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인 29人의 춘천연가, 문학동네 산문집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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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그곳으로 향한 나의 촉수가 곤두선 것은 언제부였을까? 중학시절 국어선생님은 정말 '사운드 오브 뮤직' 에 나오는 마리아처럼 혹은 그녀와 비슷한 외모아 감성을 가진 목소리도 이쁜 여선생님이셨다. 같은 지역에 병원장님 따님이셨던 선생님은 국어책에 나오는 것 외에도 영화나 뮤지컬 그리고 선생님의 추억담을 정말 재밌고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잘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의 입에서 어느날 뜻하지 않게 나온 '호반의 도시 춘천' 과 그에 얽힌 추억 이야기는 뇌리에 깊게 박혔다. 꼭 성인이 되거나 대학생이 되면 경천선을 한번 타봐야 할것만 같은 이야기에 빠져 들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다 여고생이 되었고 중학 국어선생님이 들려 주셨던 이야기속 춘천을 갈 기회가 되었다,수학여행을 여러곳 경우하는 곳 중에 춘천 소양강댐이 있었던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고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니 얼마나 이야기가 많을까. 여고시절에도 국어선생님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추억담 속에서 또 다시 춘천을 만났었고 내가 가지 않았지만 왠지 나도 모르게 그곳을 갔다 온것처럼 괜히 물과 산이 주는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고 '경춘가도' '경춘선' 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어 친구들과 수능이 끝나면 꼭 한번 경춘선을 타보자는등 이야기를 하던 중에 수학여행중에 그곳에 가게 되었다. 경주부터 많은 일들을 꾸미고 구경 다니느라 피곤했던 친구들은 춘천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곯아 떨어져 자고 있었지만 난 그곳을 향하는 설레임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차창밖 풍경은 정말 멋졌다.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는데 그래서였을까 친구들은 더욱 잠에 빠졌다. 나 혼자 '와..와..' 하며 차창밖 풍경을 감탄하듯 바라보게 되었고 소양강호에 내려서도 친구들은 비가 내리기도 하니 별 반응이 없었는데 난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빗속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던지.. 단발머리에 청바지를 입고 하얀 얼굴의 가냘픈듯 하면서도 뭔가 눈빛이 살아있던 내모습은 지금도 사진 속에서 날 반겨주고 있다. 친구들은 버스에 타자고 했지만 난 나무밑에서서 소양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물을 무서워 하던 내게 소양호는 어머니품처럼 따스하게 내게 다가왔었고 그날의 소양호 자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춘천은 스치듯 내게서 멀어져갈즈음 사회생활을 하며 그곳의 위도로 단체여행을 가게 되었다. 지금은 고슴도치섬이 되었다고 하던가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듯 한데 그곳으로 떠나는 단체여행은 여름에 이르어졌다. 사회생활 초년병이었고 내게서는 풋풋함이 묻어나던 이십대의 싱그러움이 돋보이던 때, 친구들과 마냥 즐거움에 그곳으로 향하던 차안에서 또 다시 터진 감탄사, 역시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며 정말 좋아하며 가던 위도. 그곳에서 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의 가게 앞에서 무척 굶주린 듯한 연로하신 촌로 한 분이 우유를 하나 사들고 나와서는 빨대를 우유에 꽂기 위해 우유팩을 여는데 여는 곳을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지금 같으면 얼른 뺏어 들고 빨대를 꽂아 드렸을터인데 여럿이 줄서 있고 그땐 무척 더워 짜증도 나고 한참 묘한 기분에 쌓여 있어서 구경만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한 친구가 나와 할머니의 손에서 빨대와 우유를 뺏어 들고는 우유팩을 열고 빨대를 꽂아 드리며 '맛있게 드세요.' 했던 것이다. 그 말과 충격에 내 더위는 물러간듯 하였고 위도에 도착하여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얼른 나서서 해드리지 못했을까.. 할머니를 구경도 못하고 자라서인지 내게는 조금 낯선 단어이며 존재였던 것인데 그 순간에 모든 것들이 한번에 무너져 내린듯 했다. 물론 위도에서는 정말 재밌고 추억의 순간을 모두 저장해 놓을 사진들까지 고스란히 잘 담아 왔다. 춘천과 위도하면 내겐 그 할머니가 늘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빨대와 우유를 들고 당황해 하던 할머니, 지금은 먼 기억속 시간들이라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 생각을 하면 죄송스럽고 괜히 미안해진다. 베푼다는 것은 큰것이 아니어도 작은 것에 감사한 것인데 그러지 못한 이십대의 내 얼굴을 보는 듯 하여 얼굴이 붉어진다.

