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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어진 현자 지셴린이 들려주는 단비 같은 인생의 진리
지셴린 지음, 이선아 옮김 / 멜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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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 명절 친척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른들의 잔소리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남동생과 나는 조부모님, 삼촌과 어렸을 때 함께 살았기에 잔소리에 이골이 난 편이다. 특히나 우리 할머니 잔소리의 포스는 지금까지도 본적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큰 목소리로 상대방이 듣던 말던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무한반복하는 그 소리에 질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복되는 소리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엄마가 그런 할머니의 모습인 거다. 어릴 땐 그러지 않았는데 같은 말을 서너 번은 기본이고, 얼굴을 볼 때마다 심지어 말하고 돌아서서 또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거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때뿐인걸 보니 엄마도 나이를 먹은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랬는데 삼촌이 말씀하시길 삼촌도 3,40대때 까진 할머니의 잔소리가 엄청나게 싫었단다. 그런데 삼촌도 나이를 먹어 보니 어느 순간 잔소리가 늘더란다. 젊었을 땐 기억력도 또렷하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는데 그런 마음도 어느 순간 줄어들고, 노파심만 늘어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또는 잘 기억하고,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같은 말이 반복하는 게 우리에겐 잔소리로 들리는 거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럼 엄마의 잔소리를 올해부턴 열심히 들어야 하나? 하긴 지나고 보니 할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더라만..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인생을 먼저 살아온 노학자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이 인정하는 학자의 인생에 대한 잔소리쯤으로 말하면 실례가 될까.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이야기도 반복된다. 욕심 없이 검소하게 살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삶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이 단순한 인생의 지침이 그를 90세가 넘게 건강한 삶을 유지시켜준 힘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복잡하게 살다 보니 단순한 진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삶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 누를 점하기도 한다.

병원에 검사가 잡혀있어 엄마와 함께 서울행 버스를 타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 대기하던 중 다 읽었는데 중간중간 눈을 들어보면 호흡기를 꼽고 거친 숨을 내쉬는 환자, 다리며 팔에 붕대를 감고 괴로워하는 환자, 의식 없는 환자에게 끝없이 말을 거는 보호자의 외침 등 병원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평소엔 인식되지 않는 삶에 대한 소중함이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보며 깨닫게 되니 이 또한 마음이 편할 수만도 없다.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인생은 무슨 의미일까. 만족을 모르기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삶의 끝에서 선생이 좋아한다는 ‘커다란 격랑 속에서도 기뻐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네.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 더는 걱정하지 마시게’ 란 말이 과연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내 삶도 온전한 나 자신만의 삶이라 할 수 없다. 나와 함께 하는 내 가족의 삶이며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이다. 그렇기에 죽음은 더 두려운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과 미처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남겨두고 가야 하는 길. 하지만 해야 할 일을 다 했기에 미련이 없다는 선생의 글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완성되듯 주목 받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내 길을 묵묵히 가는 것. 눈앞의 기쁨이나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는 것. 선생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뼈있는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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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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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왜 아직 결혼하지 않냐’고 묻는다면(너무 많이 물어봐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아직까지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와 함께 아이를 낳아 키울만한 소양과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결혼해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냐고 다시 묻는다면 글쎄.. 한 생명을 낳아 키우는 일에 신중에 신중을 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를 키우는데 몇 억이 든다는 말에서처럼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한 인격체를 낳아 사회구성원으로 키우는 동안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솔직히 겁난다. 내가 어떤 부모가 될 것이며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말이다.

티비프로그램 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면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레 되새길 수 있다. 성격, 행동에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원인은 대다수 부모들의 잘못 때문이였다. 전문가의 지도에 의해 부모가 행동을 달리하자 몇 주만에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난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란 생각 참 많이 했었다.

