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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선 멘토 아버지
박성희 지음 / 학지사 / 2014년 1월
평점 :
시대를 넘어선 멘토, 아버지
어떻게 사는 게 아버지답게 사는 걸까? 라며 저자는 화두를 던진다. 나는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져 보았다. 우선 내 아버지가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냥 아버지는 과묵한 분이셨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그때부터 난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 하셨다. 그런데, 지금 9살이 된 우리 아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나는 뭔가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그리고 묻고 싶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냐고…
하나님도 아바 아버지라 불러 주길 원하신다. 아바란 우리말로 아빠이다. 발음도 매우 비슷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여전히 아빠라고 불러 주길
나는 희망한다. 물론 존경받는 아버지로 살고 싶지만 그렇다고 너무 딱딱하고 엄격한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진 않다. 그렇다. 나 또한 내가 어떤 아버지가 될지 조언해
주고 자극도 주면서, 용기와 힘이 되어 줄 멘토가 필요하다.
역사 속에서 어떤 아버지가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중학교때 읽었지만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 필립 체스터필드의 <아들아, 너는
이렇게 살아라>가 생각이 나긴 하지만 다른 나라의 거리감이 물씬 나는 그런 분이 아닌 우리 조상
중 한분이 내게 멘토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상담심리학 전문교수인 박성희 저자의 글을 통해서 그런 우리 조상님들을 찾아 보게 되었다. 우선 그분들의 이름을 보면, 이율곡의 아버지 이원수,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백범
김구, 이순신, 황희, 연암
박지원, 백사 이항복, 토정 이지함 선생님들 모두 9분이다.
이 분들은 각자 개성이 있으셨다. 이율곡의 아버지 이원수는 태교를
도울 정도로 아내 신사임당을 끔찍히 아꼈다. 퇴계 이황은 중도 정신에 따라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족도
바로 선다는 한결같은 분이셨다. 다산 정약용은 자신이 모범이 되어야 자식들도 절로 따른다는 마음으로
귀향살이에도 자녀들의 학문정진을 편지로 독려 하였다. 그의 500여편
이상의 글들이 대부분 이 귀향살이 시절 출간되었고 두 아들들이 이 책을 탈고하거나 선생님 사후에 후손들과 학생들에게 전파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한결같이 나라사랑의 충정으로 독립운동에만 몰두하였다. 그런
모습이 자녀의 마음속에 그대로 새겨졌다. 물론 가정을 소홀히 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그의 난중일기 문체와 같이 매사 솔직하고 감정에 충실하여 가슴으로 자녀들을 대했다. 아들이 죽었을 때 그가 취한 행동을 보면 오늘 날의 그 어떤 부모보다 살가웠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황희 정승. 현대적인 멘토링의 시초라 할만한
연암 박지원 선생님. 진심으로 친구를 대하고, 매사 도리를
지키고, 항상 공부하며 평생 웃음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오성과
한음의 오성 이항복은 유머감각과 풍류가 뛰어나 오늘 날로 말해서 오락정신이 빛나는 선비였다. 잘 노는
것이 백약이란 남다른 지론을 가졌다. 마지막은 토정비결의 이지함 선생으로 남다른 창의력 대가였다. 역발상과 비유법, 실행가능한 대안제시 등, 관찰력, 분석력, 결합력까지
그의 토정비결 속에 그의 모든 창의성이 가득 담겨 있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특징의 9명 멘토 중에 단 2명을 나의 멘토로 선정했다.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다. 우선 이황 선생님은 약간 지능이 떨어졌던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그 사람의 마음이 다칠까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트러블이 있는 사람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린 진정한 중도주의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번은
그의 아내가 제사상에 올린 배가 떨어졌는데 몰래 주어 치마 속에 숨겼다고 한다. 그걸 지켜보았던 큰
형수가 나무라면서 따지려던 때에 선생께서는 아내의 잘못을 추후에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조상님께서도 형수님께서 넓은 아량을 베푸신다면 기뻐하실
것이라는 참으로 지혜롭게 처신했다는 일화를 보게 되었다. 그 후로 그 형수는 아내를 무시하거나 나무란
적이 없다고 한다. 또 한번은 도포가 헤져 아내에게 바느질을 부탁했더니 흰 도포에 붉은 천을 덧대어
기웠다고 한다. 그때도 선생은 결코 아내에게 역정내지 않았고 그 도포를 그대로 입고 잔칫집에 가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비웃기도 했지만 그의 아내 사랑과 지혜로운 언변으로 매번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님은 한결 같이 학문에 정진한 그 자세가 놀랍다. 단순히
그저 책만 보고 많은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공부를 통해 항상 새로운 것을 깨치려 노력했고 그렇게 공부하면서
틈틈히 자신만의 학습일지나 새로운 교재 저술활동을 겸해서 했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의 학습동기 유발을
위해 언제나 본이 되려 노력하고 실제로 그가 남기 많은 글들이 오늘날에도 인문학과 기술 교재로 사용되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다.
이렇게 멋진 조상님들의 모습과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나 또한 멋진 아버지의 모습을 완성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