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스! 그리스
박은경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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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군가 내게 그리스 이야기를 했다면 그리스 신화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또...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게 그리스는 파란 바다와 하얀 건물들- 눈부신 태양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CF라던지, 영화라던지 그리스에 대한 이미지를 기억할 기회는 많았는데,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책에 들어있는 수많은 사진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탓일까. 무엇을 하고 있던, 파란 바다가 눈 앞을 아른 거린다.
 

여기선 그저 자연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배려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람은 머리를 매만져 주었고, 태양은 등과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마냥 아름답고 따뜻할 것 같은 곳. 서서 햇빛을 받기만해도 행복해질 것 같은 장소. 이 책을 통해 본 그리스는 그러한 장소처럼 보였다. 작가는 오랜 시간동안 그리스를 천천히 둘러본다. 이름이 익숙한 산토리니, 크레타, 다소 생소한 미코노스섬까지. 하나하나의 섬을 둘러보고, 느끼고, 빠져들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곳은 Atlantis 서점! 정직하고 깔끔한 명패와 헌 책과 새 책이 어우러진 이 서점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파란 바다와 하얀 건물들 사이사이 길을 마냥 걸어보고 싶었고, 생소한 그리스 음식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첫 만남부터 아름다운 곳이긴 했지만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어버리면 또한 더없이 훌륭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마음을 놓으면 열심히 다닐 때보다 더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돌아가서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어느새 조금씩 ‘용기’가 자라나고 있다.
 
요즘 들어 매일매일이 바쁘게 지나간다. 사실 특별히 하는 건 없으면서도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불안함에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고민하는 시간에 원하는 책을 한장 더 읽을 수도, 쓰고 싶은 글을 쓸수도, 하고 싶은 산책을 할 수도 있는데- 마음을 조급하게 몰아치는 바람에 정작 해야할 일들을 못하고 불안감만 커져가는 생활의 반복이 되고 있었다. 그런 생활 가운데 틈틈이 읽은 이 책은 바쁘다고 종종 걸음 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나 자신보다 명확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강박관념에 휩싸여 살고 있었으니...

여행도 그런 것 같다. 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지겨워서만은 아니다. 별반 다를 바 없는 타인의 삶이 더 좋아 보여서도 아니다. 가끔 다른 세상을 맛보고 앎으로 인해 여기, 현재,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래서 보다 소중히 여기고, 이해하고, 다시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스에 가야겠다고. 가서 햇볕을 쬐고, 씨에스타를 즐기며 쉬다 와야겠다고- 사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여유있게 즐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독특하게 여긴 점 혹은 더 좋았던 점 중 한가지는 바로, 작가가 철저하게 여행자로서의 한계와 차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매력을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자신이 여행자이기에 느끼는 감정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있었다. 그리스에 정착한 친구를 단순히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에게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 역시 단순히 그리스에 대한 찬사보다 훨씬 그리스를 현실적으로 와닿게 했다.

조금은 느리게 사는 것. 그 과정을 즐기면서 사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것이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느리지만 그렇게 가다 보면 결국 길의 끝에서 언젠가는 모두들 만나게 될 테니까. 삶도, 여행도, 사랑도, 마음을 주고받는 그 모든 것들이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말이다.
 
무척 좋은 책이라 생각하면서도 이 책은 며칠에 걸쳐 천천히,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일상이 바빠서였을까- 아니면 어느덧 작가의 생각에 물들어서였을까- 한꺼번에 다 읽지도 않고, 다른 책에 한눈도 팔면서, 정말 마음이 끌릴 때만 이 책을 읽었다. 결국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읽고난 후 내 마음 속에 그리스는 그 어느나라보다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내내 떠들던 그리스는 다른 나라로 바뀔지도 모르고, 그 시기가 한정없이 뒤로 미뤄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여름처럼 더운 올 가을을 시작하면서 내가 잘 모르던 멋진 나라를 한 곳 마음에 품게 되어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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