이십대 중반쯤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우린 우리 부모님 만난걸 감사해야 한다’는 말에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는 게 그 당시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이가 들어보니 보이더란 말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베풀줄 알테니깐.. 그런 의미에서 난 참 많이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그렇기에 난 이 이야기가 논픽션이 아닐꺼라 생각했다. 책을 읽어갈수록 픽션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의 출판으로 인해 어머니와 소송 중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가슴이 아팠다. 과연 그녀의 어머니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지 아니면 끝까지 아니라고 반박할지 소송의 결과가 궁금하다. 하지만 중요한건 더 이상 이불과 옷을 빼앗기고, 문밖으로 쫓겨나던 클레어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학대와 차별 속에서도 자신이 꿈을 이뤘고, 최초 흑인 여성판사의 자리까지 올랐다.

인간은 추억을 먹으며 살아간다고 하는데 뒤돌아본 그녀의 추억이라곤 내가 봐도 눈물 나는 것들 뿐이다.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원망했을지 미루어 짐작된다. 하지만 그런 추억조차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고,(기꺼이 그녀의 멘토가 되어준 변호사를 비롯해서 말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일 것이다. 자신의 두 아이에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고, 멋진 여성으로 살아갈 그녀의 미래가 행복하길 바란다. 세상에 또 다른 클레어에게 힘이 된다면 이 책의 존재이유는 충분할 것 같다. 그녀도 그걸 바랬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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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마련의 여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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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 제일 고민거리가 ‘집’이였다. 부모님이 특별히 부자가 아니고서야 사회생활 몇 년차의 그들에게 ‘집’은 그야말로 그림의 ‘집’일 뿐이라지만 가질 수 없기에 욕구는 더 크다고 친구는 말했다.

내가 살고있는 우리집(엄밀히 말해 부모님집)은 역사(?)를 자랑한다. 강원도가 고향이신 할아버지께서 선원으로 일하시다 이곳에 정착해 결혼하시고, 낡은 초가집을 양옥으로 작은 아버지와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이 집에서 아버지 형제가 자랐고, 아버지와 엄마가 결혼해 나와 동생이 태어나 30년이 훌쩍 넘었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 때 기본 뻐대만 남겨두고 보수를 해서 현대식으로 탈바꿈하긴 했지만 나는 한번도 이사를 다녀본 적 없는 그야말로 주소와 본적이 상동인 흔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있다. 관공서에 가서 본적과 주소가 상동이라고하면 한번씩 쳐다본다. ^^ 

작년 초 엄마가 편찮으셔서 서울 병원을 다닐때 이모집에서 한동안 지냈었다. 강북(난 서울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강북과 강남의 차이를 모르겠더라. 그저 다리 하나 차인데 뭐가 다르다는건지..)이지만 교통도 편하고, 멀리 한강도 보이는 꽤나 전망 좋은 집이였지만 아파트는 너무나 좁았고(15평쯤 되려나?),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였다. 아파트에 지내 본 적이 없기에 2주정도 머무는데 매일 밤잠을 설쳤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아파트 값이 우리 집의 3배가 넘는다는 말에 뒷골이 땡겼다. 우리집보다 2.5배나 작은 집인데 새삼 서울이 다시 보였다.

남동생이 결혼을 생각하며 여기저기 집 시세를 알아보더니 도무지 답이 안나온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무리를 해서라도 빚을 얻어 내 집 마련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전세를 얻을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 집값은 또 치솟았고, 결혼계획은 미뤄져 버렸다. 열심히 벌어서 과연 집을 살 수 있는 날은 올 것인가? 결혼이 늦고, 출산율이 낮다고 아무리 정책을 세우면 뭐하는가 결혼해서 살 집이 없는데..

