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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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그림을 그 네모난 폭에 담긴 아름다움만 떼어 놓고 보고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극힌 개인적인 취향에서 벗어나 그림의 물질성에 깃든 그 당시의 사회성, 그리고 더해서 지금 이 그림을 보는 나와 연관지어 보는 안목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그림 읽기'는 책 몇권으로 어렵다. 하지만 당장 그런 두꺼운 책을 손에 쥐고 씨름할 겨를이 없다면, 간략하면서도 대충 어떻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 요긴할 것이다.

이 책 '천천히 그림 읽기'는 제목에 그림 '보기'가 아니라 왜 그림 '읽기'인지를 또한 천천히 들려주는 책이다. 단순히 그림의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의 시간성과 공간성, 즉 그 네모난 그림 이외의 그 두터운 (사회적) 풍경까지 곁들여서 보는-읽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순진하게 미적 취향으로만 그림을 생각했다면, 이 책에서 해부?하는 그림의 장면에서는 속물적인 것까지 원하지 않게 보게 될 수도 있다 - 고상한 화가의 예술적 혼이 담긴 그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림에 쓰인 여러 상징들과 암시들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그것들을 건드려 가며 보는 것이 얼마나 그림을 토실하게 만드는 지도 더불어 알게 해준다. 

단순한 그림 보기에서 좀 더 중층적인 그림 읽기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은 작은 안내 역할을 해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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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힘
조셉 캠벨 & 빌 모이어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이끌리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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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화에 대해 막연하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신화에 관한 책들이 그러한 흥미를 북돋아주거나 기대한 만큼 즐거움을 주지 못할때도 있다. 그러기에 능동적으로 (텍스트화된) 신화에 다가서려는 (기특한) 마음에 뭔가 고달프지 않은, 그러면서도 즐거운 메시지를 주는 책이 있다면 너무도 이쁠 것이다.  

내가 볼때,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책이다. 신화학의 거장이라 일컫는 조셉 캠벨과 대담자로 나선 빌 모이어스가 신화와 신화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러 주제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냥 우리와 멀리 떨어진 호기심으로만 핥는 신비로운 영역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들 속에도 이어져 있는 신화의 소박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친밀성은 이 책이 대담 형식이라 구어체가 주는 평이함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인자한 할아버지가 옆에서 딱딱한 것을 여러 번 입으로 발라내어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알짜배기를 손에 쥐어주는 듯 하다.  

조셉 캠벨과 빌 모이어스, 그들이 주고 받는 말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신화를 우리의 (읽는) 시선으로 건드려 지금 여기로 일으켜 세우는 기묘한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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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ce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 노래 / 워너뮤직(WEA) / 197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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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가족이 둘러 앉아 검은 물체를 바라보는 기이한 앨범 쟈켓을 가진 레드제플린의 1976년 앨범이다. 엄밀하게 따져 본다면, 수록 곡들은 제플린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 뭔가 뚜렷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놓여 있는, 단 한 곡 때문에 이 앨범은 레드제플린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무거운 '존재성'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첫 곡 'Achilles Last Stand'이다. 락 음악에 있어, 이 곡과 비슷한 구조나 느낌을 가진 곡은 찾아 보기 힘들다.

스멀스멀 기어가듯 아스라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여러 마디의 생소한 간격들이 강약의 변화를 통해 마치 담글질하듯 고조감을 생성하는데, 엇박의 급박한 드럼 연주가 큰 역할을 한다. 그 다져진 힘의 증폭이 흐드러지듯 풀리면서 짜릿한 떨림(쾌감)을 주는데, 몸의 경련으로 전이된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여러 갈래의 음의 흐름이 담긴, 그 이질성이 묘하게 하나로 휘감기는 독특한 맛을 내준다. 이는 멤버 각자의 탁월한 능력이 조화롭게 어떤 하나의 장(場, field)에 잘 녹아들어갔음을 말한다. 

'Achilles Last Stand'는 이 앨범에서 극단적인 자리-모서리와 같은 곡이며, 레드제플린의 음악에서 또 하나의 훌륭한 성취라 하겠다. 

