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읽은 과학책이 많아봤자 얼마나 되겠나만은 강하게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우주심과 정신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이렇게 두 권이다.

 

 

 우주심과 정신물리학

<우주심과 정신물리학(Stalking the Wild Pendulum : On the Mechanics of Consciousness>은 그 당시 나에게 꽤 충격이었는지 나중에 몇권을 더 사서 친구들한테 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상당히 개성 있는 물리학책이다. 어떻게 보면 '몸-의식의 물리학'이라 할 수 있고, 그 파동의 물질 특성이 의식에까지 이어지는 (영향을 주는) 과정을 독창적으로 그려낸다. 더우기 이 책에서는 '쿤달리니 증상'을 두뇌 안에 (감각피질의) 미세한 점의 위치(homunculus)와 전류의 순환과 연관지어 살피기도 하는데, '의식'에 대해 상당히 열린 자세로 흥미로운 물리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신과 전문의 리 사넬라((Lee Sannella) 박사의 <신비의 쿤달리니(The Kundalini Experience>에서도 다뤄지고 있다(특히 236-265쪽). 이러한 것이 기존의 어떤 책들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저자 스스로 알아낸 아이디어나 사고에 더 힙입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유사한 흐름의 책들에서 보이는 어떤 무임승차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즉 특이하고 기발한 이국적인 지식들을 모아서 자기 방식대로 꿰어 놓은 알록달록 헝겊 같은 모양은 아닌 것이다. 벤토프는 여기저기 화려하게 일을 벌려 놓기 보다 단순한 일관성으로 이것을 해낸다.  

 

이차크 벤토프(Itzhak Bentov)(왼쪽 사진)는 1979년에 아깝게도 비행기 사고로 죽고, 아주 짧은 글이 가까스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선 <우주의식의 창조놀이( A Brief Tour of Higher Consciousness>의 제목으로 나왔다. 원제보다 우리나라 번역서 제목이 더 좋아 보인다. 책의 내용이 워낙 짧기 때문에, 서문과 뒤에 부록이 붙어서 널널한 편집으로 겨우 한권으로 만들어낸 거 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대단히 파격적인 여행-니르바나 여행을 펼치고 있다.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지 않아 속 시원한 맛은 없지만, 어떤 은유적 모멘트는 놀라울 정도다. 나머지는 읽은 사람들 머리 속에서 나름대로 펼쳐져야  하지 않을까.

 

 

폴 데이비스(Paul Davies)<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역시 물리학의 도움으로 우리가 어디까지 사고 여행을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폴 디렉(Paul Dirac)(오른쪽 사진. 외모에서 언뜻 비트겐슈타인 분위기가 난다)이라는 천재 물리학자가 자신의 방정식을 통해 미지의 입자를 예언하고, 또 그것이 나중에 실험에 의해 발견되는 드라마틱한 부분이 재미있었다(전자의 거울 이미지로 쌍이 되는 반대 성질을 가진 반전자(反電子)의 예고). 디렉은 물리 실험 보다는 이렇게 방정식 자체의 아름다운 형식에 더 매료되고 그것을 추구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원자 속의 유령>,<슈퍼스트링>, <초힘>은 마치 시리즈처럼 순서대로 읽어도 좋을 만큼 연속성이 있다.

 

 

<원자 속의 유령><슈퍼 스트링>은 폴 데이비스와 줄리언 브라운이 함께 엮은 책으로, 각각 양자역학과 끈 이론에 대한 대담형식의 책이다. 대담에 들어가기 앞서 간략한 이론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어, 읽기에 좀 수월한 감을 준다. <원자..> 이 책에서는 데이비드 봄이 눈에 띄며, <슈퍼 스트링>에는 스티브 와인버그와 리처드 파인만 같은 유명한 물리학자와의 대담을 통해 양자역학과 끈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급소를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다. 특히 파인만은 끈이론에 대해 회의적인데, 그와의 물음과 대답 속에는 폴 디렉도 나온다.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는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1963)>에서 쉬운 부분만 골라서 재편집한 것이다. 폴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약 10 쪽(번역서 기준)의 서문을 썼다.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대단히 인기 있는 물리학자인데, 아사람의 책도 나중에 마틴 가드너와 함께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이 책은 양장본과 보급판이 출간 되었는데, 나는 보급판으로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두께로 볼 때, 굳이 양장본으로 가질 이유는 없을 거 같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우리나라에 Volume 1, 2로 나왔는데,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인지(각각 700에서 800쪽 사이다) Volume 1은 다시 Volume 1-1, Volume 1-2 반양장본으로 나뉘어 나왔다. 하지만 이럴 경우엔 차라리 양장본이 값도 별로 차이 안나고 소장면에서 유리할 거 같다.

