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탈 - 개정판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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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꼭 살아서 돌아갈 거야. 군대에 갔다 오면 틀림없이 면 서기 시켜준다고 했거든.' 
스무 살, 한참 꽃다운 나이에 남들은 일찍 장가를 가서 애 둘씩은 두고 있었지만 신길만은 그러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일본군에 징집되어 관동군 고바야기 부대의 일원으로 국경 전투에 임하게 된다. 너무도 가난하여 소작농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그들에게 '면 서기' 라기 허울 좋은 사탕발림은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열쇠처럼 일본군에 징집되어 가는 데 한몫을 한다. '총알을 피해다려나.' '관세음보살을 되뇌어보라.' 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전장에서 늘 되새겨 보지만 고향은 멀기만 하고 죽음은 너무도 가깝게 늘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쟁만 끝나면 배부르게 먹고 가난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던 청사진의 미래가 고향과 함께 점점 멀어져만 간다. 금방 끝나고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했던 전쟁에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포탄의 밥이 되어 죽어 가기도 하고 얼어가는 것도 모르고 동사되기도 하고 그 생지옥과 같은 곳에서 탈출하여 어딘지 모르지만 '그곳' 으로 떠나려고 발버둥치다 총알밥이 되기도 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처량하고 고달픈 일본군으로의 일상에서 살아남는 수보다는 점점 죽어가는 수가 많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만나는 '한국말과 고향같은 사람들' 로 인하여 향수를 달래던 그들은 누가 거둬들여야 하는 불쌍한 민족이란 말인가.


'그들은 이제 한 덩어리로 뭉친 일본군이 아니라 하나, 하나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이었다.'
전세가 역전되어 일본군이 아닌 소련군이 우세하여 그들은 어쩌다 보니 소련군이 되어 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선택으로 국적을 달리 하게 된 그들은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소련군을 택했지만 그들의 의사가 어디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이든 소련군이든 늘 배고픔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전장에서 힘든 일을 소화해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 그대로 고향에 돌아간다면 면 서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느 날, 소련군이었던 그들은 다시 독일군이 된다. 더 나은 현실을 택하기 위하여 자신의 국적이 중요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고향은 점점 멀어져 가고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좀더 자신의 배를 채울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 해야만 하는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삶 속에서 그들이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어느사이 '2차대전' 의 속에 우뚝 서 있다. 

'그들의 국적은 어디이고 누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인가?'
노르망디의 해변에서 힘든 일을 하며 고향을 꿈 꾸던 그들은 미군포로가 되었지만 자신의 국적을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 미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곳이고 고향이 어디쯤일지 모르면서 미국으로 향했던 그들이 마지막 발버둥처럼 자신의 국적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국제포로' 가 된 신세. 좀더 그들이 무능하지 않아 그곳에서 탈출을 했더라면 고향 근처는 아니어도 고향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그들의 또 다른 삶은 일구었다면 비참하지 않았을 터인데 마지막 처참하게 자신들이 선택하지 죽음에 이르러야 했던 그들의 질곡의 삶, 기구한 삶이 한국전쟁 60년을 맞이 하여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 이 남자는 일본군으로 징집되었다. 1939년 만주 국경 분쟁 당시 소련군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편입되었다. 그는 다시 독일군 포로가 되어 대서양 방어선을 건설하는데 강제 투입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로 붙잡혔을 당시 아무도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국인으로 밝혀졌으며, 미 정보부대에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 소설은 '노르망디 조선인(한국인)' 이라는 한장의 사진에서 출발을 했다. 일본군으로 징집되었지만 소련군으로 독일군으로 또 다시 미군의 포로가 되어 세계사의 한복판에 내던져졌지만 강대국들의 배타적인 자국주의에 인간이기 보다는 물건으로 취급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우리의 지난날의 질곡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하다. 전장에서의 생생함이 사실대로 묘사되고 신길만이 고향과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자꾸만 멀어져 가는 꿈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비참함을 극대화 시켜준 듯 하다. 비단 작품속 인물이 한 둘은 아닐터 지금도 이승을 떠돌고 있는 원한의 영혼들의 들어나지 않은 '진실' 은 무척이나 많을 듯 하다. 역사 속에 감추어진 진실이 밝혀지기도 해야지만 잘못을 저지른자 들은 사과를 해야한다. 자신들의 잘못을 언제까지 정정당당하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역사 앞에서 옳고 그름은 후세를 위해서도 인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빼앗아 간것은 돌려줘야 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보상' 을 역사의 저울추가 기울지 않게 지불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의 묘기중에 얼굴이 바뀌는 신통한 묘기가 생각난 것은 무엇 때문일지. 소설속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사실' 이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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