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에서 삐에로 분장으로 눈길을 끌었던 페넬로페 크루즈(Penelope Cruz)는 [오픈 유어 아이즈]의 또 다른 버전인 [바닐라 스카이]에서 톰 크루즈와 같이 출연한다.  그리고 톰 크루즈의 부인 니콜 키드먼 [떼시스] ,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 Abre Los Ojos'1997)] 감독 알렌한드로 아메나바르(Alejandro Amenabar)의 영화 [디 아더스]에서 주연을 맡는다. [디 아더스] 역시 톰 크루즈가 공동 기획에 참여한 것으로, 톰 크루즈는 아메나바르 감독을 좋게 본 거 같은데,  그게 지나쳐 그 감독 영화에 출연한 페넬로페 크루즈까지 연인으로 끌어 안은 꼴이 되었다.

 

 

 

 

[오픈 유어 아이즈] 영화 자체도 꿈과 현실이 서로 겹치는 복잡한 구조를 가졌는데, 스크린 밖에서까지 (영사기는 꺼졌지만) 여러 사람들의 관계를 얽히게 하는 묘한 맥박 작용은 멈추지 않은 거 같다. 지금은 물론 이 관계들이 정리가 되서 각자 제 갈길을 잘 가는 걸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결과적으로 이들 사이에서 톰 크루즈는 잠시나마 회오리의 중심 역할을 한 거 같다. 젊은 천재 감독에 대한 호감과 그 영화에 나온 여자마저도 실제로 탐닉하려는 욕망..

아메나바르는 최근에 안락사 문제를 가지고 [씨 인사이드(Mar Adentro, The Sea Inside'2004)]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초기 영화들에 비해 어떤 화려한 기교 보다는 티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출에 더 신경을 쓴 거 같다. 영화 주제가 그런 것을 원하기도 하겠지만..  재미있는 건,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하비에 바르뎀(Javier Bardem)인데, 예전에  페넬로페 크루즈가 알려지기 전에 같이 찍은 [하몽하몽]에서 뜨겁지만 다소 불안한 연인 사이로 나온다. 그리고 [씨 인사이드]에 출연한 로라 두에나스(Lola Duenas)는  [귀향]에서 페넬로페의 언니 쏠레역으로 나온다.

왠지 스페인은 영화도 그렇고 뭔가 꼬이고 복잡한 상황을 직면하게 하는 힘을 가진 나라같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는 다이빙을 할때는 항상 물 깊이를 염두해야 한다는 (영화가 노리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농담이고, 안락사에 대해 한번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결코 남의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젠 딸 가진 아줌마 역할로 돌아 온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영화 [귀향(Volver'2006)]에서 우리는 다양한 '돌아옴'을 보게 된다.  모녀 역할을 맡은 두 여배우는 잠시 미지근한 배우활동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좋은 연기로 관객에게 다시 돌아왔고, 감독 페드로 알바도바르(Pedro Almodovar)는 잠시 과잉의 영화(가령 나쁜 교육)를 찍고 나서, 좀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즉 이 영화 자체가 감독 스스로에게는 휴식을 위한 하나의 귀향일런지도 모른다.  