추천사를 보면, 쟁쟁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황제의 새마음>, <우주 양자 마음>로저 펜로즈<초공간>, <평행 우주>미치오 가쿠 등이다. 대단히 광대한 양의 물리학책인데, 이 긴 도전에 앞서 당분간 '여섯 가지 물리'로 만족해야 겠다.

 

 

 <폴 데이비스의 타임머신(How to Build a Time Machine)>은 <시간의 패러독스 (About Time)>와 함께 '시간'을 정면으로 주제로 삼은 책이다. <시간의 패러독스>에 "오랫동안 고생을 참아준 가족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했는데, 거의 500쪽이 넘는 이 책을 다 보는 것도 독자 입장에선 고생스러울 거 같다. 폴 데이비스는 <생명의 기원>도 그렇고 <우주의 청사진(The Cosmic Blueprint>에서 보듯이 대단히 원대한 기획을 책에 담는다. 두 권 다 '자기조직화'가 양념 중 하나로 쓰이기도 했는 데,  진행 방식도 유사하다(폴 데이비스 책들이 대개 비슷한 차례 패턴을 가진다). <우주의 청사진>은 주제와 방향은 좋아 보이는데, 책의 양도 그렇고 충분히 뭔가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용두사미처럼).  어쨌든 <...타임머신> 이 책을 보고 '타임머신'에 관한 영화를 즐긴다면 그 재미는 배가 될까 아니면 별효과가 없을까? 얼마 전에 기대하지 않고 봤던 [타임라인(TIMELINE)]이 생각이 난다. 마이클 크라이튼 소설을 가지고 만든 영화로 프랑스에서 유적 발굴을 하다가 교수가 과거로 사라지게 되는데, 여기에 벌어지는 과학자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남녀의 사랑 등이 골고루 담겨 있다.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가 있었는데 중세 전투 장면도 볼거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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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삐에로 분장으로 눈길을 끌었던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는 [오픈 유어 아이즈]의 또 다른 버전인 [바닐라 스카이]에서 톰 크루즈와 같이 출연한다.  그리고 톰 크루즈의 부인 니콜 키드먼 [떼시스] ,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Abre Los Ojos'1997)] 감독 알렌한드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abar)의 영화 [디 아더스]에서 주연을 맡는다. [디 아더스] 역시 톰 크루즈가 공동 기획에 참여한 것으로, 톰 크루즈는 아메나바르 감독을 좋게 본 거 같은데,  그게 지나쳐 그 감독 영화에 출연한 페넬로페 크루즈까지 연인으로 끌어 안은 꼴이 되었다.

 

 

 

 

[오픈 유어 아이즈] 영화 자체도 꿈과 현실이 서로 겹치는 복잡한 구조를 가졌는데, 스크린 밖에서까지 (영사기는 꺼졌지만)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얽히게 하는 묘한 맥박 작용은 멈추지 않은 거 같다. 지금은 물론 이 관계들이 정리가 되서 각자 제 갈길을 잘 가는 걸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결과적으로 이들 사이에서 톰 크루즈는 잠시나마 회오리의 중심 역할을 한 거 같다. 젊은 천재 감독에 대한 호감과 그 영화에 나온 여자마저도 실제로 탐닉하려는 욕망..

아메나바르는 최근에 안락사 문제를 가지고 [씨 인사이드(Mar Adentro, The Sea Inside'2004)]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초기 영화들에 비해 어떤 화려한 기교 보다는 티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출에 더 신경을 쓴 거 같다. 영화 주제가 그런 것을 원하기도 하겠지만..  재미있는 건,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하비에 바르뎀(Javier Bardem)인데, 예전에  페넬로페 크루즈가 알려지기 전에 같이 찍은 [하몽하몽]에서 뜨겁지만 다소 불안한 연인 사이로 나온다. 그리고 [씨 인사이드]에 출연한 로라 두에나스(Lola Duenas)는  [귀향]에서 페넬로페의 언니 쏠레역으로 나온다.

