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 - 20편의 글, 187의 사진으로 떠나는 우리. 도시. 풍경. 기행
강석경 외 지음, 임재천 사진, 김경범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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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는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진 않다. 좋은 어린 시절을 다 다른 곳에서 보내고, 한참 삶이 힘들어지고, 경쟁적으로 변하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으니-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그리고 뭐랄까- 이 도시와 나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곤 한다.  

 종종 출장을 다니면서 정말 멋진 도시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때론 책에서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걸-' 라는 생각이 드는 도시들도 많이 마주치게 된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인 '서울'을 바로 그 살고 싶은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끔 그려낸 책들을 몇권 읽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썩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역시 추억과 함께한 시간의 문제인 것인 걸까.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 이 책은 우리 나라 곳곳의 도시들을 담아낸 책이다. 여러가지 멋진 사진들과 함께 도시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었다. 그 시작은 바로 내가 어색하는 나의 도시, 서울 이었다.  

소설가 조경란씨와 김연수씨가 그려내는 서울은 내가 알고 있는 서울과는 달랐다. 파리 못지 않은 한적함과 세련됨이 있었고, 도시적 내음을 풍겼다. 그와 동시에 치열한 청춘의 한장면과 그 뒷면에 숨어서 여유자적하는 한 사람의 삶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몰랐지만... 아니 알고 있었지만, 내가 찾아서 즐기지 않았던 서울의 모습을 본 기분이 들었다. 네가 알고 있던 서울은 이렇게나 멋진 곳이라고 책망하는 소리도 조금 들리는듯 하다.  

 인천, 춘천, 보령, 경주, 대구... 우리나라의 수많은 도시들에 대해 작가들은 애정을 듬뿍 담아 이야기를 한다. 같은 도시에 대해서도 제각각 느끼는 바가 다르듯이, 이들이 보는 도시는 마냥  새롭다. 설사 내가 방문해보았던 곳이라 하여도, 그 때 느꼈던 감정과 추억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더 크다.  

많은 사진들과 개성이 뚜렷한 글들로 인해 책의 두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멋진 책이다. 여행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왠지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여행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런 속 깊은 여행을 한 기분이다. 언젠가 나 역시 서울에 대해 좀 더 애정을 갖고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까? 아니, 내가 사랑하는 도시들에 대해 지금 이라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으려나. 문득 마음 속의 추억과 생각이 소용돌이친다. 지금,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풍경은 무엇입니까? 아니, 당신의 도시가 숨겨둔 풍경은 다 찾아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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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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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네가 나를 좋아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를 더 많이 좋아하게 돼서 -1의 여자로 변하게 될 거라는 것을.

나는 항상 사랑이 나를 - 로 바꿔버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 가 되어버리기 전에 미리 그 상황을 쳐내버렸다. 나이가 들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연애, 결혼 이런 주제들이 한번쯤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그다지 경험이 많지도 않고, 일이나 피곤함을 핑계로 이런 주제들로부터 갈수록 멀리 떨어져 나오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사랑도, 연애도 모두 정말 정성이고 노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대학 초년생 때 연애 역시 공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 관련된 책자들을 열심히 뒤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도 많았고, 제법 인간 관계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최근 조금 웃기지만, 나는 다시 연애에 관한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 책이나 막 읽지는 않고 나름 평도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들로, 그리고 유명한 저자들 책 위주로 찾아 읽어봐야지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최근 읽었던 소설, '서른다섯, 사랑' 이후로 실제 사랑'법'에 대한 책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소설이다. 어떻게 어떻게 사랑하고, 네가 사랑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닌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평범하게 소개로 만나 어떻게 싸우고, 헤어지고-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이야기를 중간 중간 편지 형식의 짧막한 글과 함께 담아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사랑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긴 기우나 보다. 이 균형을 흔들흔들 잘 맞추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

이 책은 엔딩은 사실 나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읽다보면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나는 다른 엔딩을 생각했었는데, 생각지 않았던 엔딩이라 오히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조금 더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라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소설인만큼 그만큼 현실과 다른 점이 있었겠지만, 왠지 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깊이 깊이 공감가는 그런 이야기였다.

방송작가여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듯, 물 흐르듯, 책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왠지 내 마음과 태도를 드러내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지쳐도 좋으니...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좋겠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덜 사랑하는 사람이 무심코 흘려버리는 것까지 뒤에서 다 주워서 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무겁고 힘든 거야. 지치지 말고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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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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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딴 봄양배추는 아무것도 안 찍고 생식을 해도 굉장히 맛이 좋다. 게다가 들기름 또는 올리브유와 소금을 조금 뿌리면 입에 넣는 촉감도 좋고 단맛도 더 나는게 참을 수 없이 맛있어진다.'

최근들어 멜라민 파동이니, 광우병이니 정말 그 어떤 음식도 마음 놓고 먹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과자까지 그 모양이니- 밖에서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정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요?

