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전부가 되게 하라 - 영적 능력을 더하는 놀라운 은혜의 언약
찰스 스펄전 지음, 서하나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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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은혜가 전부가 되게하라




은혜는 무엇일까? 은혜갚은 까치라는 전래동화를 보면 목숨을 바쳐서 보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거나 은혜 받기 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쁨이 있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감사하지 않으면 미안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찰스 스펄전 목사는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은혜가 충만한 목사님이었다. 목사님의 집이 불타는 상황에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며 전화위복을 믿었기에 감사하였다. 그의 충만한 은혜에 주변 사람들은 목사님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 왜 저러는가 하면서 거짓 행위로 목사님을 폄훼하는 사람이 많았다.




목사님은 은혜가 충만하여 거침없이 200여 페이지의 참된 신앙 고백을 하였다. 보통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의 고백을 들으면 두서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스펄전 목사님은 전혀 중복된 말씀을 하지 않는다. 각 장마다 각기 다른 시각의 고백과 도전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중에서 은혜가 넘치도록 성령 충만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성령은 말 그대로 성스러운 영혼이다. 나의 영이 아니다. 나와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영이다. 내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부르짓고 소망해야 성령님이 오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분인 그 분이 오신다. 그것이 성부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택한 백성이 된 표식이다. 영원한 생명책에 우리 이름이 기록될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이 한번 충만해 진다고 계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죄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구약시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율법의 핵심 내용들이 된다.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는 행위의 언약을 지키게 된다. 하지만 아담부터 우리는 행위의 언약을 이미 실패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유일한 행위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금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다. 하지만 인간은 악이 가득한 세상에 있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훈련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믿음의 조상 다윗도 십계명 중 하나를 어겼다. 간음하지 말라는 그 계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들어주신다. 우리가 죄 짓는 것을 싫어하시기 보다 회개하지 않음을 싫어하신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 속에 울리는 노래가 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옳은 길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가득하면 결코 악이 내 안에 들어올 틈이 없게 된다. 나의 노력으로 악을 거절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보셔서 성령을 주셔야 우리 의지가 아닌 성령의 힘으로 악을 물리칠 수 있다.




나는 과거 여러 회사를 다녔다. 운이 나빠서 인지 그 회사들 모두 망하거나 사장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직원들끼리 모여 사장을 욕하고 회사 사정에 불안감을 표현했다. 감사하거나 다시 잘될 것이란 소망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과 머리에 선함이 없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인도해 주심을 바라는 기도를 하질 못했다. 그저 나의 상황이 나빠지지 말아달라는 기도였다. 스펄전 목사님의 말처럼 내 입도 할례를 받았어야 되었다. 그랬다면 성령이 충만한 말을 하고 그 말로 주변사람들이 소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고난은 우리가 교만으로 하나님께 떠나지 말도록 주시는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 성령이란 가장 큰 선물을 통해 우리는 늘 소망을 품고 기쁘게 살 수 있다. 지금에야 깨닫는 참 믿음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언약을 주셨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셔서 결코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으시다.




끝으로 스펄전 목사님이 내게 준 도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변론하기를 힘써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거룩한 하나님께 대드는 그런 기도가 성경적인가 하고 순간 반문하였다. 하지만 스펄전 목사님은 야곱이 압복강에서 천사 또는 하나님과 씨름한 일을 이야기하면서 변론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감히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야곱은 이겼다. 엉덩이 뼈가 다치도록 씨름하였다. 그렇게 이겼다. 그후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셨다. 바로 야곱의 자녀들과 자손들이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이 된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아담은 인간의 조상이고 아브라함은 중동 땅의 조상이다. 아담은 불순종하였고 아브라함은 불순종후 순종하였다. 이삭을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믿음의 큰 행위를 하였다. 야곱은 도전하였다. 자기형을 피해 도망다니던 그 약골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도전하였다. 은혜를 넘치게 받았다. 큰 민족을 약속하셨다. 그의 후손에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예수님을 계획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영원한 생명의 징표가 성령이다. 성령은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은혜이다. 무한한 은혜이다. 짧은 순간에 오는 그런 은혜가 아니다.