왠지 스페인은 영화도 그렇고 뭔가 꼬이고 복잡한 상황을 직면하게 하는 힘을 가진 나라같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는 다이빙을 할때는 항상 물 깊이를 염두해야 한다는 (영화가 노리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농담이고, 안락사에 대해 한번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결코 남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젠 딸 가진 아줌마 역할로 돌아 온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 [귀향(Volver'2006)]에서 우리는 다양한 '돌아옴'을 보게 된다.  모녀 역할을 맡은 두 여배우는 잠시 미지근한 배우활동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좋은 연기로 관객에게 다시 돌아왔고, 감독 페드로 알바도바르(Pedro Almodovar)는 잠시 과잉의 영화(가령 나쁜 교육)를 찍고 나서, 좀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즉 이 영화 자체가 감독 스스로에게는 휴식을 위한 하나의 귀향일런지도 모른다.  

영화 [그녀에게]에서 뇌사에 빠진 사랑하는 '그 여자와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통통하고 귀여운 남자 간호사가 [나쁜 교육]에서는 어떻게 망가졌던가? 그리고 남자끼리의 육체의 향연은 그것이 가시적인 것을 떠나서 아찔한 맛을 준다. 그런데 이 [나쁜 교육] 이란 영화는 점점 부드럽고 나긋해진 알마도바르 감독이 또 한번 (과거 영화들처럼) 무언가를 강하게 펼친 영화로 보인다. 그러나 그 표현 강도에 비해선 보는 사람에게 스며들게 하는 묘한 감정의 습기는 그리 깊지 않았던 거 같다(너무 배부른 호랑이가 되어서일까?). 관객보다는 알마도바르 자신이 만족하고픈 영화를 찍은 거 같긴 한데 말이다.  '강약 강약 강중약' 하듯 영화를 만들려는지, 그 이후에 만든 [귀향]은 또 많이 얌전해졌다. 물론 우발적인 일로 누군가가 죽고, 거대한 냉장고가 우여곡절 끝에 어딘가에 정착?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댓가를 영화 안에서는 끝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거의 이 댓가를 결국엔 청산하고 끝나는 데, 스페인이나 유럽 영화들은 이미 어떤 경계를 많이 무디게 하는 흐름이 있다. 하지만 간혹 익숙하지 않은 마지노선을 넘는 결과에 대해 편리한 대처 방식을 찾지 못해 찝찝할 수도 있다(다행히 이 영화는 작은 애교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가 알마도바르 감독은 영화 안에 또 다른 영화라든가, 공연 혹은 노래하는 장면을  삽입한다. [그녀에게] 영화에선 꽤 성공적이었던 거 같다. 이번 영화에서도 출연 배우인 페넬로페 크루즈가 직접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많은 노력을 한 티는 보이지만, 흡입력은 약간 부족했던 거 같다. [귀향], 이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죽은 엄마의 향취를 언니 집 화장실에서 확인하는 장면이다. 유령 행세하던 엄마가 부랴 부랴 자리를 피했지만, 자신의 육체의 냄새를 남기고야 만 것이다. 엄마 역은 커먼 웰스에서 좋은 기억을 남긴 카르멘 마우(Carmen Maura)가 맡았다. 이 여자는 알마도바르 초기 영화에도 여러 번 나온 경험이 있다. 강렬한 [마타도르]라는 영화와 긴 제목의 영화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유명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라는 영화도 있다. 그리고 다른 감독의 영화 [800 블렛(800 Bullets)]과 [죽음의 침묵(Le Pacte Du Silence:The Pact Of Silence)] 등이 있다. 이 쟁쟁한 두 여배우는 이번 영화 [귀향]에서 모녀 역할로 칸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알마도바르가 만든 영화들의 상복은 알아줘야 한다.

 

 

 

 

영화 [귀향]를 찍기 전에 페넬로페 크루즈는 [사하라]에서 킬링타임용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조니 뎁이 마약업자로 나온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블로우]라는 제법 긴 영화에도 조니 뎁을 홀리는 역할부터 부인역까지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잘 소화했던 거 같다, 심리 공포? [고티카]에도 나왔는데, 영화가 출연한 배우들의 무게에 비해 그리 신통치 않았던거 같다. 할리 베리 나온다고 봤는데, 별 소득이 없이 여러번 찾아오는 졸음과 맞서야 했다. 개인적으로 할리 베리는 영화 [스워드피쉬]에서 제일 멋있었던 거 같다. [하몽하몽] 감독 비가스 루나(Bigas Luna)[네이키드 마야(Volaverunt'1999)]에서도 페넬로페 크루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가 고야에 관한 영화인데, 좀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생각했던 거 보다 야하지 않았고, 대신 색감이 좋았던 영화로 기억한다.