내 집 마련의 여왕을 보면서’을 보면서 재밌기 보다는 한숨이 나왔다. 나처럼 재테크를 잘 모르고, 욕심 없는 사람에게 과연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나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려는 부자가 있다는데 희망이 보였다. (부디 그런 분이 소설 속에서만 그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집’에 목메달고 살까? 그렇다면 과연 ‘내 집’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 삶이 행복해질까? 물론 강남의 수많은 빌딩과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를 볼 때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멋진 집을 볼 때마다 ‘한번쯤 저런 집에서 살고싶다’는 생각도 든다.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나 쪽방촌 사람들의 피곤한 삶을 볼 때마다 ‘나는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모든 것이라면 슬플 것 같다.

쏟아지는 재테크 책들, 누구는 얼마를 벌었네 누구는 투자의 달인이네 하며 주목받는 사람들만큼 귀농을 선택하는 사람들, 경쟁에서 스스로 물러나(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내 집 마련의 여왕’은 집을 찾으면서 자신의 삶(유형의 집보단 때론 무형의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이 더 중요할 때가 있으니)의 방향을 찾아 또다른 행복을 완성한다는 의미에서 여왕이 아닐까 생각된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하나만 가지고 있을 땐 그것이 세상 하나뿐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애뜻했는데 두개로 늘어나버리니 그 마음이 덜해 하나만 있을 때 보다 못하더란 구절이 있다. 나 역시 매사 욕심 없이 살도록 노력하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도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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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후안 룰포 외 지음, 김현균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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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이럴까? 처음 단편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열광했었는데 1권 읽는 것도 힘에 부쳤다. 역시나 아직은 무리인가? 단편과 속도 맞추기는 아직도 버겁다. 하지만 그랬던 만큼 많은 작가, 다양한 이야기 (정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줄 몰랐다. 내가 생각했던 단편 분량을 파괴하는 놀라움.. 와우~)를 만날 수 있어 반갑기도 했다. 그래 이건 반갑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아직 기쁘거나 한 마음은 아니니 반갑다고.. 다음에 기뻐하고픈 뭐 그런 심정이다. 

까마귀고기 먹을 내 머리 속을 알기에 한편 읽고 메모하고, 또 한편 읽고 메모하고.. 그렇게 여댓 명을 넘어가자 딱히 쓸 말도 없는데 끄적거리고 있는 게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誤래된 집이라 외풍이 심해 추운데 손가락 말아 메모지랑 볼펜 드는 것도 자꾸만 귀찮아 지고, 눈으로 읽은 시간보다 메모하는 시간이 더 걸리니 나중엔 책 내용을 메모하는 건지 일기를 쓰는 건지 삼천포로 빠져버리질 않나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스페인/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애정이 한바가지(?)는 더 생겨버렸다. 고작 내가 읽는 작가는 마르께스가 유일했고, 들어 본 작가라곤 후안 룰포가 전부였지만 이름도 입에 안 붙고, 어려운 작가들이 좋아졌다. 하하 그럼 된 거 아닌가? 

끄적거린 메모를 살펴보면

안녕, 꼬르데라!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아마존의 눈물이 생각남. 부족의 전통과 문명의 대립. 하지만 언제나 부서지는 약자들의 아픔. 철도와 함께 목가적 전원 마음에 진보가 시작되고, 꼬르데라/삐난도 운명을 거스를 수 없게 된다. 떠나간 자와 남겨진 자 중 과연 누가 더 슬플까? 무엇을 위한 발전이고 개발인지 본질적인 고민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여기서 4대강과 새만금이 떠오른 건 왜일까?
태만의 죄 산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간단명료하게 말해주는 작품. 타의에 의해 기회조차 박탈당한 이의 분노는 살인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꿈꿀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까까머리 이래도 눈물 흘리지 않을꺼냐며 무언의 강요를 하는 듯한 이야기보다 너무나 담담해서 더 눈물나는 이야기가 좋다. 그래서 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제일 좋고, 다큐를 사랑한다. 고작 결핵으로 죽어야하다니..      

