시간이 흐르면 대체로
상처는 흐려지고
마음은 아물고
아픈 기억은 지워진다.

시간이 흐르면 대체로
용서할 수 없었던 무엇을 용서하게도 되고

시간이 흐르면 대체로
참을 수 없었던 무엇을 참게도 되고

시간이 흐르면 대체로
가질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게도 되고
 
무엇보다
대체로
사랑을 다시 믿을 수도 있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도 어디선가 나를 위한 좋은 일 하나가
예쁜 상자 안에 담겨
배송일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을 위한 작은 선물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져
어느 가게 쇼윈도에 가만히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발견하기를.
내가 당신을 떠올리고 걸음을 멈추기를.

시간은 종종 나쁜 것들도 가져오지만
그러나 대체로
좋은 것들을 꽁꽁 숨겨둔 채
우리의 마음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딜레마를 겪는 순간은 그때 그때마다 다르겠지만, 늘 한결같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감정을 남기고, 또 비슷한 아픔을 겪는다. 그것은 대체로 비슷한 혹은 변화없는 똑같은 결과에 당황하여 내가 데자뷰를 겪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아, 반복이다. 나의 생은 그렇게 반복된다. 내가 그때마다 믿고 싶었던 것은 시간, 시간, 시간이다. 그것 뿐이다. 사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말하진 못하겠다. 애초에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와 나의 교감이랄 것도 없는 그 무엇인가를, 혹은 공감을 - 이것을 읽으며 처음 느꼈더랬다. 그리고 떠올렸다.  막연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라도 되는 듯, 시간만 바라보던 나를. 그것은 문장과 오버랩이 되었다. 그녀의 글 위에 내 생이 얹힌 게다. 다른 부분들을 주욱 읽다가도 생각만 나면 도돌이표처럼 다시 돌아와 다시 읽고, 읽다가도 되돌려 읽는. 그러다가 그 무엇인가가, 내가 그것을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정말 그럴까요? 라며 의구심을 가득 품고 묻고 있지만, 입가에 지어지는 나도 모르는 미소는 어찌 할 수가 없다.

 

 

 

작가는 ‘생각이 나서’ - 라는 이 말이 참 좋다고 했다. 그녀가 좋다니, 나도 한번 읊어본다. 생각이 나서_라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때, ‘왠일이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때면 난 무언가에 데이기라도 한듯 깜짝 놀라며 ‘그냥‘ - 이라는 말을 내어놓는다. 컨디션이 괜찮을 때엔, ‘그냥, 보고싶어서’ 라며 능청스레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총체적으로 ‘생각이 나서’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 으레 떠오르는 친구가 있는데, 지금 시간이면 일하느라 바쁠 그 친구에게 문자를 한통 보내야 겠다. ‘생각이 나서’라는 책을 읽고 ‘니가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그러면 그 친구는 그 책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느냐고 묻겠지. 쿡쿡. ㅡ 나는 작가의 문장이 섬세하다거나 사실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그녀의 문체에는 높낮이가 있는 것도 같고, 저마다의 억양이 있는 것도 같다. 하긴_ 소설도 아닐 뿐더러, 152라는 숫자가 붙어있으니 (장마다 이야기하는 것이 다른: 원래 감성 에세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작가님, 일상을 잘 지내다가 생각이 나면 - 다시 찾을게요.

 
 

 

-082. 12 FEBRUARY 괜찮을 리가 없잖아
 

괜찮냐고 묻지 마.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물어보면 나는 괜찮다고밖에 대답할 수가 없잖아. 괜찮지 못하다는 말은 배운 적이 없으니. 힘내라고 하지 마. 이미 힘을 내고 있잖아. 그러고 있는데 또 그러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어버리고 싶은걸. 모든 게 잘될 거라고 말하지 마. 잘되지 않았으니 이렇게 된 거잖아. 잘되지 않았고 잘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신은 내 곁을 지켜주겠다고만 말해줘. 울고 싶으면 울라고 해줘. 슬퍼하고 속상해하고 아파하라고 해줘. 내가 위로를 구할 때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함께 있어줘. 그것으로 나는 감사해. 그 힘으로 나는 걸을 거야. 어쩌면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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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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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그 여운의 맛이 깊어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내가 이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치부해버려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 책이 있다. 그것은 책을 다 읽고 현기증이 일도록 아득해져버리는 까닭이다. 그런 책은 다시 읽어야 한다. 내 마음 속에서 밀어낸 책이 아니고서야 그 책은 다시 한번 읽을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전에 김은국의 「순교자」가 있었고, 김별아의 「미실」이 있었다. 그것들은 내게는 언젠가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 책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이 책을 덮고 다른 감성 에세이를 접한 뒤에야 숨을 고르고 다시 한번 첫 장을 펼쳤다. 두번 째로 마지막 장을 넘기며 또 한번 하지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내가 야속하기만 하다. 처음이 어렵고 두번은 쉽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있고, 제외되는 것이 있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은 후자였다. 옮긴이의 말을 제외하면 꼴랑 265페이지라는 결코 두껍지 않은, 소설로서의 알맞은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은 무척 질척거리는 존재,였다. 마치 마그다가 아비에게 질척거리는 존재였던 것처럼 -