찍는 영화마다 남자 배우랑 염문(바닐라 스카이, 사하라는 물론 만돌린 등)을 뿌리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이번 영화 [귀향]에선 별소문이 없었던 거 같다. 여자들이 중심인 영화고 눈에 띌 만한 남자 배우도 없어서 그랬을까? 이 영화는 엄마와 묘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 나는 딸의 입장이 아니라서 추측과 짐작만으로 그치는 걸, 그 사람들은(가령 엄마나 딸이라면) 절로 미소 지을 만한 장면들도 있을 거 같단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알마도바르 감독의 영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영화 몇 개를 적어 본다. 

우선 타나토스의 힘이 영화의 끝을 향해 위험하게 질주하는 [마타도르(Matador'1986)]가 있겠고, 스토커가 나와도 괜찮은 영화! [욕망의 낮과 밤(Atame! : Tie Me Up! Tie Me Down!)]은 처음엔 다소 위험하지만 풋풋한 느낌까지 남긴다. [신경 쇠약 직전의 여자]는 알마도바르 영화 중에서 아마 가장 코믹하고 유쾌한 영화에 속할 것이다. 어떤 작은 우연들이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이색적인 영화(지금은 그런 영화가 흔하지만)인데, 다소 짜임새는 엉성하다(아마도 겉구조가 복잡한 영화보다는 인물들의 감정, 관계가 이상스러운 기운을 동반하면서 복잡해지는 영화에 좀 강한 거 같다). 역시 모녀의 심리가 깊이 내리 깔린 영화 [하이 힐(Tacones Lejanos : High Heels)]도 [귀향]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진 영화다. 그냥 그 육체의 도드라진 힘이 어떤 의무나 도덕 감정(남의 눈치)의 피폐함으로 뭉친 구름을 걷어내는 듯한 끈끈하지만 건강한 영화 [라이브 플래쉬(Carne Tremula : Live Flesh)]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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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짤막하게 크게 알려진 밴드와 앨범을 가지고 글을 꾸려나가려고 했지만, 쓰다보니 생각보다 글의 부피가 커진다. 그래서 굵직한 밴드(흔히 슈퍼 밴드라고도 불림)를 하나 찍어 길게 풀어 나가면서, 중간 중간에 거기에 관련된 다른 밴드나 아티스트들에 대해 잠깐 다루는 방식으로 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멤버 교체가 많고, 뛰어난 뮤지션들간에 서로 '헤쳐모여식'이 흔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일단 굵은 가지를 유념하면서 중간에 잔 가지들을 만나면 잠시 색다른 느낌도 받을 겸, 눈길을 주는 식으로 읽으면 될 거 같다.[초고를 여러번에 걸쳐 수정할 생각이다]

 

킹 크림슨, 핑크 플로이드를 아트락 밴드라고 부르기엔 뭔가 어색하고, 카멜이나 뉴트롤스를 프로그레시브라 하기에도 약간 밋밋하다. 그냥 일단은 프로그레시브, 아트락이란 용어를 얼추 비슷하다고 여기자.

 

가장 모범적인 프로그레시브  앨범으로 우선 킹 크림슨(King Crimson)[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꺼내 본다.  밴드 결성은 1967년 Giles Giles & Fripp로 볼 수 있으며,  이 앨범은 1969년에 나온다.

Giles Giles & Fripp[아래 사진]



 

 

  비틀즈와 맞짱을 떠서 영국 앨범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잠시 입이 벌어진다. 좋은 음악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거야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먹혔다는게 다소 의아하다. 시기적으로도 젊은이들의 사회 반발력의 기운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 않았나 넘겨 짚어본다.