중국여제의 죽음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여인이라든가 조각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식상하다. 하지만 이 단편이 쓰였던 시대는 아니였겠지.. 암튼 다른 건 모르겠고, 이상과 현실의 틈이 보인 것 같다.
목잘린 암탉 난 이런 공포물(?) 좋다. 딱 읽는 순간 포우가 생각났는데 역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게 아이를 보면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도 주인의 성격을 닮아가는 것 같으니..) 그러게 왜 그랬냐구 이 사람들아!!!
씨앗으로 가는 여행 첫 부분을 읽는 순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떠오름. 죽음에서 탄생으로 다시 탄생에서 죽음으로.. 데칼코마니 마냥 같은 그림을 찍어 놓은 느낌.
가뭄으로 모든 것이 말라버린 곳. 그 속에 늙은 부부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만 간다. 그러다 어느날 소년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생활엔 활력이 생기지만 어느날 소년은 사라져 버리고 대지엔 비가 내린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 같은데 생각해보면 결국 소년은 우리의 인식 변화를 나타내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결국 삶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으며 그 변화야 말로 환경까지 바꿀 수 있다 뭐 그런 것들. 

영해, 밥 살아갈수록 어른들만 그른 거 없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똑똑해도 살아온 연륜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이 글 역시 내가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 인생 다 비슷하더라 그런 느낌을 풍겨줬다. 그러니 제발 남의 인생에 대해 판단하고, 결론내지 말고, 어른들 말 잘 듣고 살자.
나무 불행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며 살 것인가, 그 현실을 박차고 행복을 찾아갈 것인가? 삶에 결정권 없이 약자로 살아야 했던 역사 속 여성들은 전자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들은 많은 부분 약자의 입장에 속해 있다. 그녀들이 박차고 나올 내일을 기대한다. 과연 쓰러진 고목나무는 어떤 존재로 나타날 것인가?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복수는 나의 힘.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 죽음은 역시 두려운 것인가?
전철수 기차를 우리의 인생에 비유한 듯 했다. 뚜렷한 계획과 목표가 있다고 해도 꼭 그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정답이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일 것이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현상이 한 인간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린 많은 이들의 삶을 보며 알 수 있었다. 그런 것이다..
거대한 날개가 달린 상늙은이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유일하게 접해본 작가 마르께스. 역시나 마술적 사실주의를 대표하듯 요상스러운 이야기. 하지만 천사라고 꼭 흰 옷에 말간 표정을 악마라고 검은 옷에 쇠창살을 들 필요는 없지않나? 그건 우리의 고정관념일 뿐!!! 그래서 마르께스는 특별하다.
검찰관 처음의 생각과 목표를 망각한 체 어느 순간 흔들리다 결국 자신의 결정에 희생당하고 마는 사람.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 이거 씁쓸하구만.. 

여기까지다. 너무 흘려 적어 못 알아본 글자도 있고, 이상한 걸 적어 놔 빼버린 것도 있지만 이만하면 착실하게(?) 읽은 것 같다. 물론 메모를 적으면서 이 이야기가 뭔 이야기였지 싶은 것도 있지만 확실하게 인상적으로 남은 이야기도 몇 있으니 일단 그것으로 만족. 게다가 이야기만큼 다양한 생각도 해봤으니 단편 읽는 맛 조금 더 알게 되어 기쁘다. 다음엔 수없이 도전하다 포기한 보르헤스와도 즐겁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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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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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무척이나 파스타가 땡긴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알리오 올리오’를 중얼거리며 내가 알던 토마토소스에 치즈가 한 가득 얹혀있던 스파게티는 국적불명의 음식이란 사실(하지만 제일 맛있다구요!!)에 놀라기도 했다.