 

 

 

처음부터 끝까지, (1 - 266이라는 번호가 주는 의문점은 끝내 풀리지 않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향하는 곳은 마그다, 그녀 뿐이었다. 그녀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이 매듭지어진 견해를 발설할 수 없었고, 그 근처에 근접할 수조차 없었다,고 생각되었다. 심지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마저도. 만약 그녀와 헨드릭 - 혹은 클라인 안나 - 혹은 아버지, 혹은 독자인 ‘나’ -. 개중 누구든간에 그녀와 조우하였더라면 아니, 그녀의 ‘나라’에 다른 이의 ‘나라’가 개입된다면 그것은 분명 ‘충돌’이라 규명지어질 것이었다. 그러니, 그것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녀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밖에는 이 책에 대해 가타부타할 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재하는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것은 그녀의 아비였던 요하네스 나리가 도끼에 찍혀 살해당했는지, 총으로 살해당했는지와 연관되는 문제다. 하지만, 난 할 이야기가 남았다. 아직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녀에 관한 이야기. 가엾은 그녀의 -.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일러주려고 하는 것을 느낀다. 아마 정말 자신의 독백, 그것뿐이었다면 내가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리라는 우매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책을 되풀이하여 두번을 읽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상한 기분이 감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울린다. 그것의 까닭은 알아낼 수 없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고독’ 혹은 ‘외로움’이라 이름 붙여져 있는 그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나는 혼자 살지도 않고 무리 속에 살지도 않고, 아이들 사이에 있는 것처럼 산다. 이상하고 베일에 가려진 듯한 말이 아니라 신호, 얼굴과 손의 일치, 어깨와 발의 자세, 음색과 어조의 미묘한 차이, 문법이 기록된 바 없는 틈과 부재와 같은 신호를 통해 나에게 의사가 전달된다. p18 이라는 문장에서 ‘외로움’이라는 실체가 없는 것이 그녀의 살갗에 들러붙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은근스레 일러준다.

 

그러다가 나는 어둠 속에서 뒤척인다. 미칠 것 같다. 너무 비참하고 너무 외로우면 사람은 동물이 된다. 나는 모든 인간적인 관점을 잃어가고 있다. p103 이곳에서 그녀의 외로움이 가중되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지만,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한 그녀는 그것을 클라인 안나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헨드릭에게 돈을 주겠다는 명목 하에 자전거로 이틀이나 가야하는 우체국에 보내고, 그녀에게 털어놓는다. “(…) 나의 혓바닥은 불길이야, 너도 알 거야. 하지만 그것이 모두 쓸데없이 안으로 향하고 있어. 너한테 내 말이 화난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내 안에 있는 불길이 타닥거리는 소리일 뿐이야. 너한테 정말로 화가 난 적은 없었어.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다른 사람하고 얘기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거든. 늘 말이 나한테 왔고 나는 그것을 전했을 뿐이지. 안나, 나는 진심으로 서로 주고받는 말을 알았던 적이 없어. 내가 너한테 한 말들을 너는 되돌려줄 수 없잖아. 그건 가치 없는 말이야. 알아듣겠어? 가치가 없다고. (…)클라인 안나는 그렇게 그녀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듯 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토록 가엾지만은 않았으리라.

 

 

 

