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장미
리나르트 바르딜 글, 헨리에테 소방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사막의 장미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의 동류로 보이는 책이 있어 펼쳐 보았다. 책 표지에는 왕자와 푸른 장미꽃이 보여 아이들을 위한 어린왕자 동화책이라고 생각하면서 보았다. 하지만 첫 페이지에서 왕이 등장하는 내용이 있어 나의 예측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제서야 책의 제목도 다름을 알게 되었다.

 

사막의 장미. 그저 언어적 해석으로 사막에 피는 장미로만 받아 들였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보게 되면 실제로 사막에서 자라는 이 장미의 남다른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이런 꽃이 있구나 하고 확인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생명체 속 큰 힘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의 왕자도 어린왕자와 같이 무엇인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어린왕자가 찾아 떠난 것이 뭐였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내용들이 생각만큼 기억에 나지 않는다. 이 책의 왕자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을 찾아 떠난다. 그것이 무엇이든 찾아서 아버지인 왕에게 보여주면 왕자는 정통 후계자가 된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답게 의인화된 자연 요소들을 찾아 떠난다. 먼저 불을 찾아갔고 불이 소개한 물을 찾아간다. 물은 바람을 소개하고 바람은 땅을 자신보다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왕자는 고민에 빠진다. “대체 어떻게 땅을 자겨가지?”

 

고민은 눈물로 이어진다. 그 눈물을 먹고 마른 풀 뭉치에서 초록빛 꽃으로 변화된 장미를 발견한 왕자. 왕자는 그것을 왕께 가져간다. 이 장미는 여리고의 장미라고 부른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왕자가 만난 의인화된 불, , 바람(공기), () 그림들을 보면서 신기하고 예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른인 내가 볼 때는 이 책은 단순한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연금술적 사고로 짜맞춰진 동화란 느낌이 강하다. 마치 영화 제5원소를 보는 느낌도 더불어 나타났다.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제5원소에는 불, , 공기, 흙의 4요소에 마지막으로 사랑(인간)으로 부족한 5원소를 채우는 결론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구성하는 여러 무형의 요소들을 이렇게 이쁜 이야기를 통해서 들려줄 수 있어 좋았다. 내 아들은 동화 해와 바람이야기가 생각난다면서 불이 자신보다 강한 것이 물이라고 한 이후에 물은 바람이 더 강하다고 말한 것을 설명했다. “해와 바람처럼 서로 싸우지 않고 스스로 겸손하게 약하다는 자연요소들을 보면서 비슷한 소재로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싶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마워! 아리가또, 땡큐 - 포복절도, 유쾌상쾌 일본에서 만난 나의 행운의 친구들!
유석규 지음 / 큰나무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마워! 아리가또, 땡큐

 

우리가 알고 있는 감사의 표현은 얼마나 있을까? 보통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도로 2가지가 금방 생각이 날 것이다. 일본이라면 아리가또, 미국이나 영국이라면 땡큐 정도가 생각이 날 것이다. 이런 말들을 동시에 할 일이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일본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사람이다. 대략 6~8년 정도를 일본에서 살았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까? 책 속의 저자는 비교적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떨어져 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과묵한 듯한 주인공을 편하게 느낀 것 같다. 자신들도 이국 땅에서 썩 잘하지 못하는 일본어와 생활에 적응하는 중 느끼는 어색함에서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중에 약 20명 이상의 인상적인 다국적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의 에피소드들을 재미나게 들려준다. 뻔뻔하고 이기적인 친구부터 소극적이고 과묵한 친구, 너무도 친절하고 살가운 친구들까지 모두들 외로운 유학시절의 단비 같은 존재들이 되어 주었다.

 

24편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각각의 인물들의 독특함과 다채로움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마치 일본을 유학하면서 그런 친구들과 살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20대 시절로 돌아가서 유학생활의 외로움과 학비 조달의 고통을 몸소 경험하는 중에 다양한 국적과 성격의 친구들이 나의 기숙사 방으로 찾아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게임을 하면서 사귀게 된 미국 친구. 그 친구는 짧은 언어 연수로 와서 다시금 돌아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떠난다. 정확히 일년 후 약속처럼 돌아와서 같이 석사과정을 다닌다. 그 사이 부쩍 일본어 실력이 늘었다. 저자와 좀더 다양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 미국에서 독학을 하였다고 한다.