미흡한 내 믿음에 큰 기쁨을 부여한 책을 읽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Thank you, God! Father, great honor and glory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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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1-07-28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히 읽었습니다.
 
악의 문제 바로 알기 - 악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결과들
랜디 알콘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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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 바로 알기




7월1일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 길에 50 페이지를 읽고, 병원에 입원중인 어머니를 뵙기 위해 고향을 내려가면서 60 페이지를 읽었다. 마음 같아서는 금세 300 페이지를 읽을 것 같았지만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신앙을 갖고 있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무교도 포함할 수 있겠다. 기독교 중에도 교파에 따라서 약간의 다른 믿음을 갖는다. 기독교라고 할 수 있을지도 애매한 사이비교도 있다.




이런 각기 다른 믿음은 악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차이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악은 애초에 없다는 믿음을 갖는 부류도 있다. 하나님을 완전하신 절대자로 보지 않는 부류도 있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의 유한한 사고 능력과 지식의 깊이 차이로 인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책의 다양한 줄거리들이 거의 그대로 반영될 것 같다. 하지만 나조차도 작가의 생각과 믿음에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과연 올바르게 옮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많은 생각들로 책은 좀체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7월 3일 일요일 오전 5시 12분. 내 어머니는 내 손을 꼬옥 잡으시고는 눈을 뜨셨다. 이내 다시 감으셨다. 다시는 힘든 숨을 거칠게 내뱉지 않으셨다. 눈에는 눈물이 고이셨다. 나 또한 현실감 없는 그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 동안 믿고 소망한 모든 것들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된 소망을 가졌다고 한탄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사로 처럼 다시 부활할 것을 기도하고 소망했다. 만약 그때 그런 내 믿음을 입으로 고백했다면 내 동생과 아버지는 나를 미친 놈으로 생각할 것 같다.




어머니의 시신을 그대로 두고 병원에 있던 갖가지 물건들을 집으로 옮겼다. 운전을 하고 있지만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사실같지 않았다. 같은 골목을 몇 번씩이나 돌았다. 잠시 꾸는 악몽이기를 바랬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어머니와 나눴던 마지막 시간들에 대해서 감사합니다란 고백을 입으로 하고 있다. 살아갈 힘을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입관을 하는 순간에도 나사로의 기적이 내 어머니에게 오길 소망한다. 화장터로 가는 순간순간 더 늦으면 안되니 회생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응답은 없지만 믿음은 있다. 내 믿음의 단순함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남겨둔 200여 페이지를 보면서 눈물보다 소망이 가득해진다. 내 단순한 믿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악과 고통만 가득할 이 순간에 벌어지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내 작은 뇌는 이해력을 잃어 버렸다.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앞으로 살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로마서의 말씀만 머리 속에서 꽉 차버렸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바로 이 말씀. 내 어머니가 소천하신 그날 도대체 선은 어디에 있을까 의심했다. 왜 우리의 기도가 결실을 못 맺었을까 궁금했다. 우리의 고통과 노력을 아실 성령께서 이토록 슬픔을 주실까 반문했다. 이제 책 속에서 확인했던 내용이 내 삶에 그대로 들어왔다. 모든 선하심에 악과 고통마저도 합력하여 더 나은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살아 있음을 체험한다.




내 어머니가 평소 꾸시던 꿈을 이제는 몸소 체험하실 줄 믿는다. 다섯명의 아이들과 뛰어 노는 꿈이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 항상 기뻐하시고 선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늘 감사하셨으면 좋겠어요. 늘 부지런하셨는데 그곳에서도 이곳과 같으셨으면 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좋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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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헌터
이반 로딕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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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헌터



참 재미난 제목의 책이다. 얼굴 도둑이란 제목 말이다. 책은 꽤 두툼한 사진첩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사진첩의 저자, 즉 사진 작가의 약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작가 이반 로딕"



한마디로 길거리에서 표정과 패션이 탁월한 사람들을 헌팅하여 그 즉시 사진촬영 협조를 구한다.
남자친구의 눈치도 보고 동행자의 허락을 구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귀찮은 존재들은 포즈나 장소에 대해서 조언도 해준다.



