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래 문학동네 동시집 22
권정생 지음, 김동수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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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까지 예쁜 동시집 한 권에 싣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한 가지 소망을 허락해 주시겠지요.' 권정생 선생이 일본에 있는 그의 그의 형수에게 보낸 편지의 한 귀절이다.죽기 전까지 예쁜 동시집 한 권에 싣고 싶다는 희망, 그렇게 하여 자신이 직접 정말 세상에 단 한 권 밖에 없는 동시집을 만들었다는 권정생 선생의 동시들이 세상 밖으로 드디어 나왔다. 이 책은 <동시 삼베 치마>라는 전작의 98편의 동시들에서 42편을 골라내어 좀더 고어를 현대어로 바꾸어 아이들이며 그외 사람들이 읽는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덩시 삼베 치마>가 엄마겪이라면 새끼 격으로 나오게 된 책이란다. <동시 삼베 치마>를 무척 읽고 싶었는데 기회를 잃어서 몹시 서운하던참에 이런 기회가 생기고 그 기회가 내게 와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받자마자 읽었던 정말 가슴이 따듯해지고 동심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해맑은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권정생 선생은 살아서의 삶 또한 세간에 이야기를 남겼지만 가시고 난 후에도 모두에게 교훈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가셨다.비록 당신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가셨다 하지만 누구보다 값진 '씨앗'을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 하나 심어 놓지 않았을까.누구보다 청빈했던 그의 삶, 그리고 나눔을 누구보다 더 많이 실천하신 삶이 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는데 이 책에서 만나는 동시 속에도 그의 맑고 올곧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고 '평생의 소원'을 간직하며 살았기에 이렇게 값진 동시를 남기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금의 아이들이 읽으면 이해를 못할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지금 시대와는 정말 많이 다른 그런 분위기와 이야기들이 동시 속에 있지만 그 시대를 거쳐왔거나 그 시대를 간접적이든 부모세대들에게 전해 들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세대들에게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킬 이야기들이 가슴을 따듯하게 해 준다.우물... 골목길에 우물이/혼자 있다// 엄마가 퍼 간다/할매가 퍼 간다// 순이가 퍼 간다/돌이가 퍼 간다// 우물은 혼자서/ 물만 만든다// 엄마도 모르게/할매도 모르게// 순이도 모르게/돌이도 모르게// 우물은 밤새도록/물만 만든다// 내가 살던 어릴적 동네에도 동네 가운데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 우물로 동네 사람들이 다 먹고 살았다.아침이면 큰 함지박을 이고 그곳에 가는게 일이었고 그곳에서는 비밀이 없다. 모두가 모여 쌀도 씻고 빨래도 하고 손과 발을 씻기도 하고 머리도 감고 그렇게 때론 동네 놀이터로 동네 사랑방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면서 동네의 역사와 함께 했던 우물, 그러나 동네에 상수도 놓이고 그 우물은 더이상 동네 놀이터도 사랑방과 같은 존재도 될 수 없었고 그저 농경수로 쓰이가 그 소임을 다하고 없어지고 말았다. 추억 속에는 그런 우물이 있다.그래서일까 가슴에 와 닿는 '우물'이란 동시가 반갑다. 따듯하다. 참 정겹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삼베치마... 왕골논 안쪽 집/새댁치마/노랑 곱슬 삼베 치마/새댁이 물동이 이고/너무 바쁘게 바쁘게/가기 때문에/삭삭삭삭 소리가 나요// 찡기네 할매 치마/올 굵은 무삼베 치마/찡기가 업힌 채 오줌을 싸도/금방 말라 버려요/홰나무 그늘에/잠깐 앉았다 일어나면/무릎까지 말려 올라가/바닥 뚫린/ 광주리 같아요// 재밌다. 치마가 말려 올라가는 그것까지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려냈다. 그리고 마지막엔 '바닥이 뚫린 광주리 같아요' 뒤집어 엎어 놓은 광주리,표현이 재밌으면서도 그 시대를 나타내는 말들이 참 좋다. 삼베치마에서 남 모르게 연륜이 느껴진다. 새댁의 치마는 '삭삭삭삭' 이지만 할매의 삼베치마는 손자가 오줌을 싸서 무언가 뻣뻣하여 바닥으로 구멍이 뚫린 광주리 같다는,나이에서 오는 연륜도 느껴지면서 치마가 같는 연륜도 느껴진다.