책을 한 번 읽을 때와, 두 번 읽을 때 - 그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고 해야했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확연하게 다른 점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내면의 아픔이 가중되었을 뿐.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생각한다. 한 사람이 쓸쓸함을 느끼는 정도가 환산된다면, 그녀의 쓸쓸함은 어디까지 치솟을 것인가. 나는 감히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려고 했다. 나도 똑같다고. 나도 제대로 된 대화법을 몰라 사람들과 투닥투닥하며 지내고, 몰랐던 사람들보다도 못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다고. 제대로 된 대화법을 알기 위해 책까지 나오는 시대라고.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아주려했다. 하지만, ‘대화한 적이 없다’와 ‘대화법을 모른다’의 간극에는 무수한 점들이 빼곡히 박혀있었다. 그런데 가혹하게도 그녀는 그 간극의 틈을 알아챌 수도 없게, 둘 모두 해당사항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거다. 후우 - 나는 여전히 그녀의 삶이 처연하다. 하지만 공감할 수가 없다. J.M.쿳시 - 그가 뱉어내는 단어의 조합으로 인한 문장의 완성은 아름답고, 청아하며, 유려하다고까지 여기게 된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내게 와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그의 잘못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에 별 한개 - 한개반 이상은 줄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해 생각해야만 했던 것들이 많았고, 그 생각하는 시간에 비로소 책을 읽으면서는 홀라당 넘어갔던 것들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는 점, 그것이 이 책에 별 세개라는 나조차도 까무라칠 만한 평을 주게 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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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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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아내다가도 내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때가 참 많음이 불쑥 불청객처럼 나타나 가까스로 견디고 있는 내 하루를 그것으로 인해 모조리 망쳐버릴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노하우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텐데, 아직은 고단한 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마냥 즐겁지만 않은 나에게 그것은 숙제와 같이 나를 힘겹게 만드는 거머리와도 같다. 그런 생각이 더 짙어지기 전에, 감성을 폭포수처럼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감성 에세이를 읽어주어야 한다,며 그것을 찾아헤맸다. 책장에 꽂혀진 책들을 보는데 읽지 않은 책들 중 눈에 띄는 것은 황경신 작가의 「생각이 나서」와 최갑수 작가의 「잘 지내나요, 내 인생」 - 이렇게 두 권을 두 손에 움켜쥐고는 어떤 책을 읽지? 하며 손에서 저울질을 해대다가 최갑수 작가의 책은 이 작품을 제외하고는 꼴랑 두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통로로 친밀감이 형성되어 흘러들어왔는가보다. 아니, 혹은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처럼 내 인생에게 잘 지내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게 나는 어떤 물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물며 주인인 나에게조차도. 그것은 어떤 대답이 들려오고, 듣게 될 것인지를, 구태여 귀를 막지 않는다하여도 ‘……’ 라는 말줄임표를 이미 알고 있어 지레 겁먹고 눈을 꾹 감고 귀를 두 손으로 막아버리는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을 내가 상상되는 까닭일까. 그런 나에 비해 자신의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는 저자를 보고 인생을 참, 괜찮게 살았나보다 - 생각한다. 그는 그 물음표 속에서 느낌표, 혹은 마침표 그것도 아니라면 쉼표라도 찾아내었는지, 아니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개중 어떤 것이 이 책을 집게 만든 연유인지는 모른다. 혹은 둘 모두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의 문장이 내두르는 향취가 궁금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읽고 싶었다,라는 것이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읽게 된 까닭일 게다. 그렇게 나는 그 곳에서 셔터를 누른 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 저자가 누르는 정지된 세상 속에 초대된다.

 

 

 


병원을 예약해놓고 예약대기실에서 이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읽기엔 아이들의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에이, 읽지 말자 - 라는 생각을 굳히고 그저 책을 뒤집어 본문 중 어떤 한 장을 모조리 발췌해놓은 것, 어떤 글자보다 크고 또렷한 ‘누구나 통과하는 시간, 서른과 마흔 사이’ 가 시야에 가득 찬다. 나에게 이 책의 시작은 그것이었다. 책은 휘리릭, 휘리릭 잘 넘겨진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닐 게다. 시야에 가득 담긴 활자와 문장들을 곱씹는 입과 그것을 담으려는 마음과 얼른 페이지를 넘기려고 안달난 손이 고장난 로봇처럼 따로 노는 것이 감성 에세이라는 장르의 책을 읽는 내 방법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휙휙 넘어가더라 그 말이다. 그의 인생이 고루 느껴지는 문장들에 그의 인생은 뒤로 제쳐놓고 내 인생을 포개어놓아 그와 나의 인생을 격리시켜야 했다. 그렇게 해도 공감할 수 있는 것 - 그것이 바로 감성 에세이가 아니던가. 물론, 낯설지 않게 그와 나의 감정이 바특할 정도로 가까이 치달음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김과 동시에 거리감이 느껴지게 할 만큼, 아득함의 깊이를 맛보게 하여 감성으로 차올랐던 마음들이 민망해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문장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그와 나의 다른 나이,라는 진부한 까닭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니라, 이 책에는 나와 내 인생이 맞닥뜨리게 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 저자의 이야기로 가득참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 까닭인 것이다. 나는 내 감성을 똑똑, 두드릴 수 있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는데, 그래야할 시기에 이 책이 나를 다독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이 책의 잘못이 아니다.


 

 


 

 

시간은, 추억은, 세월은 분명 연속적인 것이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시간의, 세월의 부분을 건너뛰며 살고 있지. 우리는 선 위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 위에 우두커니 서 있어.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점으로 훌쩍 건너가지.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그랬던 것 같아.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그랬어. p156 나는 이 책을 읽고도, 아직도 내 인생에게 잘 지내느냐는 내 마음이 고단함을 느낄 그 질문을 던질 자신이 아직까지도 없다. 그러고보니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이 많지 않았음을 느낀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요, 내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는 더욱이 아니다. 나는 내 자신보다 주위 사람들의 발걸음에 발맞추어 걷고 있었던 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고 - 미안하다고. 책의 사진들을 감상하고, 저자의 인생 수첩과 다를 바 없는 이 책을 읽고 책의 많은 구절을 깊게 음미하며 곱씹을 수 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깨달은 바를, 가만히 앉아 펜을 붙잡고는 끄적거린다. 전년도보다 올해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나의 내면에서 하는 속삭임에 귀를 바짝 갖다대고 듣겠다고. 서평을 타이핑하는 동안 싸늘하게 식어버린 커피는 식도를 통해 이미 뜨겁게 달구어진 내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그 어떤 것을 데일 듯 뜨겁게 만든다. 언젠가는, 지금 물어보지 못하는 그것을 물어볼 날이 오겠지, 잘 지내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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