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그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내 가슴은 떨리고 있었다.로버트 카파 본명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이지만 사진을 팔아 돈을 벌기 위하여 '로버트 카파'라는 가공의 미국인 사진가 행세를 하며 전장을 누비며 찍은 사진들을 언론사에 비싸게 판매를 한다. 헝가리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에서 추방되어 베를린으로 건너가 사진 통신사 보조원으로 일하던 중 재능을 인정받아 자잘한 취재를 맡기 시작한다. 그러다 12월 러시아 망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강연을 취재하여 찍은 사진들로 정식 사진가로 인정을 받는다.
 



삶과 죽음의 확률이 반반이라면 나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길을 택하겠다 -로버트 카파 1913-1954
 
자기희생과 위험을 무릅쓴 취재정신을 일컬어 카피이즘이라고 한다.전장에서 삶과 죽음을 오가며 전쟁의 참담함과 삶과 죽음을 리얼하게 전해준 카파,그는 그의 사진들속의 한 장면처럼 그의 즉음 또한 인도차이나전쟁을 취재하러 베트남에 갔다가 전선에서 지뢰를 밟아 폭사하고 만다.한장의 사진처럼 드라마틱했던 그의 삶을 살짝 옅보고 싶어 손에 쥐게 된 이 책은 처음부터 전율이 느껴진다.전장의 적나라한 사진들과 글이라 그런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필름들로 가득 채운 가방을 들고 런던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나 자신과 사진기자라는 내 직업에 회의가 들었다.장의사나 해야 할 일을 내가 한 것 같아 역겨운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장례에 관계된 것이라면,이제부터 나는 장의사가 아니라 문상객 쪽에 서리라고 굳게 다짐한다. -47p
 
스페인내전,중일전쟁,2차대전 그가 누빈 전장에서 느낀 회의,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숨김없이 포착한다는 것에 대한 직업에 대한 역겨움이 그를 범인으로 되돌려 놓을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총알이 빗발치는 찰나에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장에 다시 돌아가게 하는 무언가가 그의 사진속에 있다.
 



특종은 운도 아니지만 얼마나 신속하게 전송하느냐에 좌우되는 것이다.또 대부분은 거재된 다음날이면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지났을 즈음 병사들이 오하이오 주의 자기 집에서 이때의 트로이나 사진을 보게 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 108p
 
특종을 잡기 위하여 전장의 맨 앞에 나서고 신속하게 전송하기 위하여 발빠르게 움직였던 그였기에 누구보다도 전장의 솔직함을 일면의 이름으로 세계를 흔들지 않았을까.죽음 오열 분노 폐허 공포, 어느 소년의 죽음앞에서 그냥 오열하며 역사적 순간을 보냈다면 지금 이런 사진을 만날 수 있을까.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성스러운 소년의 죽음을 담아주었기에 그시대를 만나고 있는 것에 감사를 할 따름이다.모든 영혼들에 명복의 빌며...
 


더 높이 올라갈수록 시체와 시체의 간격은 점점 더 좁아졌다.나는 더이상 그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정상을  향해 비틀거리며 올라가면서 나는 바보처럼 혼잣말을 되뇌었다. "캘리포니아의 태양 아래서 흰 구두를 신고 흰 바지를 입고 걸아가고 싶어." 종군기자의 전쟁 노이로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148p




다음날 아침, 군의관과 나는 식사를 함께 했다. 한창 밥을 먹고 있는데 수녀원장의 인솔을 따라 고아들이 열을 지어 교회 뜰 안으로 들어왔다.고아들은 행진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바로 '소년 파시스트의 노래'였다.커피를 앞에 놓고 잠깐 졸음에 빠졌던 군의관이 눈을 번쩍 뜨고는 큰 소리로 통역관을 불렀다. "수녀원장에게 가서 저 따위 짓은 이제 그만두라고 해, 지금 나더러 미국 식량을 먹여가며 미래의 파시트르를 기르란 말이야? 즉시 대열을 풀고 보통 아이들처럼 노는 법을 가르치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고아들 점심은 없다고 분명히 말해." -123p
 

 

 
그는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이자 그의 인생과 사진작업에 있어 그림자와 같은 존재인 '게르다'를 만났지만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사진작가에서 보도사진가로 전환을 한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종군기자로 참가한 그는 106장의 사진을 찍었으나 <라이프>암실직원의 실수로 대부분 소실되고 10장 정도만 남게 되는데 이 사진들은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설명을 달고 <라이프>지에 실렸다 한다.
 



<라이프>의 표지를 장식한 한 장의 사진 ' 어느 인민전선과 병사의 죽음'으로 인하여 카파는 보도사진가로서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다.참호를 뛰쳐 나온 스폐인 인민전선파 측의 한 병사가 날아오는 기관총탄에 맞아 양팔을 벌린채 쓰러지는 장면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지난 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기록사진으로 평가 받지만 너무 사실적으로 드라마틱한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라 연출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전장을 누비며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의 사진들만큼이나 그의 삶도 굴곡진 삶을 살다가 간것 같다. 모국의 언어보다는 사진을 택해 그가 표현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며 전쟁과 평화처럼 전장속에 그가 존재하지만 평화속에는 그가 설 자리가 없었던 듯 하다.사랑하는 여인마져 전장에 빼앗기고 그도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얼마나 질곡의 삶인가. 하지만 그가 남겨준 위대한 유산처럼 그의 이름으로 남겨진 '로버트 카파의 영원한 사진들'은 다시는 우리의 역사에 전장의 상흔을 만들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였다.
 
이 책을 읽은 후에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로버트 카파가 찍은 폐허의 사진속과 똑 같은 장면처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장면속에서 주인공이 살아 나와 폐허가 된 도시속을 절뚝이며 걸어가는 장면은 눈물겨웠다.전쟁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얻기도 한다.하지만 그 속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불쌍한 영혼들은 한장의 사진으로 남겨지지도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린다.생명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 그는 사진으로 그 모든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간것 같다.사진을 좋아하는 내겐 더욱 깊은 의미를 던져준 그의 사진들,책을 덮은 후에도 내 가슴은 떨리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