 

감자떡... 숙이 아빠도 감자떡 먹고 컸고/숙이 엄마도 감자떡 먹고 컸고// 그래서 숙이 엄마랑/숙이 아빠 얼굴이/감자처럼 둥굴둥굴 닮았어요// 숙이랑,석아랑,인구도/감자떡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모두 감자처럼 둥굴둥굴 예뻐요// 강원도를 '감자바위'라고 하는데 그러면 감자를 많이 먹는 강원도 사람들을 그린 것일까.그렇지는 않다. 그때는 쌀밥보다 우리는 '감자나 고구마'를 주식처럼 더 먹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었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감자도 둥글고 우리네 얼굴도 둥굴둥굴,그래서 더 이쁘고 정감이 가는 그런 얼굴이다. 신토불이도 느껴지면서 왠지 모르게 순박하면서 정이 뚝뚝 묻어 날것만 같은 얼굴들이며 동시다.

 

방물장수 할머니... 방물장수 할머니가/엉덩이 빼딱빼닥 오신다// 요롱 달린/사랍짝집 들여다보고/"동백기름 사이소?"/"안 사니덩"//...... 해 질 녁에/동리 어구 길에 선/내 눈이 뗑굴?// 저만치 가시는 할매 등어리에/묵직한 곡식 자루가 얹혀// 빼딱빼딱/가신다// 방물장수 할머니가 빼딱빼닥 오시어서는 이것저것 사라고 동리를 돌아 다니는데 모드가 '안 사니덩' 한다.걱정인 것이다. 허리도 구부정인데 헛걸음 한것은 아닌가 하고 할머니를 어느새 걱정하고 있다.그런데 해 질 녁 할머니를 보니 등에 방물보따리보다 무거움직한 '곡식 자루'가 얹혀 있는 것이다.얼마나 다행인가.무언가 팔았던가 외상을 놓았던 곳에서 값을 받으셨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헛걸음을 안하고 돌아가실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빼딱빼닥 걷는 할머니의 걸음마져 정겹게 다가온다.

 

동시 속에는 정겨운 풍경도 정경운 말들도 많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들이 있는가 하면 풀이를 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따듯하고 읽는 것만으로 행복을 안겨준다. 그가 동화가 아닌 동시로 먼저 세상에 빛을 보았지만 동화나 그외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지만 동시는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그의 이름으로 된 '동시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참 기분 좋은 일인듯 하다. 정겨운 그림들도 좋고 동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따듯해진다. 동시를 다 읽고 손에서 책을 놓으려고 하면 먼 추억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훈훈해진다. 먼 기억속의 동네 친구를 만난다던가 추억의 물건이나 그외 풍경을 만난다던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성에 흠집을 낸다. 그리곤 묻는다.지금 어떠세요. 행복하세요.당신은 그처럼 평생 이루고 싶다는 희망이나 소원을 가지고 있나요? 자신의 평생의 희망이어서일까 동시 속에는 불행보다는 '행복과 희망'이 그리고 따듯함이 넘쳐 나면서 모두가 함께 하는 밝음으로 빛난다. 정말 봄이 찾아와 메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발문에 있는 그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동시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는 어쩌면 모두에게 스스로가 '희망' 이 되고자 했던 이였는지도 모른다. 동시를 다 읽고 발문을 읽다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절박함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을 보았고 노랬했던 권정생, 봄과 같은 희망으로 꽃 피운 동시들이 한동안 오래도록 가슴에 여운을 남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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