 

세상 곳곳에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나와 인연이 있을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내가 그 세상으로 노크만 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 나라 내 동네 이웃과도 어울려서 이야기 꽃을 피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맞는 말이다. 그만큼 쉽고 자연스러운 것에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외국 생활은 우연한 기회이거나 자신의 선택으로 시작될 수 있다. 마음 문을 닫으면 재미난 기회가 고난의 시작이 될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처럼 언제나 저자와 같이 솔직하고 열린 자세라면 친구는 언제 어디서나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서 낯선 외국의 생활에 대한 동경 보다는 친구에 대한 소중함과 친구를 사귀는 마음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 마음가짐들을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늘 감사하며 살고 열린 자세로 다른 이들의 차이점과 특색을 존중하여야 되겠다. 즐거운 에피소드를 읽으며 웃다 보니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Thank you. 아리까또~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 받아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꼭 먹여야 할 12-36개월 밥상
정현미 (모모맘) 지음 / 미디어윌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꼭 먹여야 할 12-36개월 밥상




최근에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아내는 연신 아들만 둘이라면서 투덜대고 있다. 사실 어른 애까지 포함하면 셋이고, 거기다 시어른까지 포함하면 넷이다. 뭐 충분히 투덜댈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투덜댈 때는 꼭 한마디 덧붙인다. “나 없으면 니들은 어떻게 살건데, 밥도 해먹을 줄도 모르면서 식사때 도와주지도 않아.” 뭐, 기분이 더 안좋을 때는 이런 이야기도 한다. “내 동생 신랑들은 영식이나 일식이라던데, 우리 신랑은 꼭 두식이란 말야”




에휴, 이런 이야기는 나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드디어 나도 요리책을 한번 일독하게 되었다. 좀 이뻐 보이고 간단해 보이는 책을 고른 것이 그만 이 책 “23-36개월 밥상”이다. 한 마디로 이유식 책을 최초의 요리책으로 골랐다.




뭐 새로 태어난 아들 밥을 벌써부터 걱정해서 읽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부식을 이용해서 간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어서 선택한 책이다. 12개월 이후에는 주로 죽같이 진밥이 위주이니 내가 원하는 부분은 아니다. 21개월 이후의 내용은 성인에게도 적합한 내용들이다. 18개월 이후만 해도 어른 아이 구분없이 먹기에 좋을 것 같다.




처음 접한 요리책이라서 그런지 목차부터 꼼꼼하게 읽게 된다. 직업이 소프트웨어 개발이라서 그런지 괜히 마인드맵으로 전체 내용을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일단 큰 줄거리를 정리해 보았다.




저자는 독자 대상을 36개월까지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최하 5개월 부터 3~4개월 간격으로 식단을 편성하였다. 젖을 먹는 영아기에서 벗어날 때는 죽처럼 부드러운 것을 시작한다. 차츰 어른의 밥과 같이 물기가 적도록 변화를 주고 있다. 그래서 이유식 책임에도 제목에 밥상이란 표현을 부여한 것 같다. 위의 표를 잘 보면 그림의 끝에 o으로 마킹된 곳들은 사실 수십가지의 메뉴들이 소개된다. 그것들이 이 책에서 핵심적인 요리 과정과 재료들이 소개되는 실질적인 내용들이다. 하지만 각 개월별로 저자만의 주관과 선배의 노하우가 강조되어 있다. 15개월까지는 진밥을 먹이고 18개월까지는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흰쌀밥을 반드시 먹이라는 그런 정보들이다. 18개월부터는 고구마,밤,감자 등의 전분이 있는 것들을 먹일 수 있고 21개월부터는 반드시 규칙적인 식사로 습관을 들일 것을 주의시킨다. 24개월부터는 단맛을 길들이지 않도록 잡곡밥을 먹이는 센스를 발휘할 것을 조언하고 28개월부터는 음식의다양한 색깔을 통해 눈의 즐거움과 편식 방지를 조언해 준다.




