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너는 모른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같이 보내기 위해 부모님 집으로 내려갔다.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여동생, 남동생... 막내인 남동생까지 벌써 대학생이지만 크리스마스나 연말, 명절에는 우리 모두는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한다. 이번 크리스마스 저녁 식탁 앞에서 '참, 우리만한 가족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거실에 누워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나도 사실 잘 모르는 건 아닐까.
"가끔은, 자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타인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
휴가까지 포함해서 연휴는 4일- 총 3일 하루종일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하루는 동생과 도서관에도 가고,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난 여동생에게 화를 내었지만 그 감정을 입밖으로는 내지 않고, 몸짓, 표정들 속에서 그 감정을 흘리기 시작했다. 결국 온 가족이 어색한 공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내 동생은 아니라고 했지만 난 속상했던 그 감정 -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가족인데 이런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걸까?
방배동 빌라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한 가족- 그들에게 사건이 생긴다. 바로 막내 유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보통 가족이라면 당장 실종신고를 하고 찾아나섰어야할텐데- 아버지는 경찰 대신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어머니는 이에 말 없이 따른다. 이복 형제인 혜성과 은성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이야기를 해보지만 아무런 소득없이 무시당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동생을 찾아 나선다. 도대체 무엇이 이 가족이 이런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한 사람의 내부는 몇개의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을까"
이 책은 평화로운 일요일 한강에서 발견된 시체로부터 시작한다. '나의 달콤한 도시'로 2~30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작가의 추리소설이라니- 끌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점점 읽어내려갈 수록 추리소설의 긴장감은 유지되지만, 사건과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는다.
돈을 잘 벌어다주고 완고하지만 아이들에게 적당한 관심을 보이는 아버지 상호, 남부러울 것 없는 강남 사모님 옥영, 의대생 혜성, 꼬마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지- 그리고 이 가족의 사소한 문제거리인 은성까지. 적당히 문제도 있지만 나름대로 화목한 가정으로 보이는 이 가족의 뒷면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골치거리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골치거리들은 유지의 실종으로 그들의 삶을 죄어오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순간이 꼭 온다. 누구에게나 그래. 공평하게"
'나의 달콤한 도시'가 인기를 끌면서 한 때 칙릿을 쓰는 작가로 인식되어있던 정이현 작가의 단편집을 접하고, '아아, 쉽게, 단순하게 보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나의 생각에 동의해주듯, 작가는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다고, 읽어달라고 외치면서 이 책을 눈앞에 내 놓았다. 단순해보이는 사건으로 한 가족의 실생활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 소설은 흥미와 긴장감을 단단히 붙들어 둔다. 이 이야기가 밝혀지면 유지의 이야기가 밝혀질까- 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명 한명이 숨겨둔 이야기가 유지의 실종만큼이나 무게 있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가족은 어떨까? 또 다른 사람들의 가족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소설처럼 크고 어려운 사실들을 숨기고 있지는 않겠지만 종종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속에서 더 힘들고, 어려워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서로를 가장 잘 알지만 또 가장 모르는 사람들, 바로 가족이 아닐까. 이 책에서는 그러한 가족의 해체와 결합을 통해 우리가 철썩같이 믿고 있는 가족에 의심과 더불어 더 큰 힘을 실어주지 않나 싶다. 비록 나는 모를지 몰라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문이 가득할지라도,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지켜야할 곳은 가족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