책의 저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그 즉시 답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도 그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페이스 헌팅의 대상으로 까메오 출연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등장하는 것일까? 책의 맨 마지막 사진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멋진 여성 모델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웅크리고 앉아서는 거울을 가운데 놓았다.
그래서 모델의 모습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참으로 깜찍한 발상이다.



이런 발상 때문에 이 작가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또한 그가 운영하는 facehunter.blogspot.com 에 들려보자.
책 속에 나오는 사진들은 물론 최근에 찍은 일반인들의 사진이 나온다. 정말 일반인일까 하고 의심하게 되지만
어딘가 자연스런 모습들이 많다. 바로 아마추어 모델 다운 모습들이다. 결코 비싼 명품을 하고 있지도 않다.
최근 도시인들만의 특색있는 모습들이다. 레고블록으로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는 남자도 있다.
페인트 칠할 때나 입을 것 같은 옷을 참 멋지게 입은 사람도 있다. 사다리 위를 하이힐을 신고 오르는 각선미의 여자도 있다.



이러한 이반 로딕의 작품들을 외국의 유명한 의류회사와 디자이너들이 참고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세상에 알렸고 그런 그의 자유분방한 표현력을 인정한 유수의 패션잡지들이 있다.
이렇게 찍은 사진과 그의 담담한 소갯글은 패션잡지들의 고정 코너가 되었다.



페이스 헌터, 참 독특하고 시대에 부합하는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벌써 한국에도 몇몇 기자들과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아류 사이트를 개설하고 있다. 이들 작가의 대화 능력도 높이 사야 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녀들의 동행자와 애인들에게 구타를 받지 않을까 싶다. '눈이 예쁘시네요, 신발이 인상적이네요. 라인이 좋습니다.' 등등의 말이 먹혀들려면 말이다.



로딕의 헌팅 대상은 나이를 불문한다. 독특한 패션감각이면 문제가 없다.
물론 남녀도 구분이 없고 국적도 상관이 없다. 그저 자유분방함과 개성이 넘친다.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도시의 특징이 같이 녹아든다. 참으로 인상적이다. 보면 볼수록 정성이 담긴 작품이다. 사람들은 생기가 넘친다. 그들의 영혼이 담긴 느낌이다. 때때로 소품도 세세하게 찍어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찍었는지가 나와서 그곳을 찾아볼 수 도 있다. 영국과 미국 서부가 많이 등장한다. 독일도 등장한다. 이런 나라들에서 많은 소재와 영감이 발생하는 것 같다.



창의력은 이러한 도특한 재능을 갖은 사람의 작품 분석이나 흉내내기를 통해서 길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장소 같은 모델도 작가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하지만 길을 걸으면서 특정 장소를 정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을 섭외한다. 이런 식으로 매번 다른 작품을 만드는 순발력과 창의력에서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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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성이 간다 - 신주쿠 구호센터의 슈퍼히어로
사사 료코 지음,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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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성이 간다”를 읽고




현수성, 참 생소한 이름이다. 재일교포인 그의 삶을 일면만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글을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현수성은 현재 40대 중반의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에 거주한 한국인 불법체류자였다. 몇년전 사망하였다. 어머니 또한 재일교포이다. 그런데 보통 이렇게 부모와 가족관계를 이야기하면 부모로 부터 물질적인 혜택은 없었지만 자수성가한 사람이란 식의 이야기 흐름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현수성의 부모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런 부모가 현재도 살아있고 한때도 같이 거주하긴 했지만 그에게 부모는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저 태어나게 해 준 것만은 감사해야 하지만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에게 폭행과 욕설, 내버림을 행하는 악인 중 하나였다.