덧붙임: 이 곡은 드림씨어터(Dream Theater)의 앨범 [A Change Of Seasons ]에서도 새로운 연주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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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Zeppelin - Coda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 노래 / 워너뮤직(WEA) / 198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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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라는 말은 대개 부정적으로 쓰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의 태생은 그러하다. 그러나 용의 비늘이 떨어진 것이니, 일상의 가치에서 비교할 것은 못된다. 왜냐하면 그 용이 바로 레드제플린이기 때문이다.

기존 앨범에 담기지 못한 곡들로 만들어진 앨범이라 동일한 시간 안에 깃든 통일성은 약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격차나는 시간의 얼룩이 묘한 재미를 준다. 즉 제플린의 여러 시간이 한 공간(앨범)에 놓이는 오컬트적인 현상이 아닌가?(제플린 멤버들의 신비주의 지향성에 비추어 본다면 더 흥미롭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의도가 아니라 해산 이후의 상황에서 나온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 앨범에서는 블루스에 기반한 거친 입자의 힘이 느껴지는 곡들이 있다. 'We`re Gonna Groove', 'I Can`t Quit You Baby', 'Wearing And Tearing' 등인데 거의 초기 앨범 시기에 만들어진 곡이라 짐작된다. 이색적인 곡은 'Poor Tom'인데, 다소 느리고 흥겨운 리듬으로 진행하지만 애잔함이 깃들어 있다. 'Bonzo`s Montreaux'은 존 본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곡이자 자료가 될 거 같다. 2집의 '모비딕(Moby Dick)'과 함께 그의 드럼 연주를 만끽할 수 있다. 모비딕이 심도가 있는 장편 고전영화 같다면, Bonzo`s  Montreaux는 여러 빛깔의 다채로운 때려부수기가 흥겹게 펼쳐진다(영화로 치자면 고다르 정도). 전자가 음(내려앉음)에 가깝다면 후자는 양(발산)의 느낌이 난다.

제플린의 군더더기, 부스러기로 모은 앨범이지만, 그 예정되지 않은 만남이 주는 앙상블은 탄탄한 긴장감으로 얽혀 있지 않은 엇박의 소란스러움이 담겨 있다. 그러하기에 제플린 매니아들에게는 제플린이라는 거대한 용을 경험하고 나서, 마치 후식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앨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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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Zeppelin - BBC Sessions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노래 / 워너뮤직(WEA)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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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의 라이브는 밴드가 활동할 당시 [The Song Remains The Same'76] 말고는 정식으로 나온 것이 없다(이것도 영화? 제작의 부산물이기에, 순수 라이브 앨범으로 보기 어렵다) . 따라서 매니아들은 부틀렉에 의존해서 그러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런데 제플린이 해산하고 20여년이나 지나서 그러한 결핍을 해소할 만한 앨범이 나왔다. 바로  두 장짜리 [BBC Sessions]이 그것이다.


[The Song Remains The Same]에는 스튜디오 앨범과 다른 대가다운 여유와 노련미가 묻어나는 연주가 있다면, 이번 앨범은 제플린 초창기의 야생성과 함께 원곡에 충실한 라이브를 들려 준다.  녹음 당시가 70년대 초이고, BBC 방송국이라는 소박한 공연 무대를 감안해야만, 깔끔하지 못한 녹음상태와 많은 관중들에 둘러 쌓여 형성되는 두터운 현장 분위기가 없음이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는 '제플린의 날것'을 만나볼 수 있다(날것이 아닌듯한 곡도 있는데, 가령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는 라이브를 고스란히 옮겼다기 보다는 그 후에 약간 손을 본 느낌이 난다).

이 앨범에서는 질주하는 하드락의 모범이 담긴 'Communication Breakdown'의 여러 버전과 지금은 익숙하지만 'Dazed and Confused'와 ' Whole lotta love'의 즉흥성이 느껴지는 늘리기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반가운 곡은 'Stairway To Heaven' 라이브이다. 물론 이 곡은 손쉽게 구해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원곡에 가깝게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 고음의 보컬을 재현해 낸 라이브는 다른 곳에서 만나기 어렵다.  

최근에 [How The West Was Won] 등 제플린의 라이브 음원들이 공개되어 우리 귀를 즐겁게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플린 초기의 순수한 야생성을 맛볼 수 있는 건 또 다른 즐거운 행운이다. 그것이 이 앨범 [BBC Sessions]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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