  

 이 앨범에는 아방가르드한 첫 곡 ''21st Century Schizoid Man' 이 곡제목처럼 맛이 간 정신을 노이즈 전기음향의 증폭에 실어 불규칙한 맥박으로 표출한다. 킹 크림슨의 사자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물론 로버트 프립의 외침이 가장 크지 않았겠나) 나머지 곡들도 다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그 중 'Epitaph'는 이 밴드의 안방마님 역할을 오래도록 충실히 하는 곡이다. 그렉 레이크의 멜랑꼬리한 음색과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의 멜로트론이 잘 조화된 음악이다.

'I Talk To The Wind'는 정말 바람에 속삭이듯 나지막한 음색이 멋드러지고, 'Moonchild'는 에코가 섞인 인트로가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데. 핑크 플로이드의 'Julia Dream'가 비슷한 맛이 난다. 그러나 뒤로 가면 재즈적으로 바뀌는 묘한 곡이다. 그리고 끝곡인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가장 락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웅장함을 담고 있는 곡인데, 후배 밴드들이 나중에 색다르게 많이 따라하는 곡이기도 하다.

 

 

 멜로트론이 나온김에 이들보다 밴드로서는 앞선 무디블루스(Moody Blues)를 지나칠 수가 없게 됐다. 'Nights in White Satin'으로 유명한 그들의 기념비적인 앨범 [Days Of Future Passed'67]은 '하루의 시간'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프로그레시브 앨범에서 단일한 주제로 음반의 곡들을 통째로 구성하는 방식들이 유행하게 됐다고 한다. 드보르작의 교향곡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공들인 클래식과 락의 이쁘장한 만남이 서사적이면서도 매끄럽게 이어진다. 여기서 멜로트론의 선구적인 쓰임 또한 만나볼 수 있다. 다소 평이한 느낌을 주기에, 무디블루스가 프로그레시브 매이나에게 열광적인 지지는 받지 못하지만, 음악 작업에서의 신선한 시도들은 그 후에 다른 밴드들이 더욱 발전된 형태로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토대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렉 레이크(Greg Lake)는 2집 [In the wake of Poseidon'70]을 끝으로, 3인조 밴드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로 들어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수준 높은 아트락의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무소그르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새롭게 연주한 'Pictures at an Exhibition'은 'C'est La Vie'와 함께 그들의 대표곡이다. 그러나 E.L.P의 최상의 실력이 유감 없이 드러난 앨범은 비록 대중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Brain Salad Surgey'73]를 꼽을 수 있다. 기거(H. R. Giger)가 디자인한(그 후 [Then & Now]도 있다)  표지부터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 앨범에서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3부작으로 구성된 'Karn Evil 9'은 E.L.P의 최고의 경지가 30 여분 동안 펼쳐지는 곡이다. 

 

 

 

 

 

 

 

 

 

 

킹 크림슨은 그 후로도 계속 고독한 지성이 깃든 미학과 실험성을 가지고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커다란 매듭을 짓기 시작한다. 두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70]은 1집 보다 약간 김이 빠진 느낌도 주지만 'Cadence and Cascade' 곡이 잔잔한 느낌을 준다.  [Lizard'70]에서는 마치 제네시스피터 가브리엘 풍의 보컬 느낌이 나는 'Lady Of The Dancing Water'와 불협화음이 눈에 띄는 'Cirkus' 그리고 청아한 보컬로 시작하는 20 여분의 대곡 'Lizard'가 있다. 74년 앨범 [Starless and Bible Black]은 킹 크림슨 매니아들의 애청곡 'Fracture'와 느리게 진행하면서 공간에 균열을 만드는 듯한 'Starless And Bible Black'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나도 무척 좋아하는, 말이 필요 없는 명곡 'Starless'가 담긴 [RED'74]가 있다.

[RED]이후 해산을 선언하지만 긴 공백 끝에 새로운 움직임이 생긴다.  1980년 이후 프립은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는데 그 이름이 디시플린이다. 그러나 다시 킹 크림슨의 밴드 이름을 되찾고 디시플린[Discipline]은 그들의 81년 앨범 제목으로 탈바꿈한다.


  공백 기간 동안 내노라하는 여러 뮤지션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단련된 프립의 음악 세계가 한뭉큼 얹어진듯한 음악으로 들린다. 여러 다양한 실험이 담겨 있지만, 그다지 노골적이지 않아서 듣기에 큰 부담은 없다. 보컬이 낭낭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보컬 음색은 대중들을 바라보지만, 리듬은 발라드같은 곡에서부터 변주가 느껴지는 곡 등 뭔가 즐기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이 앨범의 묘미는 4번 트랙 'Indiscipline'과 7번 끝곡 'Discipline'의 대칭성이 주는 긴장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디시플린이 다소 혼란한 '카오스'를 드러낸다면, 디시플린 곡에서는 '코스모스' 즉 질서 잡힌 음악의 힘이 느껴진다. 이곡을 듣고 나서 앨범표지를 보면 "아! 그래서.."하는 고개 끄덕임이 절로 생긴다.

