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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을 살아내다가도 내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때가 참 많음이 불쑥 불청객처럼 나타나 가까스로 견디고 있는 내 하루를 그것으로 인해 모조리 망쳐버릴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노하우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텐데, 아직은 고단한 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마냥 즐겁지만 않은 나에게 그것은 숙제와 같이 나를 힘겹게 만드는 거머리와도 같다. 그런 생각이 더 짙어지기 전에, 감성을 폭포수처럼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감성 에세이를 읽어주어야 한다,며 그것을 찾아헤맸다. 책장에 꽂혀진 책들을 보는데 읽지 않은 책들 중 눈에 띄는 것은 황경신 작가의 「생각이 나서」와 최갑수 작가의 「잘 지내나요, 내 인생」 - 이렇게 두 권을 두 손에 움켜쥐고는 어떤 책을 읽지? 하며 손에서 저울질을 해대다가 최갑수 작가의 책은 이 작품을 제외하고는 꼴랑 두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그것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통로로 친밀감이 형성되어 흘러들어왔는가보다. 아니, 혹은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처럼 내 인생에게 잘 지내느냐고, 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게 나는 어떤 물음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물며 주인인 나에게조차도. 그것은 어떤 대답이 들려오고, 듣게 될 것인지를, 구태여 귀를 막지 않는다하여도 ‘……’ 라는 말줄임표를 이미 알고 있어 지레 겁먹고 눈을 꾹 감고 귀를 두 손으로 막아버리는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을 내가 상상되는 까닭일까. 그런 나에 비해 자신의 인생에 물음표를 던지는 저자를 보고 인생을 참, 괜찮게 살았나보다 - 생각한다. 그는 그 물음표 속에서 느낌표, 혹은 마침표 그것도 아니라면 쉼표라도 찾아내었는지, 아니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개중 어떤 것이 이 책을 집게 만든 연유인지는 모른다. 혹은 둘 모두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의 문장이 내두르는 향취가 궁금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읽고 싶었다,라는 것이 거짓 하나 보태지 않고 읽게 된 까닭일 게다. 그렇게 나는 그 곳에서 셔터를 누른 그의 손가락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는 그 순간까지 저자가 누르는 정지된 세상 속에 초대된다.
병원을 예약해놓고 예약대기실에서 이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책을 읽기엔 아이들의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에이, 읽지 말자 - 라는 생각을 굳히고 그저 책을 뒤집어 본문 중 어떤 한 장을 모조리 발췌해놓은 것, 어떤 글자보다 크고 또렷한 ‘누구나 통과하는 시간, 서른과 마흔 사이’ 가 시야에 가득 찬다. 나에게 이 책의 시작은 그것이었다. 책은 휘리릭, 휘리릭 잘 넘겨진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닐 게다. 시야에 가득 담긴 활자와 문장들을 곱씹는 입과 그것을 담으려는 마음과 얼른 페이지를 넘기려고 안달난 손이 고장난 로봇처럼 따로 노는 것이 감성 에세이라는 장르의 책을 읽는 내 방법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휙휙 넘어가더라 그 말이다. 그의 인생이 고루 느껴지는 문장들에 그의 인생은 뒤로 제쳐놓고 내 인생을 포개어놓아 그와 나의 인생을 격리시켜야 했다. 그렇게 해도 공감할 수 있는 것 - 그것이 바로 감성 에세이가 아니던가. 물론, 낯설지 않게 그와 나의 감정이 바특할 정도로 가까이 치달음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다음 페이지를 넘김과 동시에 거리감이 느껴지게 할 만큼, 아득함의 깊이를 맛보게 하여 감성으로 차올랐던 마음들이 민망해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문장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것은 그와 나의 다른 나이,라는 진부한 까닭때문에 야기된 것이 아니라, 이 책에는 나와 내 인생이 맞닥뜨리게 할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 저자의 이야기로 가득참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 까닭인 것이다. 나는 내 감성을 똑똑, 두드릴 수 있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는데, 그래야할 시기에 이 책이 나를 다독여주지 못했다는 것은 결코 이 책의 잘못이 아니다.
시간은, 추억은, 세월은 분명 연속적인 것이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시간의, 세월의 부분을 건너뛰며 살고 있지. 우리는 선 위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 위에 우두커니 서 있어.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점으로 훌쩍 건너가지.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그랬던 것 같아.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그랬어. p156 나는 이 책을 읽고도, 아직도 내 인생에게 잘 지내느냐는 내 마음이 고단함을 느낄 그 질문을 던질 자신이 아직까지도 없다. 그러고보니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이 많지 않았음을 느낀다.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요, 내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서는 더욱이 아니다. 나는 내 자신보다 주위 사람들의 발걸음에 발맞추어 걷고 있었던 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고 - 미안하다고. 책의 사진들을 감상하고, 저자의 인생 수첩과 다를 바 없는 이 책을 읽고 책의 많은 구절을 깊게 음미하며 곱씹을 수 없었지만, 그와 별개로 깨달은 바를, 가만히 앉아 펜을 붙잡고는 끄적거린다. 전년도보다 올해는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나의 내면에서 하는 속삭임에 귀를 바짝 갖다대고 듣겠다고. 서평을 타이핑하는 동안 싸늘하게 식어버린 커피는 식도를 통해 이미 뜨겁게 달구어진 내 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데 그것은 내 안에서 솟구쳐 오르는 그 어떤 것을 데일 듯 뜨겁게 만든다. 언젠가는, 지금 물어보지 못하는 그것을 물어볼 날이 오겠지, 잘 지내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