이럴 때 일수록 떠오르는 음식들은 막 딴 감, 갓 퍼올린 된장으로 보글보글 끓여낸 찌개, 잘 쳐낸 떡, 봄이면 등장하는 향긋한 산나물들과 같은 자연에서 자라고 난 음식들입니다. 아무리 맛있고 화려한 음식이 나와도 막상 그립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떠올려보면 옛날 어렸을 적 먹었을 법한 소박한 음식들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세계 3대 별미라고 해도 푸아그라, 캐비아 처럼 이름마저 왠지 어색하고 생소한 음식보다는 매콤하게 무쳐낸 겉절이, 약간 기름 낀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넣은 김치찌개 이런 음식이 더 입맛을 자극하고 군침돌게 합니다. 

이런 생각은 세계 어디서나 만국 공통인가 봅니다. 일본 작가가 그린 리틀 포레스트란 소박한 이름이 붙은 이 책은 표지부터 입맛을 다시게 합니다. 시골 소녀가 탐스럽게 익은 감을 벗겨먹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시디신 산수유 열매로 만든 쨈, 도토리와 코코아를 섞어 만든 누텔라, 다양한 소를 얹어 먹는 떡들, 다소 생소한 새우떡, 생강떡 그리고 달큰한 밤조림. 모두 자연의 재료를 사용한 음식들입니다. 이 책은 각각의 음식과 그 만드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먹어본 음식이 있을 법도 한데, 하나같이 처음 들어본 음식입니다. 굳이 억지를 부리자면 밤조림 정도 일까요. 각각의 음식에는 친구, 가족, 연인에 대한 이야기도 소소히 곁들여집니다. 엄마가 말하던 누텔라와 우스터는 실제 소스와는 사뭇 다른 소스였고, 산수유 잼은 떠나간 연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렇듯, 음식은 역시 과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데 효과적입니다. 단순히 음식 맛을 우리는 기억하는게 아니라 누구랑 언제 어디서 먹었는지 역시 음식을 기억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니깐요. 그저 평범한 죽 한그릇도 형제 자매와 아옹다옹 다투면서 먹었을 때 그 맛은 배가 됩니다. 오히려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도 불편한 자리라면 체하기도 하죠. 

최근에 부모님께서 작은 텃밭을 하나 시작하셨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닐지 몰라도 올 여름부터 고추, 토마토, 가지 그리고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라가는 토란까지 다양한 채소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올 여름이 생각났습니다. 그저 물에 씻어 먹어도 상큼함이 입안 가득 퍼지던 그 여름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런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요? 앞으로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은 이런 기억을 하나라도 갖을 수 있을까 살짝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가 들려주듯, 이런 식으로 추억을 들려줄수라도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P.S. 이 책을 읽으면서 몇달 전에 읽은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만찬'이 떠올랐습니다. 글로만으로도 이 책 못지 않게 생생하게 음식의 식감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나라의 멋진 먹거리들이 잔뜩 담겨져 있습니다. 이 책과 꼭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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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몽키
데이비드 블레딘 지음, 조동섭 옮김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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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야근에 끔찍한 상사에 어마어마한 일들에 깔려서 지냈다. 워낙 힘든 부서에 있어서 어디로 옮기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옮기자마자 업무 폭탄을 맞아, 정신을 차릴 틈새도 없었다. 덕분에 그나마 하나 있는 취미인 독서도 못하고, 활동하던 동호회 마저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눈을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러던 와중에도 조금씩 조금씩 평소와는 달리 며칠에 걸쳐 읽은 소설이 바로 '월스트리트 몽키'다. 솔직히 시간만 더 있었으면 하루에라도 뚝딱 읽어버렸을텐데, 말 그대로 아침 통근 지하철안 그리고 자기 직전 20분 정도가 독서의 전부였으니- 그래도 부족한 잠에 눈을 비비면서도 조금씩 읽었던 이 책, 정말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힘들어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즐겨 읽을 법한 책, 동경하는 직장 역시 크게 다를 바 없구나. 그러면서 은근 슬쩍 적절한 농담과 비유에 위안을 얻고 웃음을 지을 수 있던 책이었다. 

투자금융사라, 그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병 훈련소 같은 곳이야. 이 일을 한 뒤에 정시에 출퇴근하는 평범한 회사를 다닌다고 상상해봐. 식은 죽 먹기지. 그치? 

거기다가 투자금융사!! 한 때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장. 그러나 요즘같은 금융불안시대에 순식간에 무너져내리고 있는 회사들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다들 천재인듯 싶었는데 저렇게 한순간에 회사가 사라져버리다니...라는 궁금증까지 더해져 무척 즐겁게 읽어내려갈 수 있던 책이었다. 