 



 첫 곡이 'Elephant Talk'인데, 프립이 킹 크림슨이라는 밴드 이름을 갖기 전에 활동했던  'Giles, Giles & Fripp' 밴드의  68년도 앨범 B면 두번째에 'Elephant Song'이 실려 있다, 나레이션과 서커스풍의 음악이 어우러진 약간 재미있는 곡이다. 하여튼 엘리펀트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 있지 않나 싶다.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의 솔로 앨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거의 우주적인 허공에 오가는 굉음에 매달린 기타줄같은-추상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그의 성향이 멤버들은 물론 대중하고도 연속적인 유대를 어렵게 하는 듯이 보인다.  

로버트 프립은 솔로 시절에 여러 뮤지션들과 앨범 작업을 같이하는데, 데이빗 보위, 브라이언 이노, 데이비드 실비앙 등이다. 내가 보기에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그래도 궁합이 잘 맞는 거 같다. 그러나 둘이 만났으니 음악의 대중성은 물 건너 간 것이고, 매니아들에게는 어떤 미지의 음색을 탐닉하는 두 탐험대로는 안성맞춤이다. 이들은 1973년에 [No Pussyfooting]를 시작으로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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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훈 2022-02-10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킹크림슨은 어느 나라에서도 빌보드를 1위를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이죠.

TexTan 2022-04-1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틀즈를 끌어내리고 영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드라마틱한 루머에 대한 확인이 늦었네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신화에 관련된 사람하면, 일단 엘리아데와 함께 조셉 캠벨이 떠오른다. 조셉 캠벨(Joseph Campbell)도 엘리아데처럼 특히 인도 신화를 잘 활용하고, 다양한 지식에 열려 있는 신화학자다, 내 생각에는 엘리아데가 철학적 훈련 덕분인지 좀 더 섬세하게 수직적으로 들어가는 면이 있고, 조셉 캠벨은 '보편성'이라는 원초적인 그림을 맞추기 위해 폭넓게 수평적인 확장에 더 관심이 있는 거 같다. 글은 엘리아데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줄곧 견지한다면, 조셉 캠벨의 글은 읽는 사람의 시선을 향하여 대화하듯 가까운 맛이 난다. 이것이 조셉 캠벨의 대중친화적인 태도가 묻어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캠벨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우연찮게 TV 강의 형식으로  인도신화와 요가에 대해 설명하는 흥미로운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세계의 신화 이야기>에서 엘리아데와 조셉 캠벨의 이름이 같이 있는 걸 찾을 수 있는데, 이 두터운 책에서 두 사람은 서문, 즉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세르기우스 골로빈이 본문을  엮어나간다.   <신화의 이미지>는 최근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다. 엘리아데가 비슷한 대상, 주제라고 해도, 자기만의 독특한 프리즘을 활용해서 좀더 세밀한 (새로운) 빛깔이 나오게 건드린다면(그래서 얼핏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엘리아데만의 섬세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향취를 담기는 어렵다) 조셉 켐벨은 좀 더 큼지막하게 무난하게 책을 이어가는 거 같다. 그래서 책의 줄거리와 차례를 보면, 좋게 말하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고, 좀 야박하게 말한다면, 불교와 인도 신화에 너무 기대어 저절로 생기는 그 흐름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즉 조셉 켐벨의 식견이 뛰어나기도 하겠지만, 그가 접하는 영역들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힘, 탄력의 덕도 보는 거 같다. 인도에서 아주 예민한 아이콘 혹은 연관된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링크를 운 좋게 찾으면, 그 이후는 수월해진다는 말이다(이것이 협소한 영역에서는 금방 소진되고 말지만, 인도처럼 다양하고 광대한 영역에서는 대단히 유리할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조셉 캠벨의 대표작으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신화들에 새겨진 동일한 패턴, 즉 하나의 얼굴을 드러내는 책이다. 흔히 하는 비유로 달 하나가 천개의 강에 비추듯이 말이다. 그런데 책이 두꺼워서 그런지, 다 읽고 나서도 그런 (잡다한 것들을 명쾌하게 거대한 하나의 얼굴로 모으길 바라는) 기대감이 충족되진 않았던 거 같다. 어쩌면 내 독서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신화의 세계(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는 원제에 비해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이 좀 밋밋해 보인다. 인디언 신화에서부터 이집트,  인도,  그리스 그리고 유럽의 아서왕과 성배에 관한 전설까지 폭은 넓지만, 어떤 통일성은 떨어져 보인다. 생전의 강의를 묶었다고 하는데, 요가와 융심리학적 발상으로 (영적인 방향으로) 자기 성장의 도식을 시도한 부분이 눈여겨 볼 만 하다. 이 부분만 오히려 큰 주제로 삼아서 한권으로 만들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Thou art that  : Transforming Religious Metaphor)>는 부제를 봐도 알겠지만, <신화의 세계>와도 원서 제목이 댓구를 이루는 거 같고, 신화가 아닌 종교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인도 종교를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서양인인 조셉 캠벨의 근원적인 자리인 유대-기독교에 관한 책이다. 우파니샤드의 대표적인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라는 말은 너 안에 깃든 절대신을 가리킨다. "너가 신이다"와 "너 안에 무엇이 신이다"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굳이 책의 제목을 이걸로 한 것만 봐도, 기존의 유대-기독교의 해석과는 다른 어떤 의도가 담겼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신화의 힘>은 신화와 관련된 책들 중에서 아마 부담없이 수월하게 읽고,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대담형식이라 읽기 쉬우면서도 다른 공부로 이어질 만한 영양가 있는 자극들이 많이 담겨 있다. 내가 조셉 캠벨을 처음 만난 책이기도 하다.