영화 [그녀에게]에서 뇌사에 빠진 사랑하는 '그 여자와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통통하고 귀여운 남자 간호사가 [나쁜 교육]에서는 어떻게 망가졌던가? 그리고 남자끼리의 육체의 향연은 그것이 가시적인 것을 떠나서 아찔한 맛을 준다. 그런데 이 [나쁜 교육] 이란 영화는 점점 부드럽고 나긋해진 알마도바르 감독이 또 한번 (과거 영화들처럼) 무언가를 강하게 펼친 영화로 보인다. 그러나 그 표현 강도에 비해선 보는 사람에게 스며들게 하는 묘한 감정의 습기는 그리 깊지 않았던 거 같다(너무 배부른 호랑이가 되어서일까?). 관객보다는 알마도바르 자신이 만족하고픈 영화를 찍은 거 같긴 한데 말이다.  '강약 강약 강중약' 하듯 영화를 만들려는지, 그 이후에 만든 [귀향]은 또 많이 얌전해졌다. 물론 우발적인 일로 누군가가 죽고, 거대한 냉장고가 우여곡절 끝에 어딘가에 정착?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댓가를 영화 안에서는 끝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헐리우드 영화들이 거의 이 댓가를 결국엔 청산하고 끝나는 데, 스페인이나 유럽 영화들은 이미 어떤 경계를 많이 무디게 하는 흐름이 있다. 하지만 간혹 익숙하지 않은 마지노선을 넘는 결과에 대해 편리한 대처 방식을 찾지 못해 찝찝할 수도 있다(다행히 이 영화는 작은 애교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가 알마도바르 감독은 영화 안에 또 다른 영화라든가, 공연 혹은 노래하는 장면을  삽입한다. [그녀에게] 영화에선 꽤 성공적이었던 거 같다. 이번 영화에서도 출연 배우인 페넬로페 크루즈가 직접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많은 노력을 한 티는 보이지만, 흡입력은 약간 부족했던 거 같다. [귀향], 이 영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죽은 엄마의 향취를 언니 집 화장실에서 확인하는 장면이다. 유령 행세하던 엄마가 부랴 부랴 자리를 피했지만, 자신의 육체의 냄새를 남기고야 만 것이다. 엄마 역은 커먼 웰스에서 좋은 기억을 남긴 카르멘 마우(Carmen Maura)가 맡았다. 이 여자는 알마도바르 초기 영화에도 여러 번 나온 경험이 있다. 강렬한 [마타도르]라는 영화와 긴 제목의 영화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유명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라는 영화도 있다. 그리고 다른 감독의 영화 [800 블렛(800 Bullets)]과 [죽음의 침묵(Le Pacte Du Silence:The Pact Of Silence)] 등이 있다. 이 쟁쟁한 두 여배우는 이번 영화 [귀향]에서 모녀 역할로 칸영화제에서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알마도바르가 만든 영화들의 상복은 알아줘야 한다.

 

 

 

 

영화 [귀향]를 찍기 전에 페넬로페 크루즈는 [사하라]에서 킬링타임용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조니 뎁이 마약업자로 나온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블로우]라는 제법 긴 영화에도 조니 뎁을 홀리는 역할부터 부인역까지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잘 소화했던 거 같다, 심리 공포? [고티카]에도 나왔는데, 영화가 출연한 배우들의 무게에 비해 그리 신통치 않았던거 같다. 할리 베리 나온다고 봤는데, 별 소득이 없이 여러번 찾아오는 졸음과 맞서야 했다. 개인적으로 할리 베리는 영화 [스워드피쉬]에서 제일 멋있었던 거 같다. [하몽하몽] 감독 비가스 루나(Bigas Luna)[네이키드 마야(Volaverunt'1999)]에서도 페넬로페 크루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가 고야에 관한 영화인데, 좀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생각했던 거 보다 야하지 않았고, 대신 색감이 좋았던 영화로 기억한다.

찍는 영화마다 남자 배우랑 염문(바닐라 스카이, 사하라는 물론 만돌린 등)을 뿌리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이번 영화 [귀향]에선 별소문이 없었던 거 같다. 여자들이 중심인 영화고 눈에 띌 만한 남자 배우도 없어서 그랬을까? 이 영화는 엄마와 묘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보면 재미있을 거 같다. 나는 딸의 입장이 아니라서 추측과 짐작만으로 그치는 걸, 그 사람들은(가령 엄마나 딸이라면) 절로 미소 지을 만한 장면들도 있을 거 같단 생각을 해본다.

끝으로 알마도바르 감독의 영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영화 몇 개를 적어 본다. 

우선 타나토스의 힘이 영화의 끝을 향해 위험하게 질주하는 [마타도르(Matador'1986)]가 있겠고, 스토커가 나와도 괜찮은 영화! [욕망의 낮과 밤(Atame! : Tie Me Up! Tie Me Down!)]은 처음엔 다소 위험하지만 풋풋한 느낌까지 남긴다. [신경 쇠약 직전의 여자]는 알마도바르 영화 중에서 아마 가장 코믹하고 유쾌한 영화에 속할 것이다. 어떤 작은 우연들이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가는 이색적인 영화(지금은 그런 영화가 흔하지만)인데, 다소 짜임새는 엉성하다(아마도 겉구조가 복잡한 영화보다는 인물들의 감정, 관계가 이상스러운 기운을 동반하면서 복잡해지는 영화에 좀 강한 거 같다). 역시 모녀의 심리가 깊이 내리 깔린 영화 [하이 힐(Tacones Lejanos : High Heels)]도 [귀향]과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진 영화다. 그냥 그 육체의 도드라진 힘이 어떤 의무나 도덕 감정(남의 눈치)의 피폐함으로 뭉친 구름을 걷어내는 듯한 끈끈하지만 건강한 영화 [라이브 플래쉬(Carne Tremula : Live Flesh)]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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