회사생활은 누구나 비슷한가보다. 자기만 10잔의 커피를 마시고, 짜증나는 상사를 상대하며, 말도 안되는 업무 명령에 따르는 건 아닌가보다. 주인공 말처럼, 회사는 어떻게든 돌아가고, 너무 바빠서 아무생각도 없을 때보다 오히려 한가해져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고민하게 될때,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모든 내용들이 작가의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아주 말을 잘하는 옆 동료와 이야기하는 기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수다 한판.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까지 여전히 빡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자리를 뜰 여유조차 없고, 화장실도 급히 다녀와야하고, 잠을 못자서인지, 소화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이 책을 읽어내려가며 주인공이 나와 같은 생각과 결단을 내려주길 마음속으로 바라고 있었나보다. 의외로 전혀 생각지못한 그의 결정에 왠지 아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 역시 옳은 결정이겠지. 아니, 그의 결정이 옳길 바란다. 나 역시 언젠가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기에, 그리고 그 결정이 옳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금의 정신없는 상황이 끝나기까지는 아직 2~3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래도 바쁜 틈 속에 읽은 이 책덕에 조금은 참고 견디는데 힘이 될 것 같다. 일단 바쁜 것만 끝내놓자- 내 옆 사람도 나와 그닥 다르지 않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옳은 결정을 내릴 훌륭한 사람들일 것이다. 아.마.도...

어쨌든 회전문을 밀고 나가서 햇살 아래로 걸음을 내디디자 정말이지 다른 일에는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나는 스물여섯살이고, 아직 썩지 않았으며, 세상은 이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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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스! 그리스
박은경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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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군가 내게 그리스 이야기를 했다면 그리스 신화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또...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게 그리스는 파란 바다와 하얀 건물들- 눈부신 태양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CF라던지, 영화라던지 그리스에 대한 이미지를 기억할 기회는 많았는데,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책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진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탓일까. 무엇을 하고 있던, 파란 바다가 눈 앞을 아른 거린다.
 

여기선 그저 자연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배려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람은 머리를 매만져 주었고, 태양은 등과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마냥 아름답고 따뜻할 것 같은 곳. 서서 햇빛을 받기만해도 행복해질 것 같은 장소. 이 책을 통해 본 그리스는 그러한 장소처럼 보였다. 작가는 오랜 시간동안 그리스를 천천히 둘러본다. 이름이 익숙한 산토리니, 크레타, 다소 생소한 미코노스섬까지. 하나하나의 섬을 둘러보고, 느끼고, 빠져들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곳은 Atlantis 서점! 정직하고 깔끔한 명패와 헌 책과 새 책이 어우러진 이 서점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파란 바다와 하얀 건물들 사이사이 길을 마냥 걸어보고 싶었고, 생소한 그리스 음식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첫 만남부터 아름다운 곳이긴 했지만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버리면 또한 더없이 훌륭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마음을 놓으면 열심히 다닐 때보다 더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돌아가서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어느새 조금씩 ‘용기’가 자라나고 있다.
 
요즘 들어 매일매일이 바쁘게 지나간다. 사실 특별히 하는 건 없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불안함에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고민하는 시간에 원하는 책을 한장 더 읽을 수도, 쓰고 싶은 글을 쓸수도, 하고 싶은 산책을 할 수도 있는데- 마음을 조급하게 몰아치는 바람에 정작 해야할 일들을 못하고 불안감만 커져가는 생활의 반복이 되고 있었다. 그런 생활 가운데 틈틈이 읽은 이 책은 바쁘다고 종종 걸음 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나 자신보다 명확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강박관념에 휩싸여 살고 있었으니...

여행도 그런 것 같다. 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지겨워서만은 아니다. 별반 다를 바 없는 타인의 삶이 더 좋아 보여서도 아니다. 가끔 다른 세상을 맛보고 앎으로 인해 여기, 현재,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래서 보다 소중히 여기고, 이해하고, 다시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스에 가야겠다고. 가서 햇볕을 쬐고, 씨에스타를 즐기며 쉬다 와야겠다고- 사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여유있게 즐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독특하게 여긴 점 혹은 더 좋았던 점 중 한가지는 바로, 작가가 철저하게 여행자로서의 한계와 차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매력을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자신이 여행자이기에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있었다. 그리스에 정착한 친구를 단순히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에게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 역시 단순히 그리스에 대한 찬사보다 훨씬 그리스를 현실적으로 와닿게 했다.

조금은 느리게 사는 것. 그 과정을 즐기면서 사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느리지만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길의 끝에서 언젠가는 모두들 만나게 될 테니까. 삶도, 여행도, 사랑도, 마음을 주고받는 그 모든 것들이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말이다.
 
무척 좋은 책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책은 며칠에 걸쳐 천천히,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일상이 바빠서였을까- 아니면 어느덧 작가의 생각에 물들어서였을까- 한꺼번에 다 읽지도 않고, 다른 책에 한눈도 팔면서, 정말 마음이 끌릴 때만 이 책을 읽었다. 결국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읽고난 후 내 마음 속에 그리스는 그 어느나라보다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들던 그리스는 다른 나라로 바뀔지도 모르고, 그 시기가 한정없이 뒤로 미뤄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름처럼 더운 올 가을을 시작하면서 내가 잘 모르던 멋진 나라를 한 곳 마음에 품게 되어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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