난 어릴적 부터 (그렇다 나의 식탐은 멋모르던 그 시절부터 스물스물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였다) 요리 프로그램이란 프로그램은 섭렵했었다. 도대체 그런게 왜 재밌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 없지만 요리사는 내 선망의 대상이였다. 레시피에 맞춰 담아놓은 양념들이 진열된 투명한 작은 그릇들이 나란히 놓여진 요리사의 자리는 얼마나 정갈하고 멋지던가. 순서대로 재료를 다듬고 (시간절약을 위해서겠지만 씻지않고, 하얀 헹주로 도마를 닦는 모습조차도 멋져보였다. 엄마는 지저분해 보인다고 하셨지만..)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보글보글 끓이고.. 드디어 완성된 음식이 화면에 한 가득 잡혔을 때의 그 희열. 그건 마치 마술과도 같았다.

이 정도 관심이였다면 지금쯤 요리사가 되었음이 당연할터지만 어디 인생이 그리 맘대로 되던가? 내가 그럴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난 미식가가 아니라 대식가쪽에 가깝고, 극악의 편식가다. 어릴 적 할머니가 ‘저 가시나는 입이 저리 짧고, 까다로와 시집가서 남편 엄청 고생시키지 싶다..’는 소리는 과장이 아니라는 말씀. 그 정도로 난 편식이 심하다. 일례로 학교 땐 친구들이 사온 도시락 반찬(집집마다 음식 맛은 천지차이 아니던가? 그게 비위에 안 맞은 거였다.)을 못 먹어 항상 반찬을 넘칠 정도로 담아 다녔었다. 물론 지금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예민(?)하다 보니 음식에 조금 다른 재료가 들어가도 귀신같이 알아 내서 골라 내니 욕도 많이 먹었다. 편식이 내 혀를 예민하게 만든 건지, 예민해서 편식이 심해진 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 먹는 선에선 요리하길 좋아하고, 즐기며 만들어 먹는 게 제일 맛있고, 가끔 우울할 땐 혼자 요리사 마냥 재료랑 양념들 다 꺼내놓고, 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엔 블로그를 들락거리다 빵 만들기에 재미를 붙여(내가 한창 열을 올렸을 때 마침 삼순이도 시작해서 베이킹이 더 즐겁기도 했었다) 오븐이며 빵틀, 빵칼에 짤주머니 등 죄다 구입해서 친구 서른번째 생일 케익도 만들어 선물하고, 사무실에 파운드 케익도 만들어가고 부산을 떨었었다. 물론 고질병인 어깨 결림으로 인해 지금은 잠정 휴업 상태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나에게 이번엔 파스타다!!

파스타를 처음 먹어본 게 언제였더라? 스물 넷 쯤? 뭐.. 치킨 버거도 열 여섯에 처음 먹은 촌놈이니 놀랍지도 않다. 말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음식에 두려움이 크다고 말이다. 맛있다는 친구의 추천에 ‘이상하면 너 다 먹어야 된다’며 으름장을 놓고 처음 마주했던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토마토를 좋아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맛있었고, 그 후로 스파게티는 완소 음식으로 등극 한동안 열심히 먹으러 다녔었다. 그러다 어느날 친구가 (이 친구 직업이 영양사인데다 음식에 관심도 많고, 잘 만들어서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는다) 집에서 스파게티 만들어 봤는데 어렵지도 않고, 맛있다며 만들어 보라는 거다. 귀가 쫑긋~

얼마 후 친구가 가르쳐준 대로 스파게티 면을 삶고, 올리브유에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다음 토마토 소스를 넣고 어느 정도 뜨거워지면 좋아하는 재료 (양파, 피망, 양송이버섯 등)를 취향 껏 넣어 끓인 다음 삶아 놓은 면을 넣고 비비면 끝. 정말 라면 만큼 간단한 요리였다. 물론 난 여기에 좋아하는 치즈를 뿌린 후 오븐에 잠깐 돌린 후 먹는 걸 좋아하는데 왠만한 집 스파게티보다 맛있다. 그 후로 스파게티에 반해 하루종일 먹기도 하고, 양조절을 못했을 땐 싫다는 식구들에게 강제로 먹으라며 들이밀기도 했다. 그러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밀가루 음식을 줄이자는 마음에 스파게티를 안 먹은지 1년이 넘었는데 드라마와 책으로 인해 다시 발동이 걸리려고 한다.

