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 관련된 사람하면, 일단 엘리아데와 함께 조셉 캠벨이 떠오른다. 조셉 캠벨(Joseph Campbell)도 엘리아데처럼 특히 인도 신화를 잘 활용하고, 다양한 지식에 열려 있는 신화학자다, 내 생각에는 엘리아데가 철학적 훈련 덕분인지 좀 더 섬세하게 수직적으로 들어가는 면이 있고, 조셉 캠벨은 '보편성'이라는 원초적인 그림을 맞추기 위해 폭넓게 수평적인 확장에 더 관심이 있는 거 같다. 글은 엘리아데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줄곧 견지한다면, 조셉 캠벨의 글은 읽는 사람의 시선을 향하여 대화하듯 가까운 맛이 난다. 이것이 조셉 캠벨의 대중친화적인 태도가 묻어나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캠벨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우연찮게 TV 강의 형식으로  인도신화와 요가에 대해 설명하는 흥미로운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세계의 신화 이야기>에서 엘리아데와 조셉 캠벨의 이름이 같이 있는 걸 찾을 수 있는데, 이 두터운 책에서 두 사람은 서문, 즉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세르기우스 골로빈이 본문을  엮어나간다.   <신화의 이미지>는 최근에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다. 엘리아데가 비슷한 대상, 주제라고 해도, 자기만의 독특한 프리즘을 활용해서 좀더 세밀한 (새로운) 빛깔이 나오게 건드린다면(그래서 얼핏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엘리아데만의 섬세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향취를 담기는 어렵다) 조셉 켐벨은 좀 더 큼지막하게 무난하게 책을 이어가는 거 같다. 그래서 책의 줄거리와 차례를 보면, 좋게 말하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고, 좀 야박하게 말한다면, 불교와 인도 신화에 너무 기대어 저절로 생기는 그 흐름을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즉 조셉 켐벨의 식견이 뛰어나기도 하겠지만, 그가 접하는 영역들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힘, 탄력의 덕도 보는 거 같다. 인도에서 아주 예민한 아이콘 혹은 연관된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링크를 운 좋게 찾으면, 그 이후는 수월해진다는 말이다(이것이 협소한 영역에서는 금방 소진되고 말지만, 인도처럼 다양하고 광대한 영역에서는 대단히 유리할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조셉 캠벨의 대표작으로 세계 곳곳의 다양한 신화들에 새겨진 동일한 패턴, 즉 하나의 얼굴을 드러내는 책이다. 흔히 하는 비유로 달 하나가 천개의 강에 비추듯이 말이다. 그런데 책이 두꺼워서 그런지, 다 읽고 나서도 그런 (잡다한 것들을 명쾌하게 거대한 하나의 얼굴로 모으길 바라는) 기대감이 충족되진 않았던 거 같다. 어쩌면 내 독서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신화의 세계(Transformations of Myth Through Time)>는 원제에 비해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이 좀 밋밋해 보인다. 인디언 신화에서부터 이집트,  인도,  그리스 그리고 유럽의 아서왕과 성배에 관한 전설까지 폭은 넓지만, 어떤 통일성은 떨어져 보인다. 생전의 강의를 묶었다고 하는데, 요가와 융심리학적 발상으로 (영적인 방향으로) 자기 성장의 도식을 시도한 부분이 눈여겨 볼 만 하다. 이 부분만 오히려 큰 주제로 삼아서 한권으로 만들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바로 그것이다(Thou art that  : Transforming Religious Metaphor)>는 부제를 봐도 알겠지만, <신화의 세계>와도 원서 제목이 댓구를 이루는 거 같고, 신화가 아닌 종교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얼핏 제목만 봐서는 인도 종교를 다룬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서양인인 조셉 캠벨의 근원적인 자리인 유대-기독교에 관한 책이다. 우파니샤드의 대표적인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라는 말은 너 안에 깃든 절대신을 가리킨다. "너가 신이다"와 "너 안에 무엇이 신이다"는 분명 차이가 있다. 굳이 책의 제목을 이걸로 한 것만 봐도, 기존의 유대-기독교의 해석과는 다른 어떤 의도가 담겼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신화의 힘>은 신화와 관련된 책들 중에서 아마 부담없이 수월하게 읽고,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거 같다. 대담형식이라 읽기 쉬우면서도 다른 공부로 이어질 만한 영양가 있는 자극들이 많이 담겨 있다. 내가 조셉 캠벨을 처음 만난 책이기도 하다.

 

 <신의 가면> 시리즈 중에서, 동양 신화 차례를 보면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심지어 티벳까지 다루는데, 한국은 빠져있다. 신화학자들은 원시 부족의 자료까지 찾아서 연구할 정도로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지식 외적인 것이 덜 작용하겠지 하는 생각도 순진한 것일까?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흐름이나 맥락을 보더라도 중국에서 붕 떠서 일본으로 바로 넘어가는 태도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뭔가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학자라면, 기존 연구들이 비록 그런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당연히 의문을 가질 만한데도 말이다. 한국의 신화와 전설, 무속은 언제까지 괄호 안에 둘러 쌓여 있어야 할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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