 

 <신의 가면> 시리즈 중에서, 동양 신화 차례를 보면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심지어 티벳까지 다루는데, 한국은 빠져있다. 신화학자들은 원시 부족의 자료까지 찾아서 연구할 정도로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지식 외적인 것이 덜 작용하겠지 하는 생각도 순진한 것일까?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흐름이나 맥락을 보더라도 중국에서 붕 떠서 일본으로 바로 넘어가는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뭔가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학자라면, 기존 연구들이 비록 그런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의문을 가질 만한데도 말이다. 한국의 신화와 전설, 무속은 언제까지 괄호 안에 둘러 쌓여 있어야 할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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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낀 서양 스님처럼 생긴 켄 윌버(Ken Wilber)의 책이 새로 나왔다.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흔히 말하는 문제작에 속하는 책이다. 켄 윌버의 다른 책들도 우리나라에 이미 여러 권 나와있다. 그런데 정작 그 남자의 첫 번째 책은 여기서는 다소 늦게 소개되는 셈이다. 미국에선 1977년에 처음 나왔으니 벌써 30년 전이다. 이 책은 켄 윌버가 이미 이십대 초반쯤 마무리를 지었지만, 받아 주는 출판사가 없어 몇년에 걸쳐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매니아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데, 동서양이 맞물린 최고지식을 가려 뽑아 스스로 수행을 통한 높은 식견으로 그것들을 통합적으로 재구성해낸다는 소리를 듣는다. 흔치 않은 독특한 색깔을 가진 지성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엇비슷한 작업, 가령 서양의 최신 과학 이론과 동양 사상을 중매하는 일들은 많지만, 그 색깔만 화려한 표피는 시간이 흐르면 금방 벗겨질만큼 가벼운 것들이 많다.

분명 켄 윌버는 그런 자기 흥에 겨워 성급한 짜맞추기에 급급한 지식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사상이 여태 유례가 없는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사유의 성과물이라고도 보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동양 철학의 정수를 알지 못하는 서양인에게는 그 남자의 결과물이 너무도 새롭고 경이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 (학파로서의) 상키야, 요가, 베단타와 불교의 화엄 그리고 나가르주나의 공사상('중론'의 엄격한 논리적 비판력)에 대해 어느 정도 살펴본다면, 켄 윌버가 이 사상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섭취했고, 새롭게 이용하는지 알 수 있다. 거기다 새로운 과학인 시스템 이론도 제한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거에 그러한 개념이나 설명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대적인 언어로 다시 쓸 수 있다는 건, 단순한 반복이라기 보다 또다른 창조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걸 활구(活句)라고 하지 않던가?