이쯤 책 이야기로 돌아가 읽으면서 느낀 건 요리사님 글 참 잘 쓰는 것 같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파스타에 대해 알아야 할 상식 톡톡 집어주시고, 맛있는 사진에 레시피도 있으니 금상첨화.

책 읽은 후 알게 된 파스타(스파게티는 면의 한 종류니 파스타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에 관한 것들은..

첫째 면을 삶을 때 소금을 적당히 넣어주면 될 뿐 기름은 넣을 필요가 없다는 것. 익히 알고있던 상식이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비싼 올리브유 괜히 넣었다.

둘째 이탈리아에선 우리나라처럼 소스가 가득하지 않다고 한다. 사실 소스 맛에 먹는 거나 마찬가진데 이탈리아에선 면에 묻을 만큼의 소스를 사용 한다고 한다. 그래서 소스 간이 짜다는데 안 먹어보니 알 수가 있나..

셋째 피클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한다. 집에서 스파게티나 피자 먹을 때 일부러 피클 사와서 함께 먹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쩌라는 말씀? 이탈리아 어느 식당엔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노 피클’이라고 벽에 붙여 놨다는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드라마에서 최세프(이선균분)가 왜 피클을 해고시켰는지 이유를 알고선 앞으로 멀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입맛이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마지막으로 이건 단순히 맛이 궁금하기에 당장 만들어 먹어보고 싶은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사실 이런 파스타가 있는 줄 몰랐다. 허나 드라마에서 집중 조명을 받았기에 흥미가 생겼고, 재료도 간단해서 만들어보고 싶게 만든다. 올리브 오일, 마늘, 스파게티 면만 있음 주재료 준비 끝. 거기에 추가하고 싶다면 피자 시켜 먹고 남은 파마산 치즈가루, 좋아하는 양송이 버섯, 또.. 왠지 크리미도 넣음 맛있을 것 같으니 내일이라도 당장 만들어 보면 되겠다. 기름진 음식 싫어하는데 도대체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하다. 만약 ‘알리오 올리오’가 성공한다면 봉골레 스파게티도 도전해 보고, 생소하지만 스파게티면이 아닌 다른 면 (펜네나 푸실리)으로도 만들어 보고 싶다.

우리가 밥을 먹듯 라면을 먹듯 이탈리아에선 평범한 음식인 파스타. 종류도 많고, 요리법도 다양하다니 우리나라에서 김치만큼 중요한 음식이기도 할 파스타. 음식이란 단순한 먹거리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있으니 머지않아 많은 나라에서 우리의 음식이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식의 세계화를 바라며 책읽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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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1-2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이란 말은 노란색 표지와 어울리나 봐요. 보통의 존재(이석원 저)도 노란색 표지예요. 이 책 사면 파스타는 정복할 수 있나요? 아주아주 느끼하게 크림스파게티 만들어 먹자고, 딸내미가 언제부터 얘기하는데 그냥 사먹으러 가면 안 될까, 하고 있거든요. 네, 저 계모보다 더해요.ㅋㅋ

또다른세상 2010-01-3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의 존재' 너무 읽고싶은데 아직 이랍니다. 전 노란색 안 좋아하는데 요즘 급 좋아지네요. 아마 책때문이겠죠? 파스타 정복은 아니라도 친해질 수는 있지 않을까요? ㅎㅎ (살찌는 소리 들립니다) 따님이랑 함께 크림 스파게티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아닐까 싶네요. 전 아직 알리오 올리오 먹지 못했네요. 역시 마트엔 절 유혹하는 먹거리가 넘쳐나서 고민이에요. 일단 엄마가 먹고싶단 깨찰빵믹스를 사와서 만들꺼랍니다. 못난 딸 이렇게라도 기쁨을 드리고 싶네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