이쯤 설명만 해도 단순한 요리책은 아니다 싶다. 그저 어린 아이들을 포동포동하게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닌 시기에 맞는 해법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경우에는 급할 때 요리해 먹는 것이 목적이기에 모든 메뉴 중에서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것들을 쉽게 요리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찌고 갈아야되는 이유식의 특성상 필립스의 전용 이유식 기구도 소개해 주어 한번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Avent라는 상표가 적혀 있는데 우리 애기 젖병 상표랑 같아 보인다. PPL의 느낌은 들지만 그 덕분인지 전체 페이지가 컬러인데도 비교적 비싸지 않은 것을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내가 혼자 밥해 먹기 위해 보는 줄 알면 기특해 하던 마음이 사라질까 조금 염려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령님의 임재 연습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발견하기
앤드류 머레이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성령님의 임재연습

원제 : In Search of Spiritual Excellence





내가 요즘 거룩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귀하고 좋은 말씀을 너무도 힘들께 읽었다.

200 페이지의 가볍고 글씨도 작지 않은 이 책을 보면서 그렇게 힘들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성령이란 단일 주제에 대해서 200 페이지의 글이 있다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 후에 우리에게 축복으로 남겨 주신 은혜인 성령에 대한 글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면

결코 충분한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싶다.




성령은 무엇일까?
은혜 충만한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해 주실까?
이 책은 오랜 기간 전세계에서 읽혀진 것을 두고 볼때 성령은 크리스찬들이 소망하고 갈망하는 대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경에 보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의 불꽃이 내렸다고 한다.
그전에 그런 역사는 없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이후 부활 승천하시고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제자들과 모인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언으로 성령 감화로 은혜의 증거를 말로 고백하였다고 한다.

그후 다시 방언하는 것이 끊어졌다고 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충만해 질 수 있지만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성령은 왜 필요할까? 왜 좋은 것일까? 어떻게 하면 유지가 될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머레이 목사님은 간증하고 설명한다.




참 그전에 세례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해 보겠다.

과거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고 이후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다.

그런데 현재의 목사님들은 물과 기도로 세례를 주신다.

성령이 충만한 목사님은 구지 물로 주지 않아도 될 것은데 말이다.

아마도 목사님들이 겸손하셔서 신성이 부족한 본인들이 물 없이 세례를 주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기 때문일까?

성경 속에서 예수님도 세례 요한의 물 세례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왔다고 한다.

이전의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셨고 성령의 은혜를 위해 세례 요한의 의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성령은 믿음만 있어서 우리에게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한번 충만해 진다고 계속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다.

또한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신 분 조차 은혜를 유지하시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신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분이셨기에 그 분의 성령은 연약한 우리에게 양약이 되었다.

그 분의 옷만 만져도 우리의 죄와 악, 병이 물러가 버렸다.

잠시 주님과 함께 있기만 해도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하였고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제 그런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실 때에 예수님처럼 이적을 보였고 예수님을 따름에 힘들지 않았다. 기뻤다.

그러나 예수님과 잠시 떨어지면서 그는 세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오순절 역사로 다시금 그에게 강한 믿음으로 순종하게 된다.

모습은 없지만 예수님과 동일한 성령이 그에게 채워진 것이다.

그 얼마나 깊은 감동과 은혜였을까 생각된다. 다시금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흘러버리는 성령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얼마나 열심이었을지 추측하게 된다.

제자들도 믿음만 있었을 때와 성령 충만하였을 때 다름을 확실히 느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시로 죄와 동행하고 죄와 씨름한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두려움도 없고 죄도 발 붙일 틈이 없다.

하지만 내가 겸손히 낮아지고 하나님 구속을 소망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성령은 고갈되고 다른 것들이 가득해서 은혜가 멀어지게 된다.

거룩함도 없고 기쁨도 감사도 없게 된다. 하나님 뜻을 구하지도 않게 된다.