어쨌든 이십대 초반에 자기 지성의 기획이 담긴, 그리고 거대한 지적 영향력을 가진 책을 썼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이 <의식의 스펙트럼>에서 처럼 '스펙트럼'은 여러 의식 단계(혹은 지식)의 풍경들을 끊어진 갈래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각기 차이로 인해 구별되는 레벨을 갖지만, 그것이 (퇴보와 상승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강조하는 통합적 사고에 효과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나중에 요긴하게 쓰이는 '홀론' 개념과도 짝이 잘 맞는다.

<의식의 스펙트럼>을 좀 더 대중적으로 다듬었다는 책이 <무경계(No Boundary)>이다. 책 제목을 처음에는 '의식의 경계(Boundary of Consciousness)'로 했다가 나중에 무경계로 바꿨다고 한다. 책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처음 지은 제목이 더 적당해 보인다. '무경계'란 제목은 내용에 비해 너무 높게 잡은 느낌마저 든다.  처음 켄 윌버가 두각을 나타낼 때, '프로이트와 붓다의 만남'이란 소리도 들었다지만, 이 책을 보면, 오히려 페르소나와 (전인적) 자기 성장을 강조하는 융과 겉그림이 더 가까워 보인다.

켄 윌버는 나중에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에서 낭만적 관점으로 인한 오류가 있음을 인정하는데, 아동기에 대해 순진하게도 어른의 입장에서 '상실한 낙원' 쯤으로 설정한 부분이다. 즉 전단계와 초월 단계를 구분 못한 것인데, 나중에 아동기는 전단계로 수정된다.  이러한 내용은 <무경계> 책 뒤에 '켄 윌버의 사상'에서 번역자(김철수)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의 역사>는 그의 통합적인 관점이 제대로 드러난 또 하나의 야심작이자 대표작으로 보이는데, '온우주'와 '홀론' 개념이 주요하게 쓰인다. 그의 사상을 분명하게 종합적으로 구성해냈다고도 볼 수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어떤 하나의 눈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레벨의 눈을 갖는다는 것을 말한다. 켄 윌버는 크게 감각의 눈, 이성의 눈, 관조의 눈으로 나누는데, <아이 투 아이>라는 책 제목은 바로 감각의 눈에서 관조의 눈으로 상승적 이행을 내포하는 제목이라 보인다. 이 책에서는 '의식의 만다라 지도'라는 소제목을 가진 장이 눈길을 끈다.

 <감각과 영혼의 만남>은 그래도 최근의 책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데, 1부에서는 그 전의 책에서 다루어진, '존재의 대사슬', '(진리의) 네 상한(the four quadrants) 등이 다시 간략히 설명되고 있으며, 이후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철학 등 현대철학에 관한 내용들이 비판적으로 자주 나온다. 들뢰즈(Deleuze)를 델루즈라고 표기했는데, 미국에선 델루즈라고 읽는지 확인할 도리는 없다.  철학뿐만이 아니라 과학, 종교 등 다양한 지식의 영역들이 다루어지는데, 처음 켄 윌버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는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는 아내(트레야)의 투병과 그것을 지켜보는 켄 윌버의 사적인 이야기로 채워진 책으로 알았는데, 꼭 그런것은 아닌듯 하다. 기회가 되면 구해서 봐야 할 거 같다.

<현대물리학과 신비주의>는 지금은 절판이라 구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다행히 고려원에서 나온 걸 가지고 있다. 원제는 'Quantum Questions'으로 이 책에서 켄 윌버는 서론 부분과 편집을 맡았다. 따라서 나머지 부피에는 다른 과학자들, 하이젠베르그,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등의 글이 차지한다.

 

<영혼의 거울(Sacred Mirrors)>은 알렉스 그레이의 그림집 같은데, 여기에도 '화가의 눈 - 예술과 영원의 철학'이라는 켄 윌버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딱히 알렉스 그레이의 그림을 좋아하는 취향도 아니고 책 가격에 비해 쪽수가 적어서 아마 볼 기회는 없을 듯 하다. 비닐커버로 닫혀진 책이 아니라면 나중에 서점에서 보면 될 거 같다. 그런데 알렉스 그레이의 인체 투시도?는 단지 상상으로 그려진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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