일본내에서 한국인은 여전히 조센징이란 표현으로 구분된다. 날 때부터 배척받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랑을 준 적도 없다. 아버지는 여러 여자를 전전했고 어머니 또한 여러 남자를 전전했다. 그러는 사이 현수성은 의붓 아버지 의분 어머니에게 노동 착취, 아동 학대 등등 좋지 않은 모든 것들을 경험했다. 먹지도 못했고 잘 쉬지도 못했다. 오직 정글에 버려진 야수와 같이 살아왔다. 그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뭔가 결핍되어 있다고 한다. 아니 사람이라면 있어야 할 뭔가가 없다고 한다. 어느 조폭은 구워먹어도 먹을 수 없을 사람이란 표현을 썼다. 일본어 표현으로는 딱 느낌이 올 그런 말인데 우리말 번역으로는 좀 느낌이 없다. 그만큼 알 수 없고 뭔가 사람이 아닌 그런 존재라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그에게 현재의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정확히 대다수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지쳐서 도움이 필요한 그런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책 속에서 설명하는 일본은 너무도 황량하여 마치 동남아 어느 한편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되게 한다. 우리나라 어느 구석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궂은 날씨에 누군가는 따뜻한 집에서 부모님과 가족의 애정 속에서 숙면을 하는 사람이 있고 구석진 시멘트 바닥에서 그날그날을 겨우 버티며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일본 속에서도 그런 곳들이 있다. 현수성이 운영하고 있는 신주쿠 구호센터는 그런 아픔이 적나라하게 넘쳐나는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신분을 보면 확실해 진다. 호스티스, 호스트, 주점 종업원 등등. 한국의 강남 어디쯤에 밤이면 성업중인 그런 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현수성의 의뢰인이자 고객들이다. 아 신주쿠 구호센터는 비영리 법인이다. 한마디로 봉사센터이다. 그래서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책 속에는 7년간 운영되었다고 설명이 나오는데 사실 이 책이 번역된 기간으로 인해 벌써 9년째라고 한다.




현수성은 어론에서 나왔듯이 거액의 돈을 벌어들인 후에 원인모를 백혈병에 걸린 후 회심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고 책 속에도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새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악하게 살아오던 사람이 지금 현재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그는 매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그를 찾아 오는 사람들은 죽을만큼 고통에 몸부림 치다가 그에게서 해결책을 얻어 갱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현수성은 자신의 사무실 밖으로 거의 나가질 않는다. 그가 도와 주는 것은 종국에 각자에게 각오를 심어 주는 것이다. 약간은 물리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피신처를 마련해 주고 악덕 포주에게서 의뢰인을 위한 약간의 위자료를 받아 주기도 한다. 포주들은 조폭들과 연계되어 있다. 하지만 현수성은 그런 조폭들과도 단판을 벌인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떻게서든 비즈니스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가장 합법적이면서 서로에게 뒤끝이 없는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할까?




현수성은 2번의 결혼도 하였다. 그렇게 2명의 자식도 생겼다. 하지만 그에게 결핍된 그 무엇으로 인해 그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는 부모의 사랑말이다. 그는 정에 이끌리지 않는다. 정을 모른다. 그저 생존만 지금까지 생각해 온 사람이다. 단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돈 버는 방법을 연구한 사람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굉장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돈을 모으고 구호센터를 운영하는 밑천을 마련한 사람이다.