성경을 읽어도 그 지혜를 담아 둘 수 없게 된다. 그저 언어로만 이해하게 된다.

성령이 도와 그 이해를 배가 시키고 그 감동을 넘치게 해야 하나님 보시기에도 기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책에 등재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고 생각된다.

그저 성령이 내게 있어 보기만 해도 구속한 백성인지 은혜받은 자녀인지 알아보실 것이다.

내가 세상의 지식과 요령으로 가득하고 내 의지와 노력으로 살면서 기뻐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하늘을 피해 숨어다니는 죄인일 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다. 아직 내 안에 다른 것들이 너무 가득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는 하나님
인은수 지음 / 두란노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멀티플렉스에서 만나는 하나님




멀티플렉스, 90년 쯤 서울에서 처음 시작된 복합 영화관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그 전까지 한 영화관에서는 하나의 영화만 개봉하였다. 또한 영화관에는 극장도 하나 밖에 없었다. 처음 멀티플렉스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듣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영화관에서 백화점이나 분식점처럼 여러 개의 영화가 상영되고 같이 볼 수 있을까 했다.




이 책은 나와 연배가 비슷한 30대 중반의 영화전문가가 쓴 책이다. 특이한 점은 독실한 크리스찬이어서 영화속의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책의 순서도 재미있다. ‘매표소에 들어가기’가 시작이다. 끝은 ‘극장 문을 나서며’. 극장은 14개 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멀티플렉스인 것이다. 1관 슈퍼 히어로, 2관 재난, 3관 공포, 4관 멜로, 5관 SF I, 6관 판타지, 7관 드라마, 8관 SF II, 9관 스릴러, 10관 미스터리, 11관 액션, 12관 뱀파이어, 13관 코미디, 14관 작가론.




어느 극장부터 입장하고 싶은가? 순서는 상관이 없다. 다만 극장의 주인인 저자는 1관부터 차근차근 안내하길 원한다. 부담없는 내용부터 이야기해서 차츰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서 영화속 구석구석을 설명하고 있다. 끝으로 작가론은 한국영화 중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국제 영화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많고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속에서 한국 교회를 잠시 살펴 보기 위함이다.




이 책은 독자를 한정하고 있을까?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초두에 특히 친근함을 많이 느낄 것이다. 작가의 영화 사랑에 대해서 동감하게 될 것이다. 80년대 초등학교 시절 주말의 명화를 보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주무시는 틈에 흑백TV를 켜서 조용히 보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오래된 동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30대의 독자들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제목에서 반추하듯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적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에 선입견을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하고 시나리오를 좋아한다면 분명 이 책은 재미가 있다.




각각의 극장들을 다시금 살펴보기 바란다. 마치 초등학생 시절 좋아하던 장르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며 살아가는 과정까지 차츰 좋아하는 장르가 바뀌듯 그 순서가 묘하게 일치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아직도 슈퍼 히어로를 좋아하는 40대 아저씨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예전에는 참 영화를 좋아했는데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선과 악이 명확히 나뉘어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던 액션영화, 특히 홍콩 영화들의 기억이 새롭다. 대부분 중학생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보았다. 다 보고나서 에이 시시해라든지 뭐 남는게 없어라는 말을 하면 곁에 계시던 어머니는 뭐라도 교훈을 얻어야지 그럴거면 다시는 빌리지도 보지도 말라고 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는 인간이 만들었다. 물론 하나님께 감동하여 성경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많이 있다. 그런 영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는 감독과 작가의 사고를 담고 있다. 거기에는 악과 같이 반 기독교적인 것들도 있다. 두려움을 심어주는 공포물들이 특히나 그런 류이다. 하지만 그런 영화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의 생각이다. 나도 동감한다. 내 어머니의 말씀도 그런 뜻이었다.




끝으로 영화를 주제로 하나님을 이끌어 내었지만 저자는 대중문화 전체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야기하였다고 생각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인간이 만든 것들에도 그 분의 선하심이 담겨 있음을 거부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