이십대의 춘천이 그렇게 지나고 결혼과 함께 춘천을 다시 가게 되었다. 예고도 없이 결혼을 하게 되고 예고도 없이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비행기를 타고 국외로 나갈까 국내 제주도로 갈까 했는데 난 너무 식상한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그땐 제주도를 가던 시절이다. 남편에게 우리만의 여행이니 추억에 남도록 자유여행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미리 전국지도도 한 장 사 두었지만 남편의 친구들이 결혼식 뒷풀이까지 찐득이처럼 따라와 신혼여행은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출발을 해야 했다. 전국지도 한 장 들고 폐백에서 받은 돈을 모두 챙겨 가방에 넣고 남편의 보약 한 상자 차에 실고는 음료수와 먹기리 간단하게 챙겨 뒷자리에 넣고 우린 그냥 달렸다. 그렇게 간 곳이 부산,그리고는 그다음부터는 우리 맘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쉬며 놀며 그렇게 여행을 했다. 사월 벚꽃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어디를 가도 너무 멋진 계절이고 시간이었다. 신혼여행이란 티를 내지 않고 그저 쉬며 놀며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 바닷가를 구경하며 설악산까지 올라게 되었고 설악에서 다시 내륙으로 들어오며 갈만한 곳을 물색하다 어린시절 추억의 그곳 '호반의 도시' 에 들르게 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 어느 시장통에 잠자리를 잡고는 '춘천에 왔으니 역시나 닭갈비..' 하며 닭갈비집에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닭갈비를 둘이서 맛이게 먹었다. 춘천의 닭갈비가 그리 다르진 않았지만 신혼여행중이었고 일주일여 여행중에 도착한 그곳에서의 닭갈비 맛은 정말 좋았다. 시장통의 소란스러움과 함께.어른들은 일주일여 여행했으면 돌아올때가 되지 않았니 하셨지만 가고 싶은 곳이 너무도 많았다. 이십여녀전 이야기이니 얼마나 여행에 굶주렸겠는가.춘천의 닭갈비고 먹었으니 '남이섬' 에도 들려야 한다고 했고 남편은 인근한 곳에서 군생활을 했다며 그곳에도 가봐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하여 '남이섬'에도 가고 그가 군생활을 했다는 근처를 지나기도 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 지나쳤던 춘천의 시장통의 소란스러움과 닭갈비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던 설레임이 생각나고 느껴진다. 언제 한번 딸들을 데리고 가봐야지 하는데 그게 안된다.

딸들이 시간적 여유가 나던 몇 년 전에 강릉여행을 가게 되었다. 봄바람이 무척 사납던 봄날에 그곳에 여행을 갔으니 돌아오는 길은 춘천에 들러볼까 했다. 막내가 좋아하는 '춘천막국수'와 큰딸이 좋아하는 '춘천닭갈비' 를 먹고 가자고 하였는데 어찌하다보니 그곳을 들르지 못하고 다음기회로 미르고 말았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춘천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늘 가보고 싶은 '청평사' 다시 맛보고 싶은 신혼여행시절에 먹었던 '춘천닭갈비' 도 다시 먹어보고 싶은데 기회가,아니 여유를 못 내고 있다.그러다 만난 '춘천,마음으로 찍은 풍경' 을 읽다보니 작가들 또한 나처럼 고향이거나 아니면 제2의 고향이 되었거나 그외 어떤 일로 만난 춘천은 그대로 청춘이고 추억이다. 나 또한 내 청춘 한 켠에 춘천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그들의 글을 통해 살짝 들여다보게 되었다. 춘천의 모든 곳과 아름다움 춘천스러운 것을 모두하지는 못했지만 잠시 지나쳤던 청춘의 순간에 춘천이 자리하고 있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음을 본다. 그시절,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춘천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새롭게 경춘선이 놓이고 춘천가는 길은 빨라 졌는데 그만큼 춘천은 내게서 또는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지 않았나한다. 빨리 가는 길이 좋은게 아니라 모든것을 추억하고 느끼며 천천히 되새김질 하듯 추억을 더듬으며 가는 '비들기호' 같은 느릿함이 춘천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어느 가수의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말처럼 그곳에 가서가 좋은 것이 아닌 그곳으로 가는 동안의 그 설레임이 더 좋은 춘천은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느껴지며 안개와 호수가 감싸고 있는 아름다움이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만 같다. '고향은 나를 괴롭힌게 아니라 내가 고향을 괴롭힌 것 같다. 이제 춘천은 가을 산길에 피어 있는 한 송이 들국화 같다.' '숨 돌릴 새도 없이 세월이 이어졌지만 춘천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전원다방에서 시작해 전원다방에서 끝난다. 지금은 사라진 아스라한 공간, 전원.전원다방 흥망사는 곧 내 청춘의 흥망사였다.' 누군가의 흥망사를 흡입하다니 그 속에 내 청춘의 흥망사 또한 자리하고 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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