현수성은 어릴 때 부터 한가지 좋은 신념을 갖고 있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결국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최선을 다해서 돈을 모았다. 자신이 되돌아보니 참 악하게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후회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한다. 극은 극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렇게 최악으로 치닿은 그에게 최선이 연결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도 극과 극이다. 사실 현수성을 평가하는 것이 극과 극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현수성의 모습들이 극과 극이다. 악한 자는 현수성이 악인이길 원한다. 그래야 자기들에게 득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끝까지 이해하는 방법이 있을까 궁금하다. 자신도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이다. 나만의 변치 않는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있다면 분명 선할 것이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나는 현수성이 태어난 것에는 이런 큰 뜻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법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이 결코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했다고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가 희망을 주었고 자존감을 주었다고 한다. 현수성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의 과거가 그를 만들었다. 결코 어떤 불행한 사람도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예시이다.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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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 - 이제는 들립니다
빌 하이벨스 지음, 캐런 채 옮김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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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음성”을 읽고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저자인 빌 하이벨스 목사님을 알게 되었다. 그가 사역하는 윌로크릭 교회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목사님이 어떤지 이야기 한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남을 판단하지 말라’에 위배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은 많은 은혜가 되었고 내가 갖고 있는 잘못된 편견들을 허물어 주신 목사님이기에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매우 솔직한 분이다. 기독 서적을 저술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성령님의 감동에 취해서 책을 쓰게 되면 그 책을 읽는 다른 사람도 저자가 받았던 감동을 똑같이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들과는 다르다. 훨씬 더 이성적이다. 제목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해설서나 이렇게 해서 나는 들었다 식의 간증서를 연상 시킨다. 이렇듯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자신이 밝히듯 화학을 전공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이다. 하나님 음성을 분별하는 것부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가르치신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책의 제목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듯길 원해서 이다. 미국의 대형 선교단체를 이끌고 있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자신의 교인들에게 선물한 이 책속에 분명한 방법이 나올 것이라 나는 기대했다. 새벽 몇 시에 읽어나서 성경을 묵상하고 찬송한 다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들을 수 있다는 식의 방법을 나는 기대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내게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소망이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보니 내가 다소 어리석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해야 들리는 것일까? 우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새삼깨닫게 된 것이지만 나는 구한 적이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기도중에 듣게 하소서라고 구한 적이 없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와 같이 구하면 들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의미의 기도는 많이 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언제나 쉽게 하나님 음성을 듣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해 목사님 또한 원할 때마다 들으시지는 못한다. 또한 사람의 음성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이 부분에서 다소 실망감이 있었다. 사실 하나님은 피조물이자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제나 여러 형태로 말씀하신다.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도 이야기 하시고 두세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도 우리의 입을 빌려 말씀하신다. 때로는 우리 영혼에게 속삭이시도 하신다. 어느 순간 마음에 와닿는 감동도 하나님 음성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음성인 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때로는 나의 믿음으로 내 속에서 내가 외치는 소리일 수도 있고 신앙과는 거리가 있는 독선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책의 전반부와 맨 뒤편에 하나님 음성을 확증하는 점검필터가 소개된다. 먼저 속삭임을 듣고 주변 사람이 한 말인지부터 확인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묻는다. 두번째는 성경적인지 검사한다. 즉 음성을 준행하는 것이 예수님도 하실 만한 일인지 확인한다. 세번째 일반적인 상식과 지혜에 대립되는지 확인한다. 하나님 말씀은 선하심과 사랑에 바탕한다. 네번째 나의 전문성과 인생 경험에 연결이 되는지 확인한다.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가수가 되라는 메시지를 하나님이 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의 신실한 크리스찬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를 바란다. 이 모든 점검이 끝이나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때는 믿고 순종하길 바란다. 예수님께서 신실한 백부장을 칭찬한 일화가 있다. 백부장의 종이 몹시 아파서 예수님께 나아올 때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란 믿음의 고백이 신앙생활에서 하나님 음성을 듣는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생각된다. 믿고 구하면 선하신 하나님은 응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일화들과 온전히 순종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목사님은 솔직하다. 자신이 불의를 보고도 무서워 숨었던 일화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믿음의 충고를 하신다. 또한 낮아짐의 중요함도 강조하신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종으로 오신 것과 같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떠한 자